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등 건전자산까지 투매하는 '민스키 모멘트(과도한 부채로 금융시장이 폭락하는 시점)' 오나

2017-07-10 11:06:26 게재

독일 분트 금리 급격 상승 등 이상징후

적정한 양의 부채는 소비를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과도한 부채는 상환 부담으로 이어져 오히려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게다가 빚을 갚기 위해 결국 건전한 자산까지 투매할 경우 금융시장이 폭락하는 악순환에 돌입하게 된다. 작고한 미국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1919~1996년)가 설명한 이론으로,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라 부른다. 현 상황이 민스키 모멘트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알제브리스 인베스터스' 거시경제 전략가인 알베르토 갈로는 최근 블룸버그 통신 기고문 '민스키 모멘트 도래 여부는 국채시장에 달렸다'에서 "최근 독일 우량국채 분트 금리가 급격히 올라 시장에 충격을 줬다"며 "민스키 모멘트가 결국 오느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

오늘날 우리는 2번째 '민스키 모멘트'에 접근하고 있는지 모른다. 2008년 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대응했다. 과도한 부채에 대한 처방으로 금리를 낮추고 대량의 부채를 사들였다(양적완화). 양적완화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것을 막는 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위기의 근본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국제금융협회(IIF)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부채 수준은 지난 10년 동안 276% 올라 217조달러에 이르렀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27%다. 하지만 현재 이슈는 과도한 부채뿐만이 아니다. 지나치게 질질 끈 중앙은행의 통화완화정책이 적어도 3가지 부작용을 남겼기 때문이다.

양적완화정책의 3가지 부작용

첫째 경제자원의 배분이 잘못됐다는 점이다.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중앙은행들은 비효율적인 기업들이 생존하도록 만들었다. 밀물 때 모든 배가 뜨는 것처럼, 금융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주입했다.

둘째 부의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점이다. 주식 등 자산가격이 오르면 그 영향으로 소비가 늘어난다는 '부의 효과'를 꾀했지만, 혜택은 골고루 퍼지지 않았다. 가진 자와 나이든 자는 더 많은 혜택을 봤지만, 없는 자와 젊은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곱씹고 있다.

셋째 금융시장 전반의 리스크 프리미엄과 변동성을 강제로 억눌렀다는 점이다.

좀비기업, 좀비은행을 억지로 일으켜세우면,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적 생산성을 낮추는 악효과를 낸다. 다양한 부문에서 과도한 부채와 과잉설비 문제를 낳는다. 미국의 에너지 부문이나 호주의 광산업 부문, 중국의 중공업 부문, 유럽의 금융 부문 등이 그 사례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2월 '은행 신용과 생산성 증대' 보고서를 통해 "은행이 신용을 비효율적으로 배분하게 되면 각 경제 부문의 생산성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한편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면 미국과 영국, 유럽에서처럼 기성정치권에 집단 반발하는 유권자들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다. 그 결과 다양한 국수주의, 보호주의 정책이 최우선 순위로 등극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4년 보고서에서 "불평등 심화와 그에 따른 보호주의 정책은 경제성장을 깎아먹는 주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에게 더 큰 우려는 양적완화가 만들어낸 현재의 고요한 환경이다. 폭풍전야와 같은 고요함이 금융시장 전반을 지배하지만, 실은 강력한 태풍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중앙은행들의 극단적 통화정책은 자산거품을 형성했다. 통화완화정책이 종료될 때 일순간 터질 수 있다.

2008년과 달리 거품 붕괴의 주범은 질이 낮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가 아니다. 손실위험이 거의 없는 국채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다량으로 구입하면서 국채시장의 수익률과 변동성을 크게 줄였다. 그 결과 투자자들은 수익을 찾아 다른 시장을 찾아헤맸다. 투기등급의 고이율채권에 눈을 돌렸다. 투자자들의 수익 사냥은 기업의 자금비용을 낮췄다. 하지만 역시 디폴트 가능성과 관련된 리스크 프리미엄과 신용 변동성도 덩달아 낮췄다. 수익을 내기 위한 투자자들의 행보는 변동성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2008년 위기 이후 수년이 흐르면서 단기 변동성 전략 상품이 차고넘쳤다. 투자자들이 굴리는 자산의 규모는 기록적으로 커져갔다. 주식과 금리, 통화 등 포트폴리오상의 신용스프레드(신용등급 간 금리차)와 변동성은 역대 최저수준으로 낮은 상황이다.

더 많은 부양책을 예상하게 되면 투자자들은 행동을 바꾼다. 더 큰 위험을 마다않는 모험을 하거나 '바닥에 산다'(Buy the Dips)며 몰빵을 하기도 한다. 시장 붕괴의 신호가 오면 중앙은행이 또 다시 양적완화 조치를 재개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상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의 상황에 맞춰 정책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변동성이 급격히 치솟으면 금융시장에 과도한 긴축발작이 일어날 수 있고, 이는 결국 중앙은행의 핵심목표인 인플레이션을 위협하게 된다. 중앙은행과 금융시장 간의 이같은 상호의존성 때문에 ECB는 지난해말 이탈리아 국민투표와 올해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시장의 환심을 사려 비둘기적 발언과 정책을 이어갔다.

많은 이들이 낮은 변동성 시대, '바닥에 사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대부분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입장이 최근 바뀌었다. 미국은 완전고용 수준에 도달했고, 유럽의 성장수치는 수년래 최고치를 기록중이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이미 금리정상화 경로를 밟고 있다. ECB와 일본, 영국, 캐나다 중앙은행들은 이전과 달리 매파적 입장의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투자자들은 국채를 급히 매도하는 반응을 보였다. 독일 국채인 분트 금리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금리를 함께 끌어올리는 양상이 최근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ECB 마리오 드라기 총재의 양적완화 축소 시사 발언 이후 10년물 분트 금리는 0.30%p 넘게 상승해 0.57%대로 올라섰다. 2015년 4월말 '분트 탠트럼' 이후 최고치다.

진퇴양난 몰린 중앙은행

분트 충격은 주식과 통화 등 다른 시장에도 이어졌다. 단기 변동성과 리스크 패리티(위험균형) 전략에도 손실이 이어졌다. 이들은 위험자산과 무위험자산(국채) 간의 안정적 상호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상품들이다.

최근의 분트 충격은 전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되찾고 그에 따라 중앙은행들이 기존의 부양책을 줄여나가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지금 상황은 중앙은행 입장에선 '이도저도 못하는' 진퇴양난을 보여준다. 부양책을 철회하자니 급격한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것이고, 계속 이어가자니 훗날의 위기를 더 키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조만간 변동성은 다시 확대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꼬리가 몸통을 쥐고 흔드는 '테일리스크'는 무위험자산이라는 국채시장에서부터 촉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하다.

2008년 위기 이듬해 당시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였던 재닛 옐런은 민스키가 연구자로 재직했던 레비경제학연구소에서 강연한 바 있다. 주제는 '미래의 경제붕괴를 어떻게 예방하느냐'였다. 옐런은 자본통제와 유동성 기준 강화, 거시건전성 감독 등을 대안으로 내놨다. 하지만 1996년 같은 연구소 강연에서 옐런은 다소 상반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파생상품 증권화와 같은 복잡한 상품의 개발을 칭찬하며 "금융기관 시스템과 금융규제 시스템이 여전히 강력할 것이고 회복탄력적일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비롯됐다.

금융위기 뒤 9년이 흘렀고, 미 연준은 자본과 유동성 확충 기준을 강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중앙은행은 투자자들에게 '바닥에 사라'고, 변동성을 팔라고 촉구하고 있다. 금융안정성 감독과 거시건전성 정책은 여전히 한켠으로 제쳐둔,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남았다. 중앙은행의 핵심 임무에서 벗어나 있다는 말이다. 지난주 옐런 의장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우리 시대 금융위기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민스키가 생존했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한 폭탄발언이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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