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재앙의 고리를 끊자 ①

"제조·건설업 위주 예방으론 한계"

2015-12-01 10:16:07 게재

서비스 산재 비중 커져 근원적 대책마련 필요

매년 9만명 이상 재해, 19조원대 경제적 손실

옛 조상들에게 '호환' '마마'는 공포 그 자체였다. 손 쓸 틈도 없이 호랑이에게 화를 입거나, 호환마마(천연두)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호환'만 보더라도 조선왕조실록에는 7백건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영조시대에는 한 해에만 1백건의 피해와 140명의 피해자가 기록되기도 했다. 그 무시무시했던 '호환' '마마'가 지금은 아득한 옛 이야기로만 남아 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호환' '마마' 못지않은 공포의 대상은 무엇이 있을까.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산업재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산재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매년 9만명 이상이 산재를 당하고 이 가운데 매일 5명 이상은 소중한 목숨까지 잃고 있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재앙수준이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사회 전반의 인식은 안이하다는 평가다. 압축 성장기에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희생쯤으로 여기거나, 제조공장이나 건설현장에서나 생기는 불행한 일 정도로 치부하곤 한다. 과연 그럴까.

막대한 인명피해, 천문학적 손실 = 흔히 직장이나 일터를 전쟁터에 비유하기도 한다. 산재 피해 규모를 놓고 보면 이런 비유가 빈말이나 우스갯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령 이라크 전쟁에서 10년 동안 사망한 미군의 숫자는 한 해 평균 450명이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는 1850명으로 4배나 더 많다. 재해자 수는 9만 909명이다. 더욱이 지난해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전쟁보다 심각한 수준의 재해자와 사망자가 매년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비록 지난 10년간 산재발생이 점차 줄어든다지만 여전히 심각한 수준임에는 틀림없다.


더욱이 노동계에서는 정부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은 산재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산재보험 적용대상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통계를 내는 정부 발표에 포함되지 않는 재해가 상당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산업현장에서 의도적으로 산재를 은폐하는 시도까지 심심찮게 일어나고 때문에 실제 산재 규모와 피해는 정부발표를 훨씬 넘어설 것이라는 게 노동계의 공통된 평가다. 노동계가 내놓은 산재사망자 통계가 정부 발표와 달리 매년 2000명을 훨씬 웃도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어찌됐든 정부통계를 그대로 인용하더라도 우리나라 산재 발생건수와 이로 인한 피해 수준은 엄청나다. 인명피해만이 아니다. 사회경제적 손실 역시 천문학적 수치다. 2012년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 추정액은 19조 2564억원, 2013년 추정액은 18조 9771억원에 이른다.

한국노동연구원 조규식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연간산업재해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노사분규에 의한 근로손실일수의 약 83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산재로 인한 사망률은 5인 미만 사업장이 대규모 사업장에 비해 2~3배 높게 나타났다.

조 박사는 "산재사고로 인한 피해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며,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미래사회에 커다란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산재사고는 국민통합과 사회안정을 저해하는 사회적 양극화 현상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산재사고에 대한 사전적 예방 및 완화방안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충고했다.

인명피해와 사회경제적 손실을 본다면 정부가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중소규모, 1년 미만자 재해 많아 = 업종별 재해현황을 보면 산재를 '남의 일'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알 수 있다. 2014년 업종별 재해 현황을 보면 서비스업이 3만 335명으로 가장 많은 재해자가 발생했다. 그 다음이 제조업 2만 8649명, 건설업 2만 3669명, 기타 임업·광업 8256명으로 집계됐다. 점유율로 봐도 서비스 업종이 전체 재해의 33.4%를 차지했다. 이는 서비스업이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 수의 63.5%를 점유하고 있고, 전체 근로자의 47.9%가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는 서비스업 가운데 건물 등의 종합관리사업, 위생 및 유사서비스업, 음식 및 숙박업 등 7개 업종이 전체 서비스업 재해의 87.3%를 차지하고 있다.

또 최근 5년간 재해발생 형태별 분석에서는 업무상 사고가 전체 서비스업 재해자(15만 2926명)의 92.0%(14만 637명)를 차지했고, 업무상 질병은 8.0%(1만 2289명)를 차지했다. 업무상 사고 가운데는 '넘어짐' 재해가 4만 5412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떨어짐' 1만 3571명, '절단·베임·찔림' 1만 2910명, '사업장외 교통사고' 1만2528명, '끼임' 재해자 1만 1432명 순으로 나타났다.

규모별로는 50인 미만의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5년간 13만 1100명(85.7%)이 발생했고, 근속 기간별로는 1년 미만 근로자가 전체 서비스업 재해자의 절반이 넘는 9만 1180명(59.6%)가 발생했다. 제조공장이나 건설현장이 아니라 우리 주변 아주 가까이에 산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당국이 최근 프랜차이즈 업종이나 배달종사자에 대한 재해예방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력과 예산 지원, 법제도 정비 병행해야 =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달 24일 한국노총이 밝힌 서비스산업 8개 직종 조합원 1018명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20%는 '지난 1년간 건강문제로 결근한 경험'을 갖고 있었고, '1년간 몸이 아픈데도 출근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도 38.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례들이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이어질 공산도 큰 것은 물론이다. 또 한국노총 조사에서는 '최근 6개월 이내에 업무로 인한 사고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산업안전교육을 사업장에서 받아 본 적이 없는 노동자'가 43.2%에 달했으며, 예방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92.4%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부정책의 온기가 아직 현장 구석구석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인식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박두용 한성대 교수(기계시스템공학과)는 "그동안 산재가 제조업과 건설업 중심으로 틀이 짜여 지면서 서비스업에 대한 예방체계가 부족했다"면서 "서비스 산재예방을 위해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비스 산재를 가볍게 보거나 그 예방도 간단하거나 쉬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서비스 산재를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개인적 차원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서비스 산재도 제조업이나 건설업 못지않게 심각하고 복잡하며 대책도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박 교수는 고용노동부에 서비스산재를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거나 안전공단에 전문센터를 설치하는 등 인력과 예산,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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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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