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정냉경냉(政冷經冷)의 북중관계

"수교 65주년 행사 고위급 왕래, 북중관계 가늠자"

2014-10-01 00:00:01 게재

10월 북중수교 기념일, 중국군 한국전 참전기념일 등 교류 기회 … 북 핵보유 천명, 중 제재 동참으로 경색국면 지속 전망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지 만 3년이 되도록 북한과 중국의 외교관계가 좀처럼 복원되지 않고 있다. 북중간 고위급 인사의 왕래가 뜸한 사이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양국을 오가며 두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한 등거리 외교를 견지해왔던 중국인 만큼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한 뒤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지금은 방문 시기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고위급 인사의 상호방문은 양측의 외교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만약 북한과 중국이 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다면 10월은 기회가 많은 달이다. 6일은 북중 수교 65주년이 되는 날이며 10일은 북한 노동당 창건기념일, 25일은 중국군의 한국전쟁 참전기념일이다. 과거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원만했을 때는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한 양국의 고위급 인사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지난해 2월 핵실험 이후 경색된 북중관계가 올해 들어 더욱 악화된 모습을 띠는 가운데 오는 6일 북중수교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북중간 고위인사의 교류가 이뤄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6일 수교기념일에 고위급 인사가 오고 가거나 25일 군 고위급 인사가 왕래를 하면 그것은 북중관계 개선의 신호가 될 수 있다"며 "수교 기념일 교류는 북중이 냉각관계를 지속할지 대화국면이 재개될지가 나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 원론적 우호관계 언급만 = 지난달 중순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북중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추 대사는 "중북 간에는 줄곧 정상적인 양자 관계가 유지돼 왔고 이전에 양국 지도자간의 정상적 왕래가 있었다"면서 "아마 앞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이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추 대사의 이 발언에 대해 "중국과 조선은 우호적인 이웃국가이며 우리는 각층의 우호적인 교류왕래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방문에 대해서는 제가 제공할 수 있는 관련 소식이 없다"며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을 내놓았다. 중국 관영매체인 환구시보도 "김정은의 중국 방문이 실현될 것이란 보도는 한국 매체들의 오독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김 제1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양측 지도자간 주고받는 축전에서도 냉기류는 가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10일 시 주석은 북한 건국 66주년을 맞아 "조선 인민은 당의 영도 아래 사회주의혁명 위업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성과를 이룩했다"며 경제와 사회 발전에서 더 큰 성과를 이룩할 것을 기원하는 축전을 보냈다. 기념일을 맞아 축전을 보내며 북중관계에 큰 문제가 없음을 보였지만 내용면에서는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은 "과거에 보낸 축전에서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영도 아래'라고 밝혔는데 올해 축전에서는 당의 영도만을 언급해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과거와는 달라졌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9년 북한 건국 60주년에 보낸 후진타오 주석의 축전 내용은 "북한은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그리고 노동당의 지도 아래 자력갱생과 고난 분투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에 현저한 성취를 이룩했다"고 돼 있었다.

또 최근에는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북한 내 쿠데타설까지 돌면서 북한에 대한 중국 사회의 거부감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중국에 유포된 루머는 조명록 전 북한 군총정치국장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김 제1위원장을 구금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조 전 군총정치국장은 2010년 사망한 사람으로, 기초적인 정보조차 확인되지 않은 황당한 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루머가 유포된 것은 중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는 북한에 대한 중국 사회의 불쾌함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북, 중국의 냉대에 맞대응 = 북한도 이러한 중국의 푸대접에 응수하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이 1일 신중국 건립 65주년을 맞아 시 주석에게 보낸 축전에는 과거와 달리 북중간 혈맹을 강조하는 표현이 빠졌다.

김 제1위원장이 지난해 시 주석에게 보낸 국경절 축전에는 "조중 두 나라 노세대 영도자들과 혁명선열들의 고귀한 심혈이 깃들어 있고 역사의 온갖 시련을 이겨낸 조중친선을 대를 이어 강화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라며 양측의 친선관계를 강조했다. 하지만 올해 보낸 축전은 "우리 인민은 중국 인민이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투쟁에서 보다 큰 성과를 거두기를 바라고 있다"는 내용으로 양측의 특수한 관계에 대한 표현은 포함되지 않았다.

9월 말에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도 북중간 회동이 있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유엔 총회를 계기로 여러 나라들과 양자접촉을 가지는 점에 비춰보면 북중간 접촉이 없었던 것은 양측의 소원해진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유엔 총회에 참석한 리수용 북 외무상은 귀경길에 러시아를 10박 11일 일정으로 방문했지만 중국은 들르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 7월 정전협정 체결일에도 중국의 6·25 참전과 관련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은 바 있다. 60주년이던 지난해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에 리위안차오 중국 국가부주석과 중공군 참전 노병들이 방북하고 김 제1위원장이 '중국인민지원군열사능원'을 참배하는 등 북중 혈맹을 과시한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한중 수교 이후 최악의 북중관계 = 지난 1992년 한중 수교로 배신감을 느낀 북한은 1999년까지 중국과 거의 '단교' 수준의 상태에 있은 적이 있다. 한중관계의 진전이 북중관계를 흔든 측면도 있지만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핵 위기를 조성하면서 북중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사한 이유로 북중간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김한권 센터장은 "한중관계가 가까워지면서 북중관계가 후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10월에 북중간 관계개선의 기회가 있기는 하지만 양측이 이 기회를 활용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중국이 안보리 제재에 동참에 한 것에 대한 북한의 충격이 컸고 이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며 "현재 제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관계개선에 큰 진전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줄곧 제재와 대화는 양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에 제재에 동참한 중국과 대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북제재의 원인이 된 북핵문제는 뿌리 깊은 갈등요인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비핵화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야 중국 정부가 움직일 것"이라며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비핵화로 가겠다는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는 얘기"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지난 2012년 4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헌법에 핵 보유국 지위를 명시하고 이후 영변 경수로 가동을 선언한 바 있다.

다만 중국은 안보리 제재에 동참해 국제사회의 북한 압박에 가세했지만 이를 독자제재 등의 차원으로 확대하지 않고 내정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선은 지키고 있다. 이 때문에 북중이 외교·안보관계에서는 경색돼 있지만 경제교류는 현상 유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 등을 돌린 북한은 서서히 일본과 러시아와의 교류를 확대하면서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중관계 개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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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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