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 강간범 45%가 집행유예

2014-12-17 10:42:13 게재

"법정 최저형 높여 실형 선고 돼야" … 미국 등 선진국은 집행유예 없는 중형

아동·청소년 강간범 45.1%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등 솜방망이 처벌 문제가 심각,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반드시 실형이 선고되게 함으로써 경각심을 갖도록 하고, 궁극적으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에 대해 집행유예 없는 중형을 선고하고 있다. 이에 한국여성변호사회 등에서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을 개정, 법정 최저형을 5년에서 7년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1월 26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여경들이 성폭력 추방 주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살인보다 집행유예 선고율 높아=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동향 분석' 결과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죄의 평균 선고 형량(2012년)은 4년11개월로 법정형 하한(5년)보다 낮다. 게다가 여성가족위원회 이용원 수석전문위원의 아청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에게 집행유예가 없는 중형을 선고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집행유예 선고율이 강간죄의 경우 45.1%(2011년)로 높은 편이다. 이는 살인(19.9%, 2012년)과 강도·절도(30.65%, 2012년) 등 다른 강력범죄의 집행유예 선고 율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높은 수치다. 게다가 아동 청소년 대상 강간 대부분이 아는 사람(62.2%)에 의해 저질러지는 점을 감안하면, 집행유예로 가해자가 풀려났을 때 2차 피해의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

김학자 한국여성변호사회 법제이사(변호사)는 "16세 미만 아이들은 속아서 성범죄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를 고민한다면, 당연히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정말 나쁜 짓을 저질렀을 때 다시는 사회에 나올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형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집행 유예의 문제는 법적 처벌의 상한선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한선을 높여 실질적인 처벌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소리다. 현행법 상으로는 판사가 정상참작해 형을 절반까지 줄일 수 있어 최저형량을 2년6개월까지 낮출 수 있다. 또한 3년 이하 징역·금고형에는 집행유예 처분이 가능하다.

◆"법정 최저형 5년에서 7년으로 높여야"= 이 같은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국회에서는 아청법 개정을 2~3년 전부터 추진해 오고 있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해 5월(장관 임명 이전) 아청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주요 골자는 16세 미만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강간이나 유사강간을 저질렀을 때 법정 최저형을 5년에서 7년으로 상향하는 것이다.

지난해 7월 법안심사소위에 상정 됐지만, 법사위원 일부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했다. 당시 △판사 재량을 침해한다는 점 △형법상 살인죄도 최저형이 징역 5년인 점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죄의 법정형 상한선을 무기징역으로 높인 개정 법률이 시행된 지 1년도 채 안 됐다는 점 등을 들어 아청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올해 4월 여성가족위원회에서 범행 주체 연령을 '19세 이상의 사람'으로 수정 의결, 법사위 전체회의에 계류 중이다. 18일 열리는 전체회의 안건으로 상정될 예정이다.

살인 등 강력 범죄와 균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여가부는 비례의 원칙에 특별히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살인죄의 법정형 하한은 5년이지만, 존속살인죄의 경우 7년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성인 대상 강간죄의 하한은 3년으로 살인죄 하한 5년보다 낮지만, 13세 미만 대상 강간죄는 법정형 하한이 10년 이상이다. 게다가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죄 법정형은 2000년 아청법 제정 뒤부터 5년이상 유기징역으로 법정형 상향이 없었다.

김 변호사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게 아니다"라며 "도리어 다른 범죄들의 양형 기준이 낮은 게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미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에 대한 처벌 강화에 찬성은 하지만, 좀더 세부적으로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상임대표는 "지나치게 형벌을 높이면, 판사가 부담을 느껴 오히려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며 "강화된 법이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 피해자 연령별 가중 처벌 = 일각에서는 피해자 연령을 지나치게 세분화하면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인지 모른 채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어떻게 하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은 대부분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은 강간죄에 대해 13세, 16세, 18세 등 피해자의 연령에 따라 처벌형량과 형벌의 가중을 정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형법상 14세 미만과 18세 미만, 모범형법상 10세 이하와 16세 미만으로 구분해 처벌한다.

영국은 13세 미만 대상 범죄는 무기 징역, 16세 미만 대상 범죄는 징역 14년까지 받도록 구분했다. 10년 이상에 해당하는 성범죄를 두 번 저지르면 자동으로 종신형에 처한다.

프랑스는 피해자의 나이가 15세 미만은 20년 이하, 15세 이상은 15년 이하의 징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프랑스는 또 가해자 연령에 따라 구분해 처벌하고 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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