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바뀐 산업경쟁력 강화회의

2016-06-21 11:12:28 게재

구조조정방안 결정하고 뒤늦게 규정 마련

"컨트롤타워 없다 비판에 장관급 회의 급조"

제1차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이달 8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가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 규정 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한 차례 회의를 개최하고 나서 회의 규정을 마련하겠다는 것인데 급하게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를 만들려다보니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1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산업·기업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될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 규정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부처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규정에는 회의 참석 범위와 역할, 분과 운영 등에 대한 사항이 담길 예정이다. 부처 협의를 통해 규정 제정안이 마련되면 법제처 심사와 대통령 재가 등을 거쳐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규정이 마련되기도 전인 이달 8일 첫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 열고 해운·조선업 구조조정 추진계획과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을 확정·발표했다. 회의 운영과 관련한 규정도 갖추지 않은 채 회의를 소집해 주요 정책을 결정한 셈이다.

기재부는 경제관계장관회의 규정 등을 준용해 회의를 개최했으며 각 부처 장관들은 행정청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의사결정에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며 "장관들이 모여 실질적인 결정을 내렸고, 다만 회의 규정을 마련하는 데에는 행정적인 절차가 있어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관련 규정을 마련하기 전에 회의를 열어 주요 정책사항을 결정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박근혜정부 첫 해인 2013년 현오석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관계장관회의와 대외경제장관회의를 통해 경제정책방향을 잡아나가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기로 하고 취임 직후인 3월 25일 경제부처 장관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열었다. 사실상 경제관계장관회의였지만 기재부는 회의가 아닌 '간담회'라고 이름을 붙였다. 회의 개최의 근거가 되는 규정 개정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공식적인 첫 경제관계장관회의는 규정 개정 작업이 끝난 4월 10일에서야 열렸다. 첫 대외경제장관회의도 재정지출을 수반하는 대외경제정책까지 심의대상에 포함시키는 규정 개정이 마무리된 4월 5일 개최됐다.

이렇다보니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비판을 받은 정부가 뒤늦게 산업경쟁력 강화회의를 급조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최근 국가미래연구원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컨트롤타워의 투명한 의사결정이 기업구조조정 추진 계획 발표 이전에 이뤄졌어야 한다"며 "주요 결정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만든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구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김동원 고려대 교수는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점, 차관급 회의를 부총리가 위원장을 맡는 기구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관계장관회의라는 것도 결국은 누구도 분명하게 책임지지 않는 불명확한 제도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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