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 잃은 대통령, '리더십 공백' 판박이
1997년 김영삼, 한보·기아차 → 김현철 구속 → IMF 외환위기... 2016년 박근혜, 한진해운·대우조선 → 최순실사태 → 다음은?
박 대통령, 18년 인연 3인방 내보내
IMF 직전 아들 구속한 YS 처지 비슷
"국회 주도의 대안 리더십 주목"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역정을 함께 한 '청와대 3인방'을 내보냈다.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던 가족같은 최순실씨는 검찰에 불려갔다.
박 대통령의 일정은 지난달 20일 수석비서관 회의 후 극도로 제한적이다. 한 언론은 박 대통령의 이같은 처지를 '텅 빈 동굴에 혼로 앉아 있는 참담한 심정일 것'이라고 전했다.
1997년 5월 아들을 구속시킨 YS의 청와대가 그랬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대통령이 '멍'한 표정으로 집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기억했다. YS에게 아들 현철씨가 단순한 아들 이상의 존재였듯, 박 대통령에게 3인방과 최씨는 측근과 비선을 넘어 정책결정의 동반자라는 표현이 적합하다는 게 중론이다.
◆김현철 구속 후 YS정부 리더십 타격 = 1995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집권당은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수세에 몰린 정국돌파를 시도한다. 1996년 12월25~26일 비밀작전을 벌이듯 노동법·안기부법 개정을 밀어붙인다.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반발이 거셌고, 노동법 개악에 항의한 노동계의 총파업과 맞물려 사회적 갈등이 심화됐다. 1997년 1월 한보그룹 부도사태가 터졌다. 자기자본이 2200억원이 불과한 한보가 5조7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계 유력자들이 잇따라 도마 위에 올랐다.
재계 서열 14위 그룹의 특혜대출에 소통령으로 통하던 현철씨가 배후일 것이라는 의혹이 집중 제기됐다. 특히 YS의 가신으로 청와대 총무수석이던 홍인길이 검찰수사 과정에서 '깃털' 논란을 제기해 '몸통'에 대한 국민적 의혹은 확산됐다.
김현철씨는 1992년 대선에선 선거 전략을 짜며 YS의 대선을 도왔고, 당선 이후엔 별도의 팀을 운영하며 사실상 국정운영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의혹을 받아오던 터다. 여론에 밀린 검찰은 1997년 2월21일 현철씨를 소환해 특혜대출 의혹에 대한 조사를 벌였으나 5일만에 무혐의로 풀어줬다. YS는 "이유야 어떻든 모든 것은 저의 부덕의 결과로 대통령인 저의 책임"이라며 "만일 제 자식이 이번 일에 책임질 일이 있다면 당연히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이라고 대국민 사과까지 한 상황이다.
의혹 해소를 기대했던 여론은 달아 올랐고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그해 3월 현철씨가 다니던 비뇨기과의 CCTV가 공개됐다. YTN 사장 선임에 주도적으로 관여했고, 민간인 신분으로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뒤받침할 내용이 속속 드러났다.
결국 검찰은 재수사를 벌여 5월17일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현철씨를 구속했다.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못했으나 검찰수사와 무관하게 현철씨가 각료 임명이나 군 장성인사에도 개입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 YS정부는 식물정부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대통령이 의존했던 동반자의 부재는 정책결정의 지연현상으로 이어졌다. 1996년부터 나타난 각종 경제현안에 대한 대처는 눈에 띠게 느려졌고 결국 1997년 외환위기 사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2016년 청와대 사정도 비슷하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집권당은 수도권을 내주며 완패했다. 일방독주식의 청와대 정치에 유권자들이 내린 심판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박 대통령의 통치방식은 변함이 없었다. 한진해운, 대우조선해양 등 경제의 축이 됐던 산업의 위기현상이 나타났다.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불안심리가 높아진 상황이다. 특히 한진해운 사태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박근혜정부의 경제리더십은 '0점'에 가까웠다. 여기에 사드배치,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한 대처능력, 노동계 파업 등 사회적 갈등 등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이었지만, 비선과 측근에 의존하는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방식은 계속됐다.
◆비선·측근정치 의존, 현안대처 낙제점 = 측근중심의 정치행태에 대한 우려는 빗나가지 않았다. 40년 가깝게 대통령 지근거리에 있던 최순실씨가 미르·K스포츠재단뿐만 아니라 청와대 인사는 물론 외교·안보 현안 전방위로 관여했다는 의혹이 확대됐다. 문체부 등 정부부처가 민간인 신분의 최씨에게 좌지우지 됐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매일 터져 나왔다.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에 손댔다는 증언에 이어 최씨 태블릿PC의 내용이 공개되자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공황상태'가 됐다. 박 대통령이 부랴부랴 '최씨에게 연설문과 홍보 등을 맡겼다'며 사과했지만 국민의 분노만 가중시켰다. '순수한 의도'라며 최씨를 옹호하려다가 거센 역풍을 맞은 것이다. 대통령 지지도는 14%까지 떨어졌다. YS도 아들 현철씨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을 때 "현철이가 그럴 리 없다"며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사과연설이 YS의 사과성명과 판박이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드러난 내용만으로도 최씨는 박 대통령의 단순한 측근 이상의 존재이다. 최씨 사태는 특히 1998년 보궐선거에서 인연을 맺은 후부터 대통령의 정치적 수족으로 활동해 온 3인방 경질로 이어졌다. 18년간 이어진 '박근혜식 정치'의 한 축이 무너진 셈이다. 최씨와 3인방의 공백은 박 대통령의 '식물상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9년을 사이에 두고 측근정치 → 부패비리 → 사법처리는 단순한 측근관리에 대한 문제제기에 머물 사안이 아니다. 정권뿐만 아니라 정부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리더십 실종'의 우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측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었다면 국정기능의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측근비리로 인한 리더십 위기라고 해도 19년 전 보다 지금이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비선에 가려졌던 측근인사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손보고, 문체부 등 부처를 장악하고 기업과 대학을 좌우 했다는 점에서 국민적 분노가 더 큰 상황"이라며 "YS는 그나마 위기를 돌파하는 정치력을 갖췄던 인물"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경제정책의 방향설정이 중요한데 대통령 주도의 국정 운영 동력이 상실돼 내각이 주도권을 갖기 힘든 만큼 국회가 대안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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