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법 시행령 개정 반발 확산 ①

"정부가 사학비리 더 부추기는 꼴"

2016-03-14 10:45:21 게재

법인 소송비용 교비서 지출 가능 … 상위법·국회논의 무시한 '꼼수'

교육부가 법인의 소송비용을 학생등록금으로 조성되는 교비회계에서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교육부가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하는 법률 개정 대신 국무회의만 통과하면 시행할 수 있는 시행령 개정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어 '꼼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 등 교육·시민단체들은 14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가 교직원 인사, 학교운영과 관련된 소송경비와 자문료를 교비회계로 지출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사학비리를 더욱 부추길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것으로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싼 등록금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교육부가 사립학교 법인의 소송비용을 교비로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교육단체는 등록금 반환 운동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2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학생들의 집회 장면. 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앞서 교육부는 지난 3일 '사립학교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사립대학들이 '교직원 인사 및 학교운영과 관련된 소송경비 및 자문료'를 교비회계 및 부속병원회계에서 지출할 수 있도록(제13조 제2항 및 제4항 개정) 한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교육부는 해당 조항 개정 이유로 '학교의 경영 및 학사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송비 세입·세출과 관련한 법령의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 만큼, 회계운영의 합리성 확보를 위하여 소송경비를 학교운영 상 필요경비로 세입·세출 항목에 명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시행될 경우 사립대학 법인들은 법인 관련 소송비용을 교비회계 대다수를 차지하는 등록금에서 지출할 수 있게 된다.

◆교육계 반대 성명 잇달아 =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교육·시민단체와 학부모 단체들이 잇달아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조, 한국사립대학교교수회연합회, 사학개혁국본, 참여연대 등은 4일 "불투명한 회계를 방지하기 위해 학교법인회계와 학교회계(교비회계·부속병원회계)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어도 사학비리가 끊이지 않는다"며 "법인의 잘못된 인사나 운영으로 야기된 송사에 학생들이 낸 등록금이 쓰여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교육학부모회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등록금 반환투쟁'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학부모들이 비싼 등록금을 감내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이유는 그 등록금이 우리 아이들의 질 높은 교육에 온전히 쓰일 거라는 믿음에서였다"며 "불법을 합법화해주고 그 소송비용을 학생등록금으로 충당하게 하는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 교육활동비를 그만큼 삭감하게 되어 교육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상위법 무시 = 교육계에서는 시행령 개정안이 상위법인 사립학교법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행 사립학교법 제29조는 대학회계를 학교법인회계(법인일반회계와 수익사업회계로 구분)와 교비회계(등록금회계 및 비등록금회계로 구분), 부속병원회계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또 교비는 다른 회계에 전출하거나 대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현행 사립학교법 시행령 13조 2항도 교비 회계는 학교교육에 직접 필요한 경비만 쓸 수 있도록 돼 있다. 교육부의 시행령 개정안이 교비회계를 교육 고유의 목적에 쓰도록 한 법적 취지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상위법과 배치되는데도 시행령 개정을 강행하는 이유로 일부 사립대 법인에 유리한 방향으로 법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 관계자는 "지난 2월 4일 대통령이 대학총장들에게 표명한 '사학비리 척결' 의지는 거짓인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며 "이번 시행령 개악은 수원대 사례와 같이 비리로 재판을 받고 있는 비리재단과 비리 인사를 비호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교수단체들도 최근 성명을 내고 "불법을 합법으로 변질시키고, 사학비리를 조장하며, 상위법을 거스르는 이런 개정안의 입안 취지가 매우 의심스럽다"며 "비리대학에 면죄부로 작용할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재판중인 특정 사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40가지가 넘는 비리가 확인되고도 소송비용의 교비지출 한 가지만 기소 후 정식재판에 회부되어 있는 수원대 이인수 총장의 판결이 이 개정안의 통과 여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라며 "교육부는 커다란 의혹을 감수하고도 개정안 입법예고를 강행할 절박한 이유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총선 전 처리한다 = 교육부의 입법예고 기간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회적 관심이 총선에 집중되어 있는 시기를 이용해 반대여론을 피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정진후 의원(정의당)은 "개정안에 대한 의견제출 기한을 4월 12일로 하기 위해 3일 입법예고한 것 같다"라며 "총선 하루 전에 의견제출이 마무리해 야당의 반발을 피하기 위한 수순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대학교육연구소도 "야당 반대가 뻔한 국회를 통한 법률 개정 절차를 거치기보다 국무회의만 통과하면 되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같은 논란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운영과 관련된 소송비용인데도 교비로 집행하지 못하게 하면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요청이 대학에서 지속적으로 있었다"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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