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재앙의 고리를 끊자 ③

하청 노동 '위험의 외주화' 급증

2015-12-03 10:57:10 게재

산재 사망자 하청 비중 40%, 고질적 반복

원청 책임강화·산안법 개정 해법 분분

시민단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촉구

지난달 11일 민주노총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노동건강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단체는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재벌 대기업 하청 산재 근절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바로 전날(10일) 전국 대기업 현장에서 3명의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9명의 노동자가 다쳤던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하청노동자 산재사망 언제까지 방치?" = 이날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인천공항 2청사 한진중공업 컨소시엄 현장에서 100미터 대형 크레인이 덮쳐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쳤고, 거제 대우조선 현장에서는 130명이 일하던 LPG 운반선 건조현장에서 화재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쳤다. 또 전남 영암 현대 삼호중공업 현장에서는 지게차에 치여 1명이 사망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성명에서 "하루 사이에 발생한 이 안타까운 죽음은 재벌 대기업 현장의 하청 노동자라는 점, 동일 사업장의 반복적인 산재사망이라는 점,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는 점에서 똑같은 모습"이라면서 "언제까지 재벌 대기업 현장의 하청 노동자 산재사망을 방치할 것이냐"고 분노했다.

이들은 이 같은 사고가 우연히 한 번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가령 인천공항 1청사 공사 중에 24명이 산재로 사망했고, 지난 10년간 한진중공업에서 23명, 대우조선해양 27명, 현대삼호중공업 17명의 산재사망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를 향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원청을 엄중 처벌 △산재사망 처벌및 원청 책임강화 등 생명안전관련 법안을 즉각 국회 통과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을 제정 △도급금지, 원청 책임강화, 안전보건 공시제 등 대기업 하청 산재사망 근절방안 즉각 이행 등을 촉구했다.

 

11월 10일 오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화재가 발생, 작업중인 근로자 6명이 유독가스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다. 연합뉴스

 


조선, 건설업 특히 심각 =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사내하청 사망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고용부의 중대재해 분석결과를 보면 하청 근로자 사망 비율은 2012년 37.4%에서 2013년과 2014년 38.6%로 증가했고, 올 들어서는 지난 6월까지 40.2%를 기록했다.

더구나 사내하청이나 외주 사용 비율이 높은 조선, 건설업은 지난해 하청 사망자가 각각 93.7%(32명중 30명), 52.9%(425명중 225명)로 심각한 수준이다.

산업계 전반의 외주화가 확산되면서 안전관리 능력이 취약한 하청업체로 위험이 전가되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가령 건설업은 하도급 구조가 일반화 돼 있고, 제조업의 경우에도 공장 정비, 보수, 증설의 경우 외주작업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고용부가 밝힌 2015년 300인 이상 사업장 고용형태 공시를 보면 사업주간 용역, 파견, 도급계약에 의한 근로자수는 91만8000명으로 전체 459만 3000명 대비 20%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재 취약 업종인 조선업의 경우 사내하청 근로자 비율이 절반이 훨씬 넘는 64.7% 수준(2014년 10대 조선업체 실태조사)으로 조사됐다. 이들 사내하청이나 외주노동자의 경우 공장 내 정비 보수작업 등 일시·간헐적 작업이 많고, 안전관리에 취약한 업체가 많아 산재 사고에 더욱 취약한 것으로 분석된다.

"숨기고 보자" 만연 = 고의적으로 산재를 은폐하려는 시도 역시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노동단체들에 따르면 지난 7월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19 구급차를 돌려보내고 산재를 은폐하려하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에버코스 같은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의미다. 중대재해 처벌기업법 제정연대에 따르면 산재은폐 시도는 △산재처리 비율을 낮추는 시도 △119 이송과 관련된 은폐시도 △교통사고로 둔갑한 산재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산재를 당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민주노총의 실태조사에서 실제 산재처리 비율이 10% 내외에 불과하다는 점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있다.

기업살인법 제정 촉구 움직임도 = 정부는 이 같은 풍조를 근절하기 위해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원청의 안전조치 대상 위험장소를 확대하고, 하청과 동일한 수준으로 벌칙을 상향 조정하고, 원청의 정보제공 의무확인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 정도로는 불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박두용 한성대 교수는 "사내 하처의 경우 고용주와 사용주가 분리돼 있고, 하청업체는 작업장 벽에 못하나 맘대로 박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원청의 책임강화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원래 취지대로 고용관계 중심이 아니라 설비, 장소 중심으로 관리감독과 안전보건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이렇게 되면 관리책임이나 개선권한이 원청에 있으면 원청이, 하청에 있으면 하청이 알아서 하게 돼 책임소재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나 시민사회단체들은 아예 영국이나 스웨덴 같은 '기업살인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한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입법청원 중인 '중대재해 기업처벌법'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반해 일부에선 기업의 인식전환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데 무게를 두기도 한다.

권혁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은 "규제나 처벌 등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 지 과정도 함께 평가해야 하는데 결과만 평가하다보면 자칫 기업들이 운으로 돌리기 쉽다"면서 "법에서 하라는 것은 미니멈(최소수준)이고 그 다음은 결국 기업 스스로 어떻게 할 것인지 여부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모든 비즈니스에서 근로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인도 타타그룹이나 듀퐁 등이 100~200년을 이어가는 글로벌 장수기업이 된 것이나 직원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워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한 알코어 등의 사례를 보면 사주나 창립자의 철학이나 정신이 기업의 안전보건 수준을 결정짓고 결과적으로 기업이익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나 기업, 원청이나 하청 모두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산업재해, 재앙의 고리를 끊자'연재기사]
- ① "제조·건설업 위주 예방으론 한계" 2015-12-01
- ② 건설현장 산재, 겨울철에도 많아 2015-12-02
- ③ 하청 노동 '위험의 외주화' 급증 2015-12-03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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