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의 종말, '경영진 뺀 모두 외주인력'인 기업 나온다
WSJ 전망
이 항공사 CEO인 데이빗 쿠쉬는 지난해 3월 주총에서 "고객들과 직접 대면하는 부서를 제외한 모든 일자리를 외주화하겠다"고 공표했다. 이어 4월 쿠쉬는 회사를 알래스카에어그룹에 매각했다. 매각금액은 26억달러로, 2014년 말 측정된 회사가치의 2배였다. 인수작업이 완료된 2016년 12월 그는 회사를 떠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 "미국 기업들의 정직원 줄이기가 역대 최고 수준"이라며 "예전 외주화의 물결은 중국에 넘긴 의류산업, 인도에 넘긴 콜센터부문에서 일어났지만 지금은 산업 전반의 모든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WSJ에 따르면 미 전역의 월마트 창고에서 화물을 부리는 남녀직원들은 트럭운송회사인 '슈나이더내셔널' 소속이다. 슈나이더도 임시용역제공 하청업체들로부터 인력을 공급받는다. 제약회사 화이자의 임상실험 부서는 지난해부터 계약직이 맡고 있다.
계약직 고용모델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은 지난 10년 동안 7번이나 포춘지 선정 '최고의 일자리'로 꼽혔다. 그런 알파벳조차 외주직원과 정규직 숫자가 엇비슷하다.
약 7만명의 비정규직(임시직, 하청업체, 외주업체 포함)이 △구글의 자율주행차를 시험하고 △법무 관련 서류를 검토하고 △각종 제품의 소비자친화성을 높이고 △마케팅 관리, 자료분석업무를 맡고 있다. 이들은 가슴에 빨간색 배지를 달고 정규직들은 흰색 배지를 달고 있다는 점이 외관상 차이점이다.
최고 일자리 기업도 비정규직 7만명
WSJ는 "'고용의 종말'은 우리가 아는 기업, 노동자의 개념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며 "우편물 취급 말단직원이 CEO로 성공했다는 미담은 이제 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회사 입장에서 비정규직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절감보다는 통제가능성이다.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활용해 24시간 회사를 돌릴 수 있다. 또 비정규직의 존재 덕분에 회사는 정규직들을 변화시키는 일이 수월해진다.
노동자 입장에서 고용시장의 변화는 임금의 하락을 의미한다. 또 '어디서 일하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졌음을 뜻한다. 경제학자들은 "비정규직의 급증으로 노동대체시장이 커지면서 동일 노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임금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기업이 비정규직을 어느 정도 고용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부가 집계하는 직업군에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비정규직에 대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의 추산은 널뛰기다. 전체 노동력의 3%에서 14%까지 다양하다. 14%는 약 2000만명에 해당한다.
비정규직의 한 갈래인 외주노동을 가장 엄격하게 정의하면 '용역회사를 통해 한 개의 고객기업과 계약을 맺어 일하는 노동자'를 말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미국의 외주노동자는 2005년 전체의 0.6%에서 2015년 2%로 높아졌다.
인력공급업계 추산에 따르면 비정규직으로 분류할 수 있는 노동자의 숫자나 고용 형태가 급증하고 있다. 업체들은 대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20~50%를 비정규직으로 보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나 버라이즌통신, 프록터&갬블, 페덱스 등에서는 각각 수천명의 비정규직이 근무하고 있다.
기업소프트웨어제공업체 'SAP'의 전략팀장인 애룬 스리니바산은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 제약 부문 기업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최소 2배 많다"고 말한다.
기업들이 건물관리나 구내식당 운영 서비스를 외주화한 건 한참 전 일이다. 그같은 흐름이 △연구개발 △인력채용 △운영관리 △회사채발행 등 고임금 화이트칼라 직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2015년 의사와 간호사의 구술 처방을 받아적는 의료기술사의 25%가 기업지원 서비스산업이라 불리는 부문에서 외주고용됐다. 2009년 이후 1/3이 늘어난 수치다. 병의원이 직고용하던 형태에서 외주화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인력채용업체 '켈리서비스' CEO 칼 캄덴은 "자사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 중 직원이 아닌 사람의 비율을 알고 깜짝 놀라는 CEO가 절대다수"라고 말했다. 지난해 켈리 매출 중 14%가 아웃소싱 관련 컨설팅이었다.
결국 일부 대기업들은 핵심인력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외주노동력을 쓴다. 컨설팅회사 액센츄어는 "전 세계 2000개의 대기업 중 한 곳이 10년 내 최고경영진을 제외한 모든 인력을 외주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엑센츄어는 세계 최대 노동력 파견업체 중 한 곳이다. 경쟁업체와 마찬가지로 엑센츄어 역시 고객 CEO들에게 "당신이 운영하는 기업의 핵심부문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규모"라는 점을 강조한다.
7년간 엑센츄어 아웃소싱부문을 운영하다 지난해 퇴사한 마이크 샐비노는 "우리의 일은 고객기업에게 '당신이 직접 하는 것보다 우리가 훨씬 더 잘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핵심만 집중하라'는 달콤한 속삭임
아마존닷컴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36세 스티븐 바커는 "기업들은 열심히 하면 정직원으로 채용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주변에서 그런 일을 찾아보기란 어렵다"고 말했다. 바커는 TV나 영화를 볼 때 배우의 이력이나 촬영지 정보 등을 화면에 띄워주는 아마존의 '엑스레이' 서비스 부문에서 일한다. 서비스 개발 초기부터 현재까지 쭉 계약직 신분이다. 최근 정직원 신청서를 냈지만 채용 면접기회도 얻지 못했다. 회사측은 그에게 구체적인 사유 대신 일반적 이유를 담은 불합격 통지만을 보냈다.
기업이 아웃소싱을 진행하다 마음을 바꾸는 경우도 있긴 하다. 2015년 미국 대형유통업체인 타겟코퍼레이션의 정보통신 관련 일자리 중 70%가 외주인력이었다. 하지만 그해 마이크 맥나마라가 최고정보책임자(CIO)로 취임하면서 외주 인력 중 70%를 정직원으로 바꿨다. 그는 "어떤 부문에 경쟁력을 가졌다면 사내에서 직접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며 "우리가 경쟁업체보다 더 나은 제품공급망을 갖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주화 흐름이 뒤바뀔 것으로 예측하는 기업이나 전문가,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비핵심 부문을 외주화해야 핵심 부문에 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주기업은 노동자들의 하루 단위의 스케줄과 고용, 해고 전반을 책임진다. 본사는 따라서 최종 제품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할 수 있다.
투자은행에서 기업전략 평가를 맡고 있는 스티븐 버켄펠드는 "모든 기업들의 질문이 하나로 수렴되고 있다"며 "사업분야를 자동화할 수 있는가, 그게 불가능하다면 외주인력을 쓸 수 있는가, 그것도 불가능하면 독립사업자나 프리랜서에 해당 사업을 맡길 수 있는가이다"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기업이 정규직을 고용하는 건 모든 방법이 좌절된 이후 쓰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는 "앞으로 극소수만이 난관을 뚫고 정규직 일자리를 꿰찰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소프트웨어제공업체 'SAP'의 미국지사에서 근무하는 30명의 안내요원들은 인력파견업체 '유레스트서비스' 소속이다. SAP 경영진이 '자사 안내요원 급여가 타 기업보다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2014년 외주화했다.
SAP는 이들에 대한 고용과 직무훈련, 감독 등을 외주화하면서 해당 직원들에게 "회사를 떠나든지 외주직원으로 옮기든지 선택하라"고 했다. 이들의 급여는 크게 낮아졌다.
SAP는 외주화로 신경쓸 일이 크게 줄었다고 말한다. 이 회사 북미지역 인력개발팀장 저웰 파킨슨은 "직원의 기량이 평균에 못 미칠 때, 이들이 스스로 성과를 높이도록 기한을 준다"며 "하지만 직원 외주화가 보다 효율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같은 전략을 '할리우드 시스템'에 비유한다. 할리우드에서는 영화제작 결정이 나면 감독과 배우, 편집팀, 특수효과팀, 마케팅팀을 각각 외주 고용한다. 영화가 완성돼 개봉하면 계약은 완료돼 각자 뿔뿔이 흩어진다.
제트엔진 제조업체인 'P&W'는 부품 분류 발송 업무를 대형 물류배송업체인 UPS에 맡겼다. 그동안 부품 공급업체가 P&W 공장 2곳에 제품을 갖다 놓으면 수백명에 달하는 P&W 발송 전문가들이 부품을 개봉한 뒤 각 공정에 투입해왔다. 전문가들 상당수는 20~30년 경력의 베테랑으로, 복잡하고 정교한 부품들을 한눈에 파악해 정확히 배분하는 이들이었다.
P&W는 2015년 3개 공장을 신설한 뒤 제트엔진 제조 속도를 높이겠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 곳에 부품을 모은 뒤 공정별 투입 부품을 조립키트로 묶어 5개 공장에 배분키로 했다.
이를 파고들어 업무를 따낸 곳이 UPS였다. UPS는 축구장 10개 크기의 부품집하장을 만들어 P&W 부품 분류와 발송업무를 처리했다. 이를 위해 시간제 노동자 200명을 고용했다. 예전 2개 공장에서 부품 분류 발송을 맡던 P&W 소속직원 150명에게 생산직 재배치 교육이 시행됐다. 대다수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반발한 나머지 노동자들은 이직하거나 은퇴했다.
UPS 노동자들은 해당 분야 경력이 없었다. 따라서 P&W에 배송된 부품 키트 중 훼손되거나 용도에 안 맞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2015년 3분기 P&W 제트엔진 출하량이 33%, 액수로는 5억달러 감소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P&W와 UPS는 재고관리 소프트웨어를 동기화했다. 4분기가 되자 생산량이 본궤도에 복귀했다. P&W 측은 "현재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 P&W에선 150명의 노동자들이 2개 공장에 부품을 분류 발송했지만, 현재는 200명의 UPS 직원들이 5개 공장에 부품을 공급한다. P&W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했지만, UPS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직원 줄이라'는 투자자 압박 거세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산업의 부침이 심한 상황에서 기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외주화가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운항 회수 기준으로 미국 4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정직원 5만3000명에 1만명의 외주직원을 두고 있다.
비정규직 근무 분야는 화물휠체어 운전사부터 정보통신 전문가까지 다양하다. 이 회사 인력팀장인 그레그 무치오는 "회사 역사상 정리해고는 없었다"며 "임시직을 쓰는 이유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호황 때 직원을 늘렸다 불황 때 해고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은 제니스탤런트나 필터LLC, 아데코그룹 등 인력파견업체로부터 외주직원을 공급받는다. 아데코그룹에 따르면 알파벳에 직원을 파견하는 대가로 연 3억달러를 받는다.
구글 측은 어떤 기준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업무를 구분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구글 검색 부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현재 정규직으로 전환된 한 직원은 "노동자의 기량이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의 핵심 특성과 관련되지 않으면 정규직을 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관리자들의 능력은 추진하던 사업프로젝트가 성공하지 못했을 때 재빨리 이를 접을 수 있느냐에 달린 것 같다"고 말했다.
글로벌컨설팅그룹 '스태핑인더스트리애널리스트'는 전 세계 기업들이 노동외주화 또는 비정규직 채용 관리에 쓰는 비용이 한 해 1조달러에 달한다고 추선한다.
기업이 외주화를 하면 할수록, 그렇지 않은 기업들이 받는 부담은 더욱 커진다. 뉴욕멜론은행 최고경영진은 2015년 실적발표회에서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였다. '직원 1인당 매출이 경쟁 은행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주요 투자자들의 비판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이 은행 부회장이자 최고재무경영자(CFO)인 토드 깁슨스는 당시 "투자자들은 다른 지표로 경영성과를 판단해야 한다"며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머릿수로만 판단하는 건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항변한 바 있다.
하지만 CEO이자 회장인 제럴드 하셀은 "직원들이 맡고 있는 업무 일부를 자동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 뉴욕멜론은행은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150개 이상의 투자봇을 생산중에 있다"고 밝혔다.
WSJ는 "자동화가 인간을 대체할 때까지, 기업들이 노동외주화를 임시방편으로 활용하는 추세"라며 "직원 없이도 기업이 굴러갈 수 있는 시대"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