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오수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로스쿨의 가장 큰 성과는 출신지역과 대학 다양화 "
사시 때 변호사 한명도 배출못한 대학 62개 로스쿨 입학시켜 … "사법시험 존치 주장은, 기득권 세력의 저항"
"사법시험(사시) 시절에 한 명의 변호사도 배출하지 못한 대학 중 로스쿨에 학생을 입학시킨 대학이 62개나 된다. 로스쿨 도입이후 굉장히 큰 변화는 출신 지역과 대학이 다양화 됐다는 점이다."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오수근 원장의 말이다. 2017년 말 없어질 사시를 존치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데 대해 오 학장은 "사회적 합의를 뒤집으려는 기득권세력의 저항"이라고 잘라 말했다. 22일 이화여대 로스쿨 원장실에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직도 겸하고 있는 오수근 원장을 인터뷰했다.
■사법시험을 존치해 로스쿨과 병행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 사회적 합의를 정면으로 뒤집자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국가가 시험에 의해 변호사 자격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변호사를 시험으로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양성하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그에 따라 로스쿨 도입과 사시의 단계적 폐지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주장이다.
■당시 어떤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가 되었나.
시작은 고시 망국론이었다. 당시 대학 도서관을 가보면 전부 법전을 펴고 고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회대 인문대 교수들이 사시 때문에 수업이 제대로 안 된다며 가장 적극적으로 그 폐해를 주장했다. 또 한정된 영역을 제한된 양식으로 테스트할 수 밖에 없는 시험의 본질적 문제도 지적됐다. 필기시험이 갖는 한계가 지적되며, 변호사를 시험이 아닌 교육을 통해 양성하자는 논의가 YS시절 시작됐고, DJ정권을 거쳐 참여정부에서 결국 로스쿨을 만들고 사시폐지의 사회적 합의에 이르렀다.
■필기시험의 한계란 무엇을 말하나.
암기력은 늘겠지만 논리적 분석이나 외국어 능력, 다른 전공에 대한 이해 등 변호사로써 필요한 다양한 능력은 사시를 통해서는 늘지 않는다. 송무 중심의 소수의 변호사를 배출하는 사시 시스템은 국제 경쟁력이 없다. 이것을 깨자는 게 로스쿨이다. 시험에 매달리지 않고 수업과정에 충실하면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것이 교육에 의한 변호사 양성의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없었나.
가장 힘들었던 문제는 변호사 숫자였다. 로스쿨 정원이나 합격자 수를 정하면서 논란이 많았다. 숫자에 대한 저항이 오랫동안 있었다.
■로스쿨 도입 이유 중 하나로 법조인의 특권을 없애자는 것도 있지 않았나.
그렇다. 핵심은 변호사 수를 늘리는 것이다. 수를 늘리지 않으면 특권이 유지되고, 사법권력이 국가경쟁력에 방해가 된다는 판단이었다. 숫자를 적게 뽑을 때는 서울대 등 몇몇 대학의 점유율이 높았다. 하지만 로스쿨을 도입해 숫자를 늘리니 출신 지역과 학교가 다양화 됐다. 이건 굉장히 큰 변화다. 해방직후 토지개혁이후 기존 권력을 나누어준 역사적인 사건이다.
■로스쿨 도입으로 사법권력이 분산됐다는 것인가.
그렇다. 사법권력이 분산돼 크게 약화됐다는 것이다. 로스쿨을 각 지역에 배분하는 과정에서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숫자를 늘려 각 지방에 나눠줬다. 그 결과 사시 시절에는 한 명의 변호사도 배출하지 못했던 대학 중, 로스쿨에 학생을 입학시킨 곳이 62개교나 된다. 사법시험 합격자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반면에 사법시험에서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서울대 등 몇몇 대학 학생의 비율은 로스쿨이 들어선 뒤 크게 떨어졌다. 바람직한 변화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사시 합격자와 로스쿨 입학자의 출신대학 현황을 전수조사 했다. 조사결과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로스쿨에 입학한 1만 410명의 출신 대학은 102개였고,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사법시험에 합격한 1만 458명의 출신 대학은 40개로 파악됐다. 로스쿨 입학자의 출신대학이 사법시험 합격자보다 2.5배 많은 것이다. 객관적인 분석을 위해 조사 대상을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맞췄다. 특히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비율은 사법시험 합격자의 58.51%(6119명)를 차지했지만 로스쿨이 출범한 후에는 점유율이 46.8%(4871명)로 11.71% 포인트 떨어졌다.
■일부에서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 실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다.
실력을 비교할 때는 기준을 잘 잡아야 한다. 연수원을 막 졸업한 변호사와 로스쿨을 갓 졸업한 변호사를 비교하면 안 된다. 사법시험 합격을 위해 평균 5년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까 연수원을 졸업하면 대략 7년 정도 법학을 익힌 셈이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최소한 몇 년간 실무를 익힌 변호사들하고 비교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이런 비교도 송무에 국한된 얘기다. 제약회사에서 약품을 다루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제약 관련 지적재산권을 처리하는 변호사. 외국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을 졸업해 외국어 실력이 유창한 변호사. 이들이 과연 경쟁력이 없을까. 실력은 채용자들이 제일 잘 안다. 로스쿨 출신들의 취업 상황 나쁘지 않다.
■이른바 대형 로펌에 입사를 많이 했나.
대형 로펌은 자신의 처지에서 제일 도움이 될 사람을 고를 것이다. 분석능력, 외국어 능력, 전문성 등을 보지 않겠나. 경우에 따라서는 유력자의 자녀를 채용해서 사건을 많이 유치할 수 있는 이른바 영업능력을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갓 들어온 변호사에게서 그런 능력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시 시절에도 대형 로펌이 일정한 수준 이상의 성적을 요구했지만 성적 순으로 변호사를 뽑지는 않았다.
■그래도 판검사 임용은 성적순이 아닌가.
종래 연수원 성적만으로 판검사를 임용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지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에 대한 평가를 시험 성적만으로 하면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결국 다양성을 놓치게 된다. 오히려 관심을 둬야 하는 것은 판검사 임용시 고려되는 요소가 의미가 있는지, 그 절차가 공정한지의 문제다. 대학입학에서도 수능성적만으로 뽑지 않는데, 판검사 임용시 성적 외에 다양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로스쿨 교육으로 실력 있는 법률전문가 육성이 가능한가.
시험을 통한 선발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전환이 이뤄졌기 때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교수대 학생비율이 개선됐고, 교육환경도 분명히 좋아졌다. 교육 내용에서 보면 실무교육이 강화된 것이 큰 변화다. 이제는 단순히 책을 암기해서 법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실무수습, 실무진들과의 수업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법률가를 육성하게 됐다. 무엇보다 국제화시대에 걸맞은 소양의 법률가를 양성할 수 있게 됐다고 본다.
■로스쿨의 취지는 다양한 전공과 경력을 갖춘 전인적 법조인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런 취지가 잘 실현되고 있는가.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의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에 따라 그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다양한 전공자들이 본인들의 역량을 펼치려면, 응시자 대비 80% 이상은 합격해야 한다.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이 낮아질수록 학생들은 시험 위주의 과목만 학습하게 된다. 시험 과목이 아니면 폐강될 위기에 처할 것이다. 로스쿨은 본래 취지에 따라 제도는 잘 설계되어 있지만 변호사시험 합격률로 인한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변호사시험 성적이 공개되면서 더욱 변호사 시험 매달려 로스쿨은 다양성을 살릴 수 없는 것 아닌가.
성적이 공개되지 않을 때에 비해 시험 준비에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변시 성적이 아주 나쁜 경우에는 영향을 받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채용하는 쪽에서는 변호사 시험성적뿐 아니라 인성, 사회경력, 외국어 능력,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 등 다양한 역량을 볼 것이다. 변시 성적 순으로 채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로스쿨은 수요자가 원하는 댜양한 역량에 관심을 유지할 것이다.
■로스쿨은 돈스쿨이란 비판이 있다.
로스쿨마다 등록금의 편차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학기당 약 770만원 정도다. 하지만 로스쿨에선 재학생 절반 이상이 장학금을 받고 있어 실질 등록금은 450만원으로 다른 전문대학원과 비교했을 때 낮은 수준이다. 현재 로스쿨에선 총 운영수입 가운데 32.6%를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돈스쿨이라는 말은 로스쿨을 폄하하고자 하는 악의적인 표현일 뿐이다. 학생의 입장에선 교원 1인당 학생 6.3명, 교육비 투자율 300% 이상으로 학생들에게는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해피스쿨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들이 로스쿨의 비싼 학비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로스쿨을 운영하는 대학본부의 관점에선 로스쿨이 고비용이겠지만 학생들 입장에선 교육비용이 학생들에게 전가되지 않기 때문에 고비용이라고 할 수 없다. 로스쿨이 고비용이면 저소득층 자녀들이 입학할 수 없을 텐데 서울대 법전원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가구의 연소득이 2300만원 이하인 학생이 전체 학생의 25%다. 이대 로스쿨만 해도 가구의 연소득이 2000만원 이하인 학생이 20%를 넘는다. 로스쿨이야말로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제도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로스쿨은 구조적으로 저소득층 자녀가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확실하게 부여한다. 과거 사법시험 시절 경제적 사회적 취약 계층이 법조인이 되기 어려웠다. 가난한 가정에선 연간 1000만원이 넘는 고시비용을 평균 7년씩 감당할 수 없었다. 로스쿨 도입으로 오히려 계층이동이 활발해 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전국 25개 로스쿨에선 특별전형제도를 통해 매년 입학정원의 6% 이상(지금까지 890명)이 전액장학금과 생활비까지 지원을 받고 있다.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사람 가운데 이미 315명이 변호사, 판·검사가 돼 활동하고 있다.
■사시폐지가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가난한 집 자식이 사시에 합격해 계층이동을 한다는 것은 옛날 일이다. 이미 2000년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계층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상층이라는 것이 연구결과다. 사법시험이 계층이동의 기회가 될 수는 있지만 실제 그런 일이 많이 발생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시에 합격한 학생의 80% 이상이 10대 대학 출신이고 75% 이상은 5대 대학 출신이다. 그런 대학에 다니면 일단 계층이동의 필요성은 적다고 봐야겠다. 정말 사회·경제적으로 취약계층의 자녀가 계층이동을 하기 위해선 그들에게 변호사가 될 수 있는 문만 열어 놓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로스쿨이 더 확실한 '희망의 다리'다.
■사시를 존치시켜 로스쿨이 함께 경쟁하면 되지 않나.
국민들 관점에서 사시가 존치됐을 때 제일 큰 문제는, 기득권을 가진 분들에게 그 몫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기초생활 수급자가 변호사가 되는 것은 사시 체제에서는 불가능하다. 빈부 나이 성별 배경 관계없이 공정하게 열려있다고 하는데, 사시를 보면 결국 기존의 특정대학 중심의 시험선수들이 다 가져갈 것이다. 지역출신 변호사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 공정한 경쟁이 되기 위해서는 환경을 다 고려해야 한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래도 사시는 누구에게나 공정하지 않나.
객관적인 여러 데이터를 봤을 때 사법시험이 빈부, 배경, 나이, 학력과 무관하게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없다. 과거의 데이터를 보면 법과대학에 입학해 사법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평균 7년이 소요된다. 가난한 학생이 7년 간 시험 준비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사법시험은 합격 확률이 지극이 낮다는 점이다. 1차 시험 응시자 대비 최종합격자가 지난 50년간 2.94%였다. 정말 환경이 어려운 사람이 그런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시험 준비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시가 공정했다고 하지만 그런 공정성이 다양성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7년째를 맞고 있는 로스쿨을 평가해 본다면
변호사를 시험에 의해 선발하지 않고 교육에 의해 양성한다는 로스쿨 제도의 기본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본다. 한번 시험으로 변호사가 되는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로스쿨 입학, 진급, 졸업시험, 변호사시험 등의 교육과정에서 단계적으로 걸러지고 있다. 고시촌의 고시준비생의 수가 준 것이 또 다른 증거다.
■로스쿨의 개선할 점은 없나.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문호를 더 개방해야 한다. 직장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야간로스쿨과 온라인로스쿨을 도입하는 방안도 준비 중이다. 경력단절여성들이 로스쿨에 들어올 수 있는 길도 고민하고 있다. 두 번째는 교육내용의 개선이다. 미국 예일대학은 공식적으로 실무를 가르치지 않는다. 이론만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예일 출신을 실력없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변호사가 실무를 잘 모른다고 실력없다고 한다. 진짜 실력이 무엇인가 고민해봐야 한다. 로스쿨 교육과정에서 진짜 실력을 키우는 내용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