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본색'과 오바마의 무리수

2016-05-27 11:01:23 게재

보수 성지서 G7 정상들 환대 … 오늘 히로시마 방문 메시지 관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교술에 세계 정상들이 제대로 들러리를 섰다. 26일 일본 미에현 이세시마에서 개막한 G7 정상회의에 대한 상당수 언론의 평가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베 총리가 주요정상들 손을 잡고 가장 먼저 이끈 곳이 보수성지로 불리는 '이세신궁'이기 때문이다.

이세신궁은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만큼은 아니지만 일본 천황주의 총본산으로 불릴 정도로 상징성이 적지 않다. 틈만 나면 보수회귀를 시도해온 아베 총리로서는 이렇게 좋은 호재를 놓칠 리 만무하다. 아베의 의도대로 주요국 정상들이 한 시간 가까이 이곳을 둘러보고, 식수까지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전달됐다.

테러위협이나 난민문제, 국제경제 문제 등 G7 정상회의 주요의제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가 전달됐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들이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의 '정상(서밋)외교 승리'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늘 오후 G7정상 회의가 끝난 뒤에는 더 큰 퍼포먼스가 기다리고 있다. 다름 아닌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다. 1945년 8월 1일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지 71년 만에 현직 미국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를 두고 미국 내에서조차 찬반논란이 일 정도다. 그만큼 예민한 이슈다. 자칫 전범국가인 일본에 대해 면죄부를 주게 돼 침략전쟁의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오바마 행정부도 모를 리 없다. '원폭투하에 대한 사과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은 것도 이런 기류를 의식해서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09년 '핵무기없는 세계'를 외친 이래 7년의 활동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상징물이 필요했다. 이것이 임기말 히로시마 방문 결정으로 이어졌다. 무리한 실적주의라는 지적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미일 동맹이라는 외교안보측면의 중요한 손익계산서도 포함돼 있다. 그동안 중요한 대목마다 오바마행정부와 뜻을 같이 해 온 아베 정부에 대해 이 정도 선물을 줄 수는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외교안보전략적 측면에서 오바마는 아베 정부에 이 정도 힘을 실어주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면서 "다만 결과적으로는 역사문제나 이중피해자인 한국인 희생자 등의 문제가 남는 측면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일본에 면죄부를 준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만 보는 것은 균형 잡힌 시각이라 할 수 없다"면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장해 온 오바마가 원폭 피해자를 기리는 도덕적 우위를 보여주면 일본의 향후 일탈적 행위에 적잖은 부담을 안겨 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점에서 국내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공원 방문시 바로 인근에 있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탑도 들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방문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바로 옆에서 아베 총리가 동행 하는 상황에서 예정이 없이 갑자기 발걸음을 돌려 한국인 희생자 위령탑을 방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예정된 동선에서 벗어나 한국인 희생자 위령탑을 들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자칫 오바마 대통령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무기없는 세상'이라는 메시지가 한일간 역사문제로 헝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헌화 후 제시할 메시지를 통해 한국인 희생자를 포함한 모든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함께 평화메시지를 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아베는 퍼포먼스에, 오바마는 메시지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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