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나무박람회 열리는 담양에서의 하루
“담양을 거닐다. 정자에 오르다. 그럼 됐다”
가을바람이 선선하다. 언젠가 대나무 숲에서 듣던 바람 소리, 댓잎 스치는 소리가 불현 듯 기억나 담양을 떠올렸다. 처음 마주 대하고 신비감을 느꼈던 대숲을 만나러 담양으로 향한다.
아침에 서둘러 길을 나서면 당일치기로 담양에 다녀올 수 있다. “하루 만에 담양을 다 둘러보겠는가?”라고 묻는다면 “아쉬움이야 말해 무엇 하랴. 결국은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담양은 대나무로 유명하지만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본고장으로 한국가사문학관과 아름다운 정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책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소쇄원 소쇄원 우물과 담장 한국대나무박물관 입구
길 따라 메타세쿼이아길 관방제림 죽녹원까지
첫 번째 목적지는 메타세쿼이아길이다. 담양으로 접어들자 초록색 색종이를 삼각형으로 오려 놓은 것 같은 메타세쿼이아가 길을 따라 끝도 없다. 오래된 나무는 거침없이 하늘로 뻗어 나무 터널을 만들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그냥 길을 걸을 수 있었는데, 어느새 관광지가 조성되어 사람들로 북적인다.
메타세쿼이아길 끝자락에는 커다란 주차장과 메타프로방스가 자리하고 있다. 담양의 작은 유럽이라는 메타프로방스는 파스텔 색의 건물로 아기자기한 분위기다. 공예품을 판매하는 곳과 음식점 커피숍 등이 오밀조밀 자리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건물 공사가 진행 중이다. 마치 아산의 은행나무길이나 지중해마을을 만난 것과 같다. 편리하고 볼거리 많은 관광지도 반갑지만, 어쩐지 고즈넉하던 이전의 기억이 아쉽다는 생각도 감출 수 없었다.
메타프로방스에서 길을 건너면 오래된 나무가 아름다운 숲, 관방제림을 만난다. 입구에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한 10분 정도면 죽녹원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죽녹원으로 향한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빛,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커다란 몸집의 나무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은 가을바람 때문에 마음이 세차게 펄럭인다. 자전거를 타고, 아니면 걸어서라도 길이 끝나는 곳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죽녹원과 전남도립대 일원에서 ‘세계대나무박람회’가 10월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박람회 입장권을 구입하면 담양의 주요 관광지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천안논산고속도로 영수증 소지자 입장권 20% 할인도 받을 수 있으니 미리 정보를 가지고 가는 것도 좋겠다.
죽녹원은 8가지 주제의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담양에서만 할 수 있다는 죽림욕이 가능한 대나무숲길에서 마침내 댓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소리가 그리워 먼 길을 달려 온 모양이다.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을 향해 솟은 대나무의 위용이라니…. 이제 가을하늘은 대나무 숲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죽녹원 대숲 메타세쿼이아길 메타프로방스
정자에 올랐다면 주위 둘러보기를…
시간은 어느새 정오를 지났다. 대통밥과 떡갈비 맛집이 즐비한 담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싶다면 죽녹원 국수거리가 제격이다. 국수집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곳을 지나 살짝 한가한 국수집에서 허기를 달랜다. 댓잎아이스크림이나 죽순빵 등 담양의 독특한 먹거리도 맛볼 수 있다.
다음 목적지는 한국대나무박물관.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서 대나무공예체험과 대나무제품 구입이 가능하다. 아이들은 대나무활이나 바람개비 같은 것을 만들어 볼 수 있고, 네 곳의 죽공예품 매장에서 국산 대바구니 채반 소쿠리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마지막 행선지는 소쇄원.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소쇄원은 조선중기 양산보가 조성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간 별서정원으로 면앙 송 순, 송강 정 철 등이 드나들며 정치 학문 사상 등을 논하던 곳이다. 고개를 숙여야 문을 통과해 소쇄원의 내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고개를 숙이며 절로 호흡을 가다듬게 된다.
정원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비밀스러움과 고즈넉함을 지닌 채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 담장 위에 두텁게 자리 잡은 이끼와 홀로 피어난 꽃무릇, 차고 맑은 물, 오랜만에 보는 우물…. 소쇄원을 거닐며 점점 말수는 줄어든다.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란 뜻의 제월당에도 올라 주위를 살펴보고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광풍각에도 한참을 걸터앉아 있었다. 소쇄원의 여러 빛깔 소리 촉감 향기를 느끼려고 집중하는 것은 참 근사한 일이다.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다른 계절에 꼭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소쇄원 부근에는 한국가사문학관, 그림자도 쉬어 간다는 식영정과 송강 정 철의 성산별곡시비 등도 찾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