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봉제골목' 거리예술 덧입고 재도약

2016-10-18 10:13:15 게재

종로구 창신동 야외박물관에 봉제인 조형물

낙산·동대문디자인플라자 연계, 관광자원화

'봉제의 품격 라성사, 남성복 코트·재킷 재단·재봉' '최고의 품질 영진사. 숙녀복 바지 재단·재봉' '최상의 서비스 아트사, 바지 마무리(완성)' '창신동의 자존심 에이스, 숙녀복 바지 재단·재봉' ….

1000개 가까운 소규모 봉제업체가 몰려있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의류업체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고 2000년대 창신·숭인 뉴타운 지정이 맞물리면서 침체됐던 창신동 봉제골목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거리점포와 오토바이가 점령한 도로 일부가 거리와 봉제인 역사를 담은 야외박물관으로 꾸며졌고 최근에는 골목을 지켜온 봉제인 조형물까지 들어섰다. 종로구는 서울시와 함께 진행 중인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해 기반시설을 갖추고 인근 한양도성이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찾는 관광객들 발길을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서울 종로구가 창신동 봉제골목 일부 구간을 봉제거리박물관으로 꾸몄다. 작업환경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도로를 정돈하고 봉제산업 역사를 알리는 안내판과 작업 중인 봉제인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설치했다. 사진 종로구 제공


창신동 봉제골목 하청공장은 국제적 의류도매시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동대문시장의 실질적 '뒷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로구는 산업구조 변화에 밀린 봉제골목을 산업문화유산으로 차별화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270여명의 공장주들이 모여 '647모임'을 꾸린 여성복 전문 골목 647번지가 우선 대상. 미로같은 골목과 원단·자재를 나르는 오토바이마저 살아있는 봉제산업 역사인 만큼 거리 자체를 박물관으로 꾸몄다. 2014년부터 시작해 올해 1월 마무리한 '봉제거리 박물관' 핵심은 봉제산업 가치 재조명과 봉제인 자긍심 고취. 거대한 시설물을 짓는 대신 혼잡한 도로를 정돈하고 창신동과 봉제산업을 알리는 안내판을 설치하는 정도로만 손을 봤다.

1950년대 광장시장, 1960년대 평화시장, 1970년대 보조 자재 전문시장인 동대문전문시장이 개장하면서 하나둘씩 유입된 창신동 봉제업계 역사는 기본. 오전 9시 작업 주문과 원자재 공급으로 시작해 다림질 포장작업을 거쳐 최종 납품준비를 하는 새벽 5~6시까지 봉제공장 24시간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객공(임시로 고용한 직공)이나 시다(보조원) 등 현장에서 쓰이는 용어는 친숙한 듯 낯설다.

백지 위에 손글씨로 대체했던 간판은 봉제업을 상징하는 재봉틀 그림 위에 봉제인들이 선호하는 문구를 담은 '창신동형'으로 탈바꿈했다. 이은지 관광체육과 주무관은 "대부분 세입자라 공장을 이전하면 옮겨가기로 집주인 동의를 받고 19개 공장에 맞춤형 간판을 부착했다"며 "건물주와 세입자 동네공동체까지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라 여느 거리미술품과는 의미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647모임 회합공간은 '기억의 벽과 벤치'로 다시 태어났다. 일대 봉제인 이력이 연도별로 적혀있어 골목이 봉제산업 중심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성화 에이스 대표는 "거리박물관을 계기로 봉제인들도 스스로 가치를 깨닫고 자존감을 회복하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5월부터는 창신동 봉제산업 변화를 이끄는 주역들을 조형물로 만들어 골목에 배치했다. '동대문 그 여자'로 통하는 김종임 봉제사, 봉제와 재단의 달인으로 불리는 김태형 재단사, 공동체와 디자인 결합을 추구하는 홍성재 사회적기업가 등이 작업하는 모습을 표정까지 생생하게 담았다.

봉제골목 위 낙산공원에는 창신소통공작소를 마련, 봉제를 포함해 목공예 가죽공예 등 주민과 방문객을 위한 체험공간으로 꾸몄다. 골목길 해설사가 낙산공원에서 시작해 소통공작소를 거쳐 봉제골목까지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울시가 일반주택 두채를 매입해 준비 중인 이른바 봉제박물관이 내년에 문을 열면 봉제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도 가능해진다.

종로구는 남성복 봉제공장이 밀집한 42번지 일대까지 거리박물관을 확대하는 한편 봉제인 시각 조형물을 계속 추가할 계획이다. 한양도성과 낙산공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 동대문시장, 동대문문구완구시장과 청계천 등 일대를 찾는 관광객들 발걸음을 창신동으로 돌려 지역 활성화를 꾀한다는 구상이다. 김영종 구청장은 "창신동은 다양한 역사문화유산이 산재돼 있어 문화관광 측면에서도 잠재력이 크다"며 "봉제산업 가치와 역사를 담은 공간을 넘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지역관광 거점으로 조성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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