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을 인용하라" … 촛불시민, 헌법재판소 압박

2016-12-17 19:10:06 게재

8차 촛불집회, 광화문에 60만명 모여

"지금은 출발점일 뿐 … 주권자 힘 보여줄 것"

'황교안 아웃' 목소리 높아져

"탄핵 가결됐을 땐 뭔가 이긴 것 같더니 변한 게 없더라."(임한빈, 아리랑목동 개사곡 가수)

"새벽이 곧 올 줄 알았는데 아직 어둠이 짙다. 스스로 물러날 어둠이 아니기에 촛불을 계속 들어야 한다."(정해경 민주노총 부의장)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후 1주일이 지난 17일, 다시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은 또 다른 분노를 느낀 모습이었다. 압도적으로 탄핵안이 통과되는 것을 보면서 모처럼 승리감을 맛 봤지만 그 이후 정치권이 돌아가는 모습은 그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촛불을 들었다는 시민들은 "우리가 황교안 보려고 박근혜 탄핵했느냐" "광장에서 외친 게 많은 것 같은데 된 것은 탄핵가결 하나뿐"이라며 씁쓸함을 토로하면서도 '촛불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계속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날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헌법재판소(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였다. 24쪽 분량의 답변서에서 박 대통령은 탄핵 사유 13건을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1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주최한 '박근혜 즉각 퇴진 공범처벌·적폐청산의 날' 집회에서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이 헌재에 답변서를 제출했는데 탄핵사유를 하나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면서 "참사 당일 7시간 의혹에 대해 박 대통령은 불행한 일이지만 대통령이 책임 질 일은 아니다, 생명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양심도 기대할 수 없는 뻔뻔함의 극치다. 답변서를 보니 단 하루도 대통령직에 놔둘 수 없다는 게 더욱 더 분명해졌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탄핵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우리는 촛불혁명의 출발점에 섰을 뿐"이라며 "이제부터 진짜 싸움이고 주권자의 힘을 보여줘야 할 순간"이라고 말했다.

퇴진행동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박 대통령이 어제 답변서를 냈는데 탄핵 이유가 없다고 했다고 한다. 말이 되느냐. 4~5% 골수 지지자를 빼고는 절대적 다수 국민들이 퇴진하라는데 지금 박근혜는 국민들과 싸우겠다는 거냐"면서 "하루라도 빨리 퇴진하라는 것이 주권자의 명령이다. 또 헌법재판소에서 하루라도 빨리 탄핵 인용하라는 것이 국민들의 고통을 최소화시키는 길"이라며 조속한 탄핵 인용을 촉구했다.

자유발언에 나선 장민주 학생(초등학교 6학년)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나왔다"면서 "나는 13살밖에 안 됐지만 그들보다 양심이 있다. 국민의 말 듣지 않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다. 우리 부모님은 그들 등 따시게 하라고 세금 내지 않았다. 대통령 보톡스 맞으라고 세금 내지 않았다"고 외쳤다.

한 달 넘게 촛불을 들었다는 한 청년은 "우리 힘으로 탄핵을 통과시키면서 희열감 느끼고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박근혜 한 사람에게만 분노를 느끼는 게 아니다. 박근혜가 국정농단을 아무 생각 없이 하게 했던 이 시스템에 분노하고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본집회가 마무리되는 7시쯤 청와대, 헌법재판소, 국무총리 공관을 향해 행진한다. 특히 국무총리 공관 방향으로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앞장선다. 참사 희생자 이재욱 군의 어머니 홍영미 씨는 "누구보다 간절히 이 순간을 응원하고 있을 아이들이 있기에 엄마 아빠들은 이 자리에 있다"면서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엄마부대봉사단 등 보수단체 집회가 광화문 광장 바로 옆인 세종로 소공원에서 열리면서 어느 때보다 광장의 긴장도가 높았다. 경찰이 광화문광장과 공원 사이를 차벽으로 막아 차단을 시도했지만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광장으로 넘어 와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빨갱이' 등의 욕을 하는가 하면 주최측이 설치해 놓은 스피커의 전원코드를 뽑는 일도 있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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