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가식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은 마음 ‘퍼니걸’에 담았어요”

2016-11-07 11:26:01 게재

[팝아트 작가로 변신한 성우 안영아]

2003년 KBS 공채 30기 성우로 발탁돼 성우로서 평탄한 삶을 살았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유명 애니메이션 ‘구름빵’의 ‘애드’, KBS ‘쿵야쿵야’에서 ‘주먹밥’ 역할 등이 그가 목소리 연기한 배역들이다.  
2006년, 갑자기 손이 떨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엄마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기에 덜컥 겁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안영아(42) 작가 역시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말았다.

 

벼락같이 덮친 파킨슨병, 새로운 인생 살게 해

파킨슨병은 서서히 근육이 굳어가는 병이다. 예정된 고통은 안 작가를 괴롭혔다. “몹시 힘들었어요. 증세가 심해져 거리에서 3시간가량 꼼짝도 못하고 서 있기도 했고 말도 안 나오고…. 정말 괴로웠죠.”
하지만 안 작가는 결코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랑 동병상련을 겪으며 사이가 더 좋아지라는 하늘의 뜻’으로 해석했다.
더 이상 일을 계속하기 어려웠다. 요양할 수 있는 도시를 찾다가 지난해 아무 연고 없는 아산에 내려왔다. “아산의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저를 도와주는 사람도 많이 만났고요.”
안 작가는 특유의 천진한 미소를 터트리며 “자신이 복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을 따라 내려온 언니 덕에 더 즐겁고 고맙다. 언니는 작업실 옆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한다.
아산에 온 이후 어릴 적부터 소망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천성이 순수하고 낙천적인 그가 꾸밈없이 보여줄 수 있는 장르, 팝아트였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죠. 앤디 워홀의 작품을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욕구가 생기더군요. 내 마음 가는대로 예쁜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병은 계속 진행됐다. 결국 올해 3월에 뇌심부자극술을 감행했다. 양쪽 쇄골 밑에 배터리를 심었다. 인위적인 자극을 뇌에 전달해 의도하는 행동을 유발시켜주는 것이다. 아직 걷기는 불편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행동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림에 더 몰두할 수 있어 기뻤다.

소행성 B318에 살고 있는 천방지축 외계소녀 퍼니걸

안 작가는 자신이 생각한 메시지를 그림에 퐁당퐁당 담갔다. 메시지는 캘리그라피로 단순하고도 강렬하게 표현했다. 안 작가의 마음에서 쏙쏙 빠져나온 단상들은 그의 그림에서 전달력을 배가하는 전령이 됐다.
달걀을 그린 팝아트에는 ‘Get out of there’, 전구를 그린 작품에서는 ‘Thinking free’를 적어 넣었다. 이른바 ‘캘리팝’이다. 솔직함을 전제로 때론 진지하게, 때론 코믹하게 안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그림에 심었다.
30년간 그림을 그려온 BL기획 이병임(49) 대표는 “안 작가는 색을 가지고 놀 줄 알며 내면의 것을 서슴없이 그림으로 표현할 줄 아는 작가”라고 평했다.
안 작가는 소행성 B318에 살고 있는 천방지축 외계소녀 퍼니걸이라고 자칭한다. 어린왕자  옆 동네 별이란다.
“퍼니걸은 사람의 마음이 훤히 보이는 투명별에 살다가 지구로 모험을 왔어요. 지구에 와서 사기와 거짓, 가식으로 무장한 가진 인간들의 속을 보며 킥킥대곤 하죠.” 동화 속에서 안 작가는 자신이 바라는 순수한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안 작가에게 그림을 배우러 온 이들은 그에게서 행복을 느끼고 간다. 같은 병을 앓아 온 한 제자는 안 작가를 보고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병을 슬퍼하기보다 세상에 솔직하게 다가선 작가의 삶의 태도 덕분이었다.
“저는 그림을 가르치려 들지 않아요.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그림에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이죠. 교육은 아이들 특징과 개성을 잘 살려줘야 하는데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보면 정말 할 말이 많아요.”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던 그가 교육에 대해서는 매우 답답해했다.

 

“퍼니걸과 KBS 성우 친구들이 은행나무길에 모여요”

안 작가는 주위사람들이 ‘현재 삶에 최선을 다하고 만족해하는 사람’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이병임 대표는 “거름망 없는 자유로운 생각을 가졌다. 남들이 못하는 것을 시원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낄 정도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작가”라고 칭찬했다.
즉흥적이고 감성적, 감각적인 안 작가의 그림은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번지는 작품이 많다. 자신의 모습처럼 꾸밈없고 솔직담백하다.
안 작가는 그동안 전념해온 자신의 작품을 시민들에게 활짝 내보이는 특별한 전시회를 열었다. 또한 팝아트 작가 퍼니걸로 변신한 안 작가를 축하하기 위해 KBS 성우 친구들 약 9명이 은행나무길에 모인다. 성우 친구들은 그동안 출연했던 애니메이션을 현장에서 직접 더빙 시연하며 참가자와 함께 하는 더빙 체험, 성우 팬 사인회, 작품 경매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은행나무길을 찾는 방문객에게 독특한 추억을 선사할 예정이다.
“오세요, 사람들이 즐거워할 공연이에요.” 다듬기보다 느낌 그대로 충실히 표현하는 안영아 작가. 가식 없는 그의 모습에서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물씬 풍겼다.

작업실명 : 소행성

◇ KBS 공채 성우 안영아 출연 더빙쇼 ‘팝아트 작가 퍼니의 KBS 성우 친구들’
일시 : 11월 5일(토) 오후 1시
장소 : 아산문화예술공작소 앞 광장

◇ 안영아 작가의 팝아트 작품전 ‘퍼니의 Fun fun한 전시회’
기간 : 11월 15일(화)까지
장소 : 아산문화예술공작소 1층 광장 카페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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