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담론

'사색에서 담론으로' 신영복의 삶과 철학

2016-01-22 12:14:04 게재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만8000원

"나는 그 동안 책을 여러 권 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책을 집필하지 않았다고 강변합니다. 옥중에서 편지를 썼을 뿐이고 여행기를 신문에 연재했을 뿐이고 '강의'와 이 책(담론)처럼 강의를 녹취해 책으로 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책이 강의실을 떠나 저 혼자서 무슨 말을 하고 다닐지 걱정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책도 사람처럼 자기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생각하면 모든 텍스트는 언제나 다시 읽히는 것이 옳습니다. 필자는 죽고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1월 15일 세상을 떠난 고(故)신영복 교수(성공회대)는 강의를 할 때를 제외하고 평시에는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특히 여러 사람이 발언에 열심히 나서는 회의나 토론 자리에서는 조용히 지켜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20여년 전 경실련에서 기관지 성격의 "경제 정의"를 창간했을 때 함께 편집위원으로 다달이 회의에 참석하면서 내가 느낀 것도 그랬다. 맑고 부드러운 인상과 조용한 모습에서는 장기수로 복역하고 막 출옥한 사람의 어떤 흔적도 없었다.

하지만 회의가 혼전 양상에 접어들면 족집게처럼 핵심을 집어냈고 사람들은 거기에 따랐다.

잡지 만든 경험이 있는 신문기자, 시민 운동가, 경제학자, 재야 운동가, 해직 기자 출신 출판인 등 다양한 개성들이 충돌하는 편집회의에서 그렇게 적은 수의 말로 그처럼 많은 이견을 부드럽게 통합하고 좋은 분위기로 이끌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더구나 본인은 무엇을 이끌거나 지도하려고 든 적도 없었다) 우리는 처음엔 서울대 상대출신 경제학자여서 참가한 것으로 알았다가 조금 뒤엔 인문학자 겸 시인으로 알았다가 나중엔 말 그대로 "경제 정의" 실현을 위해 필수적인 분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는 죽고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

신영복 교수는 20년여의 옥중 생활의 기록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비롯해서 "나무야 나무야" "변방을 찾아서 " "더불어 숲" "강의" "담론"등 여러 권의 책을 남겼다. 이 책들 속에 그의 내공과 소통능력에 대한 답이 있다. 1988년까지의 수감생활 중 가족에게 보냈던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 같이 쓴 편지글을 묶은 "감옥에서의 사색"은 옥살이의 고통 속에 있는 저자가 증오와 원한, 부정적인 감정 대신에 자신을 성찰하고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어린 시선을 담은 아름다운 글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작은 것의 소중함, 옥중에서 겪은 크고 작은 일들과 가족에의 사랑이 담긴 그의 글은 읽는 이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깊이 있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평을 들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한 대학생들 외에도 수많은 일반 독자들이 스승이 실종되고 존경심이 상실된 이 시대에 그를 마음의 스승으로 여기는 이유다. .

나무처럼 "더불어 숲이 되자"던 스승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는 그의 말에는 두 개의 저서 제목이 담겨있다. 기본적으로 어떤 정치적 구호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나무 한 그루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나무가 숲이 되어 지키듯 민중의 힘으로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기술한 "강의"에 이어 마지막으로 출간한 "담론"에는 마지막 한 해 동안의 강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정리하고 다듬은 뒤 손수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고 붙인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은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인식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나누어 25편의 글을 수록했다.

특히 1부에서는 강의를 소개하고 공부하는 방식을 언급하면서 교사와 학생은 가르침을 주고 받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므로 설득하거나 주입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공부이며 구도의 행위라고 공부를 해설한다. 교재가 있지만 어차피 읽어오지 않을 것이므로 읽어오라고 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한 사람이 교재를 낭독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듣거나 답을 정해놓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는 강의를 '함께 하는 여행'으로 생각했고 실제로 수강생들과 함께 걷거나 "함께 =지혜"로 여기는 공부 방식을 권하기도 했다.

비인간적인 자본, 노동의 소외 비판

경제학자 출신의 그는 동양고전과 철학 등 비전공분야의 폭넓은 강의를 25년간이나 해왔지만 시장경제와 성장의 미명아래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는 '21세기의 야만적인 자본'에 대해서도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이 책의 2부에 실린 "상품과 자본"편에서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잘 아는 경제원칙은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다. 참으로 비인간적인 생각이다. 최대의 희생으로 최소의 효과를 얻는 게 훨씬 더 인간적이다...소비가 미덕이라는 구호도 비인간의 극치이다. 단적으로 얘기한다면 최대의 소비는 전쟁이다. 전쟁이야말로 미덕이 된다는 역설이다. 지금 그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그는 우리의 삶이 통과하는 근대사회를 상품과 자본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이해하면서 이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성찰했다. 증식을 본질로 하는 자본의 속성 때문에 모든 것이 증식되고 성장하며, 점유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죽은 사람까지도 과다한 것을 소유하고 있는 이런 사회의 성장과 발전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자본축적-기계화-자동화가 진행되면서 노동의 자율성은 상실되어 기계의 보조자로 전락했다. 철저한 노동의 소외 속에서 일어나는 경제적 양극화 현상을 저자는 가장 쉬운 언어로 설명하면서 깊은 성찰과 반성을 요구한다.

이처럼 풍부한 지식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서술되는 그의 사회비판에는 특유의 통렬하면서도 해학적인 비유법과 함께 어딘지 슬픔이 깃들여 있다. 75세가 되도록 소년처럼 맑은 시선으로 바라 본 세상의 풍경과 변화에 대한 성찰은 영롱한 시(詩)처럼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는 위대한 지식인이자 저술가, 참으로 마음이 따뜻한 한 사람을 잃었다.

차미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