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 … 새로운 전쟁 위한 '플랜B(최선책 실패한 후의 차선책0' 가동됐다
전략경제학자 윌리엄 엥달 "IS대신 이스라엘 내세운다"
미국 사회가 온갖 스캔들을 뚫고 부상한 정치적 천재에게 압도당해 결국 대선까지 허락했다는 상상이 가능키나 할까.
트럼프의 당선은 데이빗 록펠러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등 구시대 인물들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지배층과 그 아래 씽크탱크들의 세세한 계획 아래 이뤄진 것이다. 단순하게 말해 장막 뒤 지배층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옹호하는 전략, 즉 러시아·중국과 대립하며 리비아의 가다피나 이집트 무바라크처럼 미국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을 컬러혁명(민중봉기)으로 전복하려는 기존 전략을 고수할 경우, 미국에 닥칠 미래는 지정학적 패권을 잃는 일뿐이었다는 점을 직시했다.
미국의 작은 식민지에 불과했던 필리핀이 이제는 대놓고 미국 대통령에게 저급한 욕설을 던지고 미국과의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공언하는 시대다. 전 세계 각 나라들이 하나둘씩 러시아·중국과 경제적 정치적 연대를 하고 '일대일로'로 불리는 유라시아 경제기반시설 건설에 동참하는 시대다. 이런 비상시국엔 플랜A가 아니라 플랜B가 가동돼야 한다.
미국 지배층이 플랜B의 주역으로 낙점한 인물은 바로 카지노재벌 트럼프였다. 정치적 백지장이자 대중들을 어르면서도 달랠 줄 아는 우두머리수컷이다. 협박과 공갈에도 능하다. 대중들에게 두려움과 환호를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이다.
심리학적 용어로 트럼프를 빗댄다면 '소시오패스'가 적합하다. 도덕이나 법적 기준을 무시하는 반 사회적 인격장애자다. 나르시시즘도 괜찮은 말이다. 자신의 재능을 과장하고 다른 이의 관심을 갈구하는 극도의 이기주의자다. 그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안다. 트럼프는 결코 존 F. 케네디나 샤를르 드 골이 아니다.
확신을 갖고 말하건대, 2017년 1월 20일부터 펼쳐질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를 지켜보라. 미국은 곧 전쟁준비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월가와 군산복합체는 경제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선택된 것이다. 그의 임무는 미국의 글로벌 패권이 허물어지는 시대적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택된 자다. 딕 체니와 폴 울포위츠가 2000년 9월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 보고서에서 강조한 대로 트럼프는 미국의 군사력을 재건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속임수 전략이 필요하다.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미 전략은 개시됐다. 트럼프는 대선 승리 직후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전화를 걸어 양국간 긴밀한 협력을 다짐했다. 러시아 매체들은 '최악으로 치달았던 오바마 대통령 시대의 미-러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며 환영 일색이다. 줄곧 러시아와의 전쟁이 임박했다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도 최근 갑작스레 러시아를 달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푸틴의 지인으로 알려진 캘리포니아 공화당 하원의원 다나 로라바처가 국무장관 후보자 물망에 오르고 있는 사실도 이와 무관치 않다. 헨리 키신저가 말한 '힘의 균형' 전략으로, 두 명의 적이 있을 때 그중 힘이 약한 자를 부추겨 관계를 교란시키는 작전이다. 미국은 러시아를 택해 중국을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 물론 푸틴이 계략에 넘어갈 만큼 순진하거나 어리석진 않다. 하지만 그게 트럼프를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들의 계획이다. 올 여름 미국 원로정치인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언론인터뷰에서 중-러 협력을 막기 위해서는 양국관계를 이간질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중-러 협력 막으려 양국관계 이간질"
트럼프의 낙점은 1992년 부시-울포위츠 독트린에 기초한 글로벌 지배전략을 전환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전략은 미국의 유일 패권 유지를 위해 미국에 도전하는 나라를 상대로 선제 공격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지만, 성공적이지 않았다.
이제 관심은 트럼프 내각에 어떤 인물이 참여하는지다. '트럼프 시대'라는 제목의 연극에 어떤 배우들이 등장할까.
트럼프 당선 직후부터 행정부 주요보직을 놓고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물망에 올랐고, 속속 내정됐다.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3성장군 마이크 플린,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내정된 마이크 폼페오 의원, 법무장관 내정자 제프 세션스, 신설된 백악관 수석전략가 내정자 스티브 K. 배넌 등이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플린 전 장군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국제적 명망의 분석가들은 트럼프의 플린 임명을 크게 환영했다. 그가 알카에다 계열의 알누스라전선 등 이슬람국가(ISIS) 테러집단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은밀한 지원을 적극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역시 '전략적 실수'라고 맹비난했던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미국이 러시아와의 대립으로 힘을 소진하지 말고, IS 등 급진 테러조직과의 전쟁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탓에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7월 플린을 국방정보국(DIA) 국장으로 임명했지만 2014년 8월 해고한다. 플린이 자신의 뜻과 달리, 러시아와의 대립을 반대하고 시리아 대통령 아사드와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플린의 기본 입장은 IS는 물론 오바마-힐러리와 긴밀히 연계된 '무슬림형제단'을 단호히 배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를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의 사도'라고 오해해선 곤란하다. 그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군사전문가다. 그는 IS나 무슬림형제단을 은밀히 지원해왔던 전략이 실패했기 때문에 이제는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를 내세워 미국의 패권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과 IS, 이라크에 대한 플린의 그간 언급을 따로 떼어내 해석해선 안된다. 수십년 동안 CIA와 국방부가 무슬림형제단과 기타 급진 테러리스트들을 훈련해 대리전을 수행케 했지만 역효과만 불렀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지난 7월 15일 터키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이슬람 성직자 펫훌라흐 귈렌의 인맥을 이용해 터키 정부를 전복하려던 CIA의 쿠데타가 불발에 그친 것이나 이집트 무바라크, 리비아 가다피 등을 제거하고 미국에 복종하는 무슬림형제단이 권력을 잡도록 공작을 폈지만 결국 실패한 게 대표적 사례다. 공작 실패로 전 세계 많은 나라가 미국에 등을 돌리고 미국이 조종하는 대리전을 거부하게 됐다는 것이다.
군사정보전략가인 플린의 입장에서 이제는 다른 전략이 필요한 때다. 미국이 무슬림형제단이나 IS와 관계를 끊고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과 전면적 협력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미국 우파온라인매체 '데일리와이어'에 따르면 테러와 중동외교담당보좌역인 왈리드 파레스가 최근 이집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자는 무슬림형제단을 불법 테러조직으로 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극구 반대했던 일이다.
무슬림형제단은 1950년대부터 CIA와 관계를 맺어온 전 세계 최대 이슬람 조직이다. '내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문구가 있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파레스는 테러와 중동외교에 대한 트럼프 당선자의 핵심보좌관이지만, 친 이스라엘 계열의 미국 씽크탱크인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이기도 하다.
워싱턴에 소재한 FDD는 2001년 9월 11일 벌어진 '9.11테러' 직후 설립됐다. 설립자는 공화당 전국위원회 커뮤니케이션국장을 지낸 클리포드 메이로, '다원주의를 촉진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옹호하며 테러리즘을 낳는 이데올로기와 싸운다'를 설립이념으로 내세웠다.
주목할 만한 점은 FDD의 자금원이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와 가까운 미국 억만장자집단이 설립하고 재원을 대고 있다. 기부자들 중에는 라스베이거스와 마카오 카지노재벌인 셸든 아델슨, '홈디포'(Home Depot) 공동설립자인 버나드 마커스, 위스키업체 상속자인 새뮤얼, 에드가 브론트만 형제, 월가 억만장자 투자자인 마이클 스타인하트, 폴 싱어, 레오나르도 에이브럼슨 등이다. 아델슨은 트럼프 후보에 2500만달러의 선거자금을 대기도 했다.
IS·무슬림형제단은 실패, 이젠 이스라엘
이런 점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 시도를 가장 강도높게 비난한 미국 씽크탱크가 FDD인 것은 당연했다. 이란 핵합의에 대해 무려 17번의 비판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했다. FDD 회장인 마크 두보위츠는 이란과 이란의 석유수출에 대한 경제제재 입안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 인물이다.
FDD 부회장인 소비 더쇼위츠는 14년간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협의회'(AIPAC)에서 근무한 인물이다. AIPAC은 시카고대 국제관계학 교수 존 미어샤이머가 "미국 의회의 목을 조르는 힘센 이스라엘 정부기구"라고 일컫는 곳이다. 트럼프는 지난 3월 '2016년 AIPAC 연례총회'에 연사로 초청받아 연설한 바 있다.
플린과 CIA 국장 내정자 마이크 폼페오는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를 폐기하고 이란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플린은 지난 7월 '전장에서 : 급진이슬람과 싸워 이기는 법'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FDD 후원을 받는 마이클 레덴과의 공저였다. 역사학자이자 철학가, 신보수주의(네오콘) 외교정책분석가인 레덴은 86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연루됐던 인물이다. 미 정부가 이란에 비밀리에 무기를 판 돈으로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탄로난 것으로, 적국 이란에 무기를 팔았다는 점에서 충격적 사건이었다. 그는 십수년 전 '전 지구적 파시즘'(Universal Fascism)이라는 박사논문을 쓴 바 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파시즘 정권을 전 지구적 모델로 삼을 수 있을지 여부를 진단한 논문이다. 즉 단일 패권을 통한 파시스트적 세계질서의 구현 가능성을 따진 것이다.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는 레덴은 네오콘의 대부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는 폴 울포위츠와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등이 옹호하는 공세적 외교정책의 윤곽을 짠 인물이다.
2003년 부시-체니-울포위츠가 진두지휘한 이라크 침공전쟁이 한창일 때 레덴은 '현대 테러리즘의 온상인 이란에 공격 초점을 맞춰야 할 때'라는 제목으로 친 네타냐후 단체인 '유대인 국가안보연구소'에서 강연을 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외교로 문제를 풀려는 태도를 집어치우라"며 "미국이 이란과 시리아 레바논과의 전면전에 나서 그들 나라를 자유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트럼프 내각을 짜는 과정에서 핵심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인물은 마이크 클린과 저레드 쿠시너다. 쿠시너는 트럼프 맏딸 이방카의 남편으로, 유대인 부동산 개발업자다. 클린과 쿠시너는 트럼프 당선자가 최고급 국가정보를 브리핑받는 자리에 늘 동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또 다른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미 진행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