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놀이문화의 절대적 키워드 ‘게임’
PC방에 가는 아이들, 원천봉쇄만이 최선은 아니다
무조건 막기보다 규칙을 정하고 지키게 하는 것이 중요
아이들의 세상에서 게임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특히 남학생의 경우 게임에 대한 지식 없이는 또래집단에서 대화조차 통하지 않을 만큼 그들 세계에서 게임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시간도, 공간도, 변변한 놀이문화도 없이 PC방으로 전전하는 청소년 놀이문화의 현실. 왜 아들은 게임에 열중하는지, 부모가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본다.
PC방 출입, 청소년문화의 필요악?
“친구들과 같이 갈할 수 있고 엄마 눈치 안보고 맘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어서 일주일에 1~2번은 PC방에 가요.” 왜 PC방에 가느냐는 질문에 대한 초등 6학년 남학생의 대답이다. 중등이상쯤이나 되어야 출입하는 것으로 여겼던 PC방 문턱이 낮아지면서 초등 저학년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시험이 끝나는 날은 당연히 가는 날, 주말, 주중에도 한두 번쯤은 가야 마음이 진정된다는 청소년이 있을 정도이고 보면 이제 PC방은 청소년 문화에서 빠져서는 안 될 놀이공간으로 정착된 모양새다. 초등과 중등 두 아들을 둔 송파구의 안희정(46)씨는 “여자애들은 모여서 수다 떨고 쇼핑도 다니지만 남자애들은 운동 아니면 정말 할 게 없잖아요. PC방이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되고 혹시나 게임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은 되지만 딱히 다른 대안이 없으니 알면서도 보낼 수밖에 없어요”라며 그나마도 안하면 친구들과의 대화에 낄 수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며 근심을 표현한다. 놀 거리가 제한적인 아이들에게 PC방은 접하기 쉽고 적은 돈으로 장시간 이용이 가능하다. 집에서도 게임이 가능하지만 속도나 버전 등 컴퓨터 사양자체가 뛰어나기 때문에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정신과 전문의 조성일 박사는 “아이들이 게임에 몰두하는 것은 청소년기의 호르몬 변화와 같은 생물학적 이유 외에도 놀이문화 부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면서 게임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의 PC방 문화가 과연 아이들만의 탓일까?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함께 고민해 봐야한 다는 지적이다.
남학생이 게임에 빠지기 쉬운 이유는?
미국의 청소년 전문가로 오바마 정부의 청소년문제 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로잘린드 와이즈먼(Rosalind Wiseman)은 그의 저서 <아들이 사는 세상>에서 ‘비디오 게임은 소년의 세계에서 가치 있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자 부모의 세계에서 불안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 게임은 어린 남성의 문화에서 지배적인 산업으로 스포츠와 나란히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를 차지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남학생이 유독 게임에 잘 빠져들까? 조성일 박사는 “초등 고학년부터 청소년 사춘기 남학생의 경우 남성호르몬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변하기 쉽다. 운동이나 다른 여가생활을 통해 공격성을 분산시켜 주어야하지만 청소년들의 과중한 학업스트레스로 오히려 공격성을 더 부추기는 결과를 낳기 쉽다”면서 억누르고 있던 공격성과 분노를 게임으로 표출한다고 설명한다. 부수고 공격하는 게임을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춘기 남학생의 경우 특히 또래집단에서 뒤처지기를 싫어하고 승부욕이 강해 게임의 레벨이나 점수에 집착하기 쉽다. 때문에 주변에서 조절해주지 않으면 게임중독으로 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얼마만큼 타협해야할까?
아이들 특성에 따라 단시간 노출에도 게임에 빠져드는 성향이 심하다면 적극적으로 자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반대로 게임에 쉽게 빠져들지 않던 아이들도 지속적으로 방치하면 게임중독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조성일 박사의 말이다.
“게임은 자지 절제능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규칙을 정하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끝낼 수 있도록 부모가 관리해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게임에 대한 노출빈도 보다는 룰을 지키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1시간을 허락했다면 정확히 1시간 후에는 끝낼 수 있도록 지도해야한다는 것.
장시간 게임에 노출될수록 짜증이 늘고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부분 허용해야하는 한 가지 이유는 게임이 또래집단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어 게임에 대해 말할 줄 알아야 또래들과 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PC방에 다녀와서 아닌 것처럼 시침을 떼는 아이들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이런 경우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를 떠보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지만 이는 잘못된 접근이다. 아이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최대한 꾸지람을 덜 듣기위한 거짓말을 하게 되기 때문. 불필요한 거짓말을 유도하기보다는 처음부터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 서로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게임에 집착하는 원인부터 찾아야
이미 게임에 중독된 아이라면 병원 치료를 통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게임 중독의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조성일 박사는 “게임중독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은 게임에 대한 과다한 노출 이외에도 환경, 심리적인 이유, ADHD, 우울증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자녀가 게임에 빠져있다면 게임을 차단하기에 앞서 학교생활이나 친구관계에 문제가 없는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는 아닌지 살펴서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인에 대한 치료 없이 게임을 억제시킬 경우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
‘아이들이 온라인에 빠져드는 것은 어쩌면 온라인상의 인간관계는 그들이 한 번도 갖지 못했던 절박하게 원했지만 현실의 누구도 주지 않았던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로잘린드 와이즈먼의 말을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도움말 정신과 전문의 조성일 의학박사, 참고도서 ‘아들이 사는 세상’(로잘린드 와이즈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