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 한국 가족살인율 얼마나 높을까

부모살해 연 50건 … "정신질환 연관성 주목해야"

2016-01-29 11:25:37 게재

부모살해율, 미국의 2.5배 … "개인주의 발전한 서구와 직접비교 무리"

UN "가족살인은 전세계적 문제 … 아시아 가족살인 피해자 비중 높아"

중장비 운전기사인 A씨는 평소에도 술에 취하면 "가족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겁에 질린 부인은 11살짜리 딸을 자주 직장에 데려가 A씨 눈에 안 띄게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헛되이 어느 날 아침 A씨는 잠을 자던 부인과 10대 아들·딸을 망치로 머리와 가슴을 때려 죽였다. 딸은 곰인형을 안고 곤히 자던 중이었다. 자신도 아파트 18층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5년 전 A씨는 신경정신과에서 뇌의 기능에 이상이 생겨 '뇌병증' 진단을 받았다. 뇌병증에 따른 불면·우울증·망상에 시달리던 A씨가 지난해 병원을 찾은 것은 두세 차례뿐이었다.

지난 21일 경기도 광주에서 일어난 가족살해 및 자살사건의 개요다. 가족을 죽이고 자살하려다 실패해 붙잡힌 서초동 세모녀 사건 이후 또 한번 가족살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살인사건 중 가족살인(동거친족 기준)이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높은 편이다. 1995년 24.6%까지 올라갔던 가족살인(미수 포함) 비율은 2000년대 들어 10%대 중반까지 떨어지는 듯했지만 2012년에는 다시 19.6%까지 올랐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13년에는 16.4%로 약간 낮아졌다.

피해자가 실제로 사망한 사건을 기준으로 하면 비율은 더 높아진다. 같이 사는 친족을 살해한 비율은 2011년 24.5%, 2012년 26.2%, 2013년 23.6%를 기록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경우보다는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건수가 더 많다. 서울지방경찰청의 정성국 검시관이 전수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3년 3월까지 7년 3개월간 존속(부모·조부모·외조부모)를 살해한 건수가 381건, 자식을 죽인 사건이 230건이었다.

정 검시관에 따르면 가족살인 중에서도 부모나 조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해 비율은 약 5%로 서구의 다른 선진국보다 높다. 미국은 2%, 영국은 1~2%, 프랑스는 2.8% 수준이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만 가족살인이 부각되고 있는 걸까. 다행(?)스럽게도 그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도 가족간 살인은 골칫거리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2014년 펴낸 세계살인범죄연구 보고서에서 살인범죄 비율이 꾸준히 떨어지고 있는데도 가족살인(동거 등 포함) 비율은 여전히 비슷한 비율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UNODC는 전세계적인 살인사건 트렌드를 짚으며 "다른 종류의 살인범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역별로 다양한 변화를 보이는 반면 가족살인은 여전히 널리 퍼져 있고 끈질기게 지속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전세계 살인범죄 중 14%가 가족살인이었고 인구수를 고려하면 미국에서, 전체 살인범죄 중 비중으로는 아시아와 유럽 지역에서 높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UNODC 분석에 따르면 인구를 고려한 아시아의 가족살인율은 10만명당 0.6명밖에 되지 않지만 전체 살인범죄 희생자 중 가족살인의 희생자 비중을 따지면 20.5%(2012년 기준)로 월등하게 높았다. 유럽 지역도 전체 살인범죄 희생자 중 가족살인 희생자 비중이 28.0%로 아시아보다 높았지만 부모나 자식을 살해하는 비중보다는 동거남(녀)이 상대방을 죽이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모나 자식을 살해하는 비중으로는 아시아 지역이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부모나 자식을 죽이는 반인륜적인 범죄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꼽는 배경은 가족을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적 문화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는 "우리 사회에 왜곡된 가부장적인 문화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경제적 문제 등이 있을 때 가장들이 잘못된 형태로 책임을 지려고 하고, 가족의 목숨을 자기 맘대로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안전망도 지적된다. 곽 교수는 "사회에서 안전망 등으로 부담해줘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런 부분이 약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단순히 서구보다 한국의 가족살인률이 높다는 데에만 주목해서는 대안을 내놓기 힘들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수치로만 보면 우리나라의 가족살인율은 확실히 높지만 문화적 배경을 볼 때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개인주의적인 서구사회와 여전히 가족주의 전통이 강한 한국을 비교하면 가족간 갈등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가부장적 문화의 개선이 장기적으로 해결돼야 할 과제라면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한 정신질환으로 인한 가족살인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정 검시관의 분석에서 부모살해와 자식살해 등에서 정신질환이 이유였던 비율이 34.1%, 23.9%로 상당히 높았다. 가해자가 정신질환과 관련 있는 경우는 더 높아서 각각 39.6%, 28.7%를 차지했다. 정 검시관은 "가족 간 살인의 경우 일반 살인사건에 비해 가해자의 정신질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이수정 교수는 "외국같으면 정신질환이 있을 경우 사회적으로 해결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질환자를 가족들이 껴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 역시 가족중심적인 사고방식이 근저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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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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