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아들 졸업기념 제주 여행기

2015-02-17 22:05:42 게재

열일곱 살의 제주, 비장하거나 새롭거나…



지난 2월 6일 중학생 아들의 졸업식이 있었다. 학사모를 쓰고 걸어오는 아들의 손을 꼭 맞잡으며 고맙다는 말을 먼저 건넸다. 격변의 사춘기를 무사히, 건강하게, 그리고 착하게 견뎌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특별한 축하인사였다. 그리고 떠난 졸업기념 제주 여행.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내려다보이는 지미오름에 올라 또 하나의 다짐을 했다. 비장하거나 새롭거나. 

이호테우해변에서 추억을 만들다
졸업식이 끝나고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3 때까지 거의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간 큰 강남 학생’이었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사교육을 선택한지 어느새 두 달. 중학교 생활 내내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중학생”이라고 말하던 아들에게도 고단한 학원 일정은 부담이 컸으리라. 비행기 안에서 아들이 의미심장하게 한 마디 던졌다.
“엄마, 저 제주도에서 아무 것도 안 해도 되죠?”
제주공항에 도착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조랑말을 모티브로 만든 목마 등대가 있는 이호테우해변이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제주답게 바람도 강하다보니 인적이 드물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장소가 추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무엇을 하느냐가 추억의 묘미가 아니던가. 졸업과 입학의 무게를 훌훌 벗어던지자는 의미로 빨간색 목마 등대 앞에서 힘차게 뛰어 올랐다.
불현듯 10년 전, 제주 함덕해변에서 남편이 아들을 번쩍 들어 올렸던 일곱살 때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어느덧 키가 비슷해진 아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던 남편은 “내가 더 나이들어 기력이 떨어지기 전에”라는 말을 내뱉고는 제주 하늘을 향해 아들을 번쩍 들어올렸다.
‘아들아, 부디 앞으로의 고교 생활을 지금처럼 즐겁게, 그리고 신나게 날아오르렴.’  
 


봄이 찾아온 섭지코지에서 소원을 빌다 
2박3일 일정이지만 실질적으로 제대로 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은 둘째 날뿐이었다. 글쟁이 워킹맘의 애환이라면 애환일까? 제주에서 차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마감의 압박에 시달리며 틈틈이 일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제주에 찾아온 이른 봄이 못내 궁금해 과감히 노트북을 덮었다.
아들이 저 만큼 달려가 섭지코지 안에 있는 소망의 연못 앞에 섰다. 약속이라도 한 듯 세 가족이 나란히 서서 각자의 소원을 비는 시간. 실눈을 뜨고 아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러자 아들이 그 의미를 간파한 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말하면 소원이 안 이루어지니까 비밀로 할게요.”
섭지코지 전망대로 올라가는 지름길은 금빛 갈대가 지천에 깔려 운치를 더했다. 초입부에서 이용할 수 있는 마차나 전기자전거, 전동차 등을 타기보다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며 걷는 것을 선택했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전망대 앞에는 어느덧 이른 봄이 만개해 있었다.
노란 유채꽃과 섭지코지 바다, 파도에 깎여 내려가 세파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기암절벽까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이른 봄을 바라보는 아들의 표정이 의미심장하다. 아마도 입시경쟁의 첫 시작 앞에 만감이 교차하는 모양이다. 
“엄마, 서울에 꽃이 필 때 쯤이면 저는 고등학생이 되어 있겠죠?”     

 

지미오름 정상에서 내일을 다짐하다 
성산일출봉은 여전히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번잡스러웠다. 대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광치기 해변을 찾았다. 두 마리의 말이 빼꼼 고개를 내밀자 아들이 먼저 다가가 토닥토닥 말의 콧잔등을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네 나이가 서른여섯 살이라고? 와, 나랑 비교하면 거의 삼촌뻘이네. 삼촌뻘! 지금은 힘들어 보이지만 한땐 너도 나처럼 열일곱 살 땐 저 푸른 초원을 팔팔하게 뛰어다녔었겠지?”
올해 열일곱 살이 된 아들은 은근 슬쩍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쳤다. 공부 압박감을 훌훌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일지라도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뒤섞였던 모양이다. 아들의 말에 이번에는 아빠가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주었다.
광치기해변을 뒤로 하고 우도와 성산일출봉, 한라산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지미오름으로 향했다. 정상까지 15분이면 오를 수 있는 곳이지만 경사가 심해 제법 힘이 들었다. 구름 낀 날씨 탓에 조망은 아쉬웠지만 이번 제주 여정에서 가장 뜻 깊은 장소이기도 했다.
“아빠, 엄마. 저, 고등학교에 가서도 잘 할게요. 올라갈 땐 힘들지만 이렇게 올라와봐야 저 아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으니까요.”
어느새 몸도 마음도 훌쩍 커버린 아들에게서 든든한 남자의 향기가 풍겼다.
‘그래,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늘 믿고 응원하는 엄마가 될게. 사랑한다, 아들아!


 

Tip. 놓치면 후회할 ‘제주 먹을거리’ 열전

두툼한 근고기의 유혹, 생돈구이촌 ‘근고기’ 
근고기란 본래 제주도에서 돼지갈비, 목살, 오겹살, 다리살, 안심, 등심 등 각 고유 부위에서 아주 두껍게 자른 고기를 말한다.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제주도민 맛 집 ‘생돈구이촌’은 근고기 600g에 3만 2,000원으로 가격도 저렴하며, 특히 이곳의 맬젓(생선의 뼈와 껍질 내장 등을 젓으로 담은 것)은 매콤한 맛과 어우러져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주소: 제주 제주시 노형동 1289-7 


 

바다의 보양식, 명진전복 ‘전복구이’
직접 전복을 양식해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제주도민 맛 집 ‘명진전복’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브레이크 타임 오후 3~4시)까지만 영업을 한다. 영업시간이 짧아 시간대를 잘 맞춰야 하지만 전복 11~12개가 구워져 나오는 전복구이는 3만 원, 전복돌솥밥은 1만 3,000원에 맛볼 수 있다.
-주소: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515-28

 

구수하고 쫄깃한 면발, 자매국수 ‘고기국수’
제주도의 고기국수는 집 안이나 마을 대소사 때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을 국수에 말아서 대접하던 잔치 음식에서 유래했다. 제주도 국수문화거리에 위치한 ‘자매국수’는 작고 아담하지만 언제나 손님이 북적거리는 국수명가다. 진한 육수의 고기국수와 매콤 달콤한 비빔국수를 모두 7,000원에 맛볼 수 있다.
-주소: 제주시 일도2동 1034-10

 

피옥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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