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상 판단잘못은 배임 아니다"

2016-01-11 10:42:48 게재

강영원 전 석유공사사장 1심 무죄 … 국고 5500억 낭비 책임지는 사람없어

캐나다 자원개발업체인 하베스트사를 인수해 국고 5500억 원을 낭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강영원(65)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1심 무죄를 선고 받고 석방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김동아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강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석유공사가 아닌 강 전 사장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에 적절치 않다"며 "판단상의 과오가 있었을 뿐, 피고인에게 배임의 동기가 있었거나 거래 과정에서 장래 손실을 예상할 정도의 큰 문제가 있었음에도 이를 용인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8일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는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연합뉴스


강 전 사장은 2009년 캐나다 자원개발업체 하베스트의 정유부문 자회사 노스아틀랜틱리파이닝(날, NARL)을 인수하면서 시장가격인 주당 7.31캐나다달러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주당 10캐나다달러를 지급해 석유공사에 5500여억 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 기소됐다.검찰은 강 전 사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이날 재판부는 강 전 사장의 무죄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재판부는 "석유공사는 2009년 9월 하베스트와 인수 합의를 했고, 다음달 17일 하베스트는 같은 달 21일까지만 석유공사에 독점협상권을 주겠다고 알렸다"며, 당시 하베스트의 태도에 비추어 독점협상 기한을 연장할 수 있을지가 불분명했던 사실이 인정되고, "유가 상승 추세로 협상을 여유 있게 진행하기 어려웠던 사정이 있었다"고 봤다.

또한 "날의 자산가치가 석유공사가 인수한 금액보다 낮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석유공사가 하베스트를 적정금액 이상으로 인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인수 당시 날은 어느 정도 영업이익이 발생하고 있었다"며, "장래 손실을 입을 것이 뚜렷하게 예상될 정도로 부실한 회사로 볼 수 없어 강 전 사장이 더 신중히 인수를 검토했더라도 유가 역전 현상으로 날이 큰 손실을 입게 될 것을 예상하기는 어려웠다"고 봤다.

강 전 사장에게 다소 경영상의 판단 과오가 있었음은 인정되나, 손해의 결과는 대부분 사후 사정으로 인한 것이지 강 전 사장 개인이 경영 평가를 좋게 받기 위해 이 같은 거래에 나선 것으로는 보기 어려워 형사상 배임죄에 해당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재판부의 입장이다.

강 전 사장은 2009년 10월 하베스트 인수 협의를 위해 캐나다에 방문한 뒤 하베스트 등을 인수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귀국하자마자 당시 해외 자원외교를 총괄하던 최경환 전 지식경제부 장관을 만난 뒤 강 전 사장은 결국 인수를 추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강 전 사장의 재판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해외 자원외교 사업 비리와 관련한 첫 판단이다. 인수협의를 위해 움직인 최 전 장관 등 정부 관계자에 대한 수사는 유야무야 넘어갔던 검찰이 강 전 사장만 수사해 책임 씌우기식 기소를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강 전 사장을 대리한 법무법인 지평 채희석 변호사는 "하베스트 인수로 손실이 발생한 이유는 사적 이득을 취해서가 아니라 인수 후 유가 역전현상, 셰일가스혁명 등 시장에 예상치 못한 변동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경영상 판단으로 내린 결정에 대해서까지 검찰이 배임 혐의로 기소를 한다면 사업 경영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윤정 기자 yjla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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