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뭉치 트럼프, 꺾이지 않는 이유 있다

기성정치에 분노한 민심 강하게 대변

2016-03-14 11:40:42 게재

'막말'하지만 득실 따지는 영리한 포퓰리스트 … 보호무역주의, 대선이슈로 부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에 대해 우리는 너무 모르는 듯하다. 부동산 재벌이며, 막말과 인종차별, 성차별적 발언으로 수많은 정적들을 만들고 있는 '사고뭉치'나 '막말 대마왕'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다. 대권을 위한 학습도 부족해 각종 오타를 남발하고 사실과 다른 잘못된 발언들이 연일 가십처럼 소개되고 있다. 주말 유세현장에서는 유혈폭력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런 현상이 얼마나 보기 싫었으면 공화당 지도부에서조차 차라리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자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과연 이것이 트럼프의 전부일까. 그렇다면 왜 트럼프는 공화당 예비후보들 가운데 독보적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일까.

◆계산된(?) 사고뭉치 = "미국 사회에서 트럼프의 발언은 마치 한국에서 주류 정치인이 재벌개혁(해체)를 주장하거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독도 등 영토문제가 중요치 않다고 말하는 것만큼 파격적이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속시원하게 대변하는 포퓰리스트(인기영합주의자)에 가깝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그는 공화당 지지층 내에서 트럼프의 평균 지지율이 40%대에 이르는 것은 단순계산으로 따져보면 전체 미국인의 20%는 트럼프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기성정치에 실망한 이들에게 이민자들에 대한 공격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발언은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무턱대고 사고만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계산에 따른 전략적 사고뭉치라는 설명이다.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이 같은 트럼프 전략이 계산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화당 성향 유권자의 45%는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말했고, 트럼프 지지자의 4분의 3은 "현재 정치시스템이 고장났다"고 답했다.

이는 트럼프가 기성정치에 분노하고 경제적 불만이 커진 백인 노동자층을 주요한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가 던지는 불법이민자 추방발언 등이 충동적이고 돌발적인 발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지지층을 정확히 겨냥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시카고 유세장에서 벌어진 유혈폭력사태에 대해 13일 트럼프는 "(나는) 성난 미국인들의 분노를 대신하는 메신저"라고 주장한 대목은 흥미롭다. 반(反)트럼프 열기가 점점 더 커져가는 상황에서 불거진 폭력사태를 다른 후보에게 떠넘기면서 오히려 자신이 분노한 미국인의 대변자임을 자처한 것이다.

◆위대한 미국과 보호무역주의 = 트럼프 주장은 미국인의 자존심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지난해 트럼프의 주된 구호는 '다시 위대한 미국을 만들자'였다. 슈퍼 파워 미국의 옛 영광을 되찾자는 주장이다. 최근 트럼프의 주장 가운데 주목을 끄는 대목은 보호무역주의다. 통상 민주당이나 진보진영이 자유무역주의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고, 보수성향이나 공화당 후보들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성향을 보여 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틀을 과감히 깨버렸다. 되레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며 차별화에 성공했다. 미국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토머스 프랭크는 최근 영국 가디언지 기고문에서 "숱한 막말에도 트럼프가 인기를 얻는 것은 보호무역 강화 카드를 들고 나온 전략이 통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최근 트럼프 연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 이민문제나 인종문제가 아닌 '무역문제'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8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트럼프에 대해 "무엇보다 그는 사람들의 머리보다 내장에 호소한다"면서 "오직 트럼프만이 트럼프에게 트럼프(승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지층에게 트럼프는 비록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가려운 곳을 누구보다도 속 시원히 긁어주는 '화끈한 후보'임은 분명해 보인다.

제임스 김 연구위원은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돼 본선에 나서게 되면 중도성향을 포용하기 위해 발언이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며 "우리 입장에서는 트럼프 열풍이 공화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제대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관련기사]
- 트럼프 유세폭력, 미니 슈퍼 화요일 판가름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정재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