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총제(출자총액제한제도) 논란에 묻힌 지주사규제 심사
2007년 국회 법안 심사 복기해보니
규제 대폭 풀면서 효과·부작용 토론없어
정부여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지나친 규제완화로 인해 현행 지주사 제도가 경제력집중의 폐해를 낳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주회사 제도는 출자구조가 계열사간 복잡하게 얽힌 순환출자와 달리 지주회사가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거느리는 방식으로 지배구조가 단순하고 투명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반면 적은 자본으로도 대규모 사업회사를 지배할 수 있어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때문에 정부는 1988년 지주회사 설립과 전환을 전면 금지한 이후 1999년 다시 부활시키면서 2단계(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 이상 출자금지, 자회사 및 손자회사 지분 50%(상장사는 30%) 이상 의무 보유, 부채비율 상한 100% 등 엄격한 행위제한 규제를 뒀다.
하지만 17대 국회 막바지였던 2007년 지주사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그해 4월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 요건이 40%(상장사는 20%)로 낮춰졌고, 부채비율 상한도 200%로 느슨해졌다. 불가피한 사유 발생시 지주사 행위제한의무 유예기간도 추가로 2년이 연장됐다. 또 8월에는 자회사-손자회사간 사업관련성 요건이 폐지되고, 100% 증손회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 이뤄졌다.
재벌 지배구조를 합리화·투명화하기 위해 지주사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규제가 지나치게 풀리다보니 지주회사 제도가 재벌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사업을 확장하는 수단이 돼버렸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당시에도 규제완화로 인해 경제력 집중 등 부작용이 더 클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국회 의사록에서는 규제완화에 따른 부작용이나 폐해를 우려하거나 보완책을 논의하는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상정도 안 된 법안 심사한 정무위 = 지주사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이 담긴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2007년 2월26일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보면 우선 절차상의 문제가 제기됐다. 중복되는 내용을 조정하기 위해 기존 법안들을 모두 철회하고 정부가 총괄적인 법안을 다시 내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안이 미처 상정되지 못했던 것. 유일하게 남아있는 나경원 의원 대표발의안을 놓고 상정되지도 않은 정부안의 내용을 심사하는 게 절차상 문제가 없는 지를 놓고 논란이 오갔다. 또 내용면에서도 당시 가장 큰 쟁점이었던 출자총액제한제도 규제를 완화할 것이냐, 폐지할 것이냐는 두고 공방이 오가면서 지주사 규제와 관련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날 열린 법안소위에서 지주회사 지분율 요건과 부채비율 완화, 행위제한 의무 유예기간 연장 등의 내용은 별다른 토론 없이 합의됐다. 이종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지분율 요건이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했으나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염려한 발언이었다.
당시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은 신학용 열린우리당 의원이었고, 김애실, 이종구(한나라당), 김혁규, 서혜석(열린우리당), 이승희(새천년민주당) 의원이 참여했다.
개정안은 같은 날 정무위 전체회의에 바로 올라왔다. 김현미 열린우리당 의원이 법안소위가 상정되지도 않은 정부안을 심사한 것은 국회법 위반소지가 있고, 출총제 완화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당론을 변경해야 한다는 점을 제기하는 등 일부 의원이 표결을 미루자고 주장했으나 박병석 위원장은 여야간 합의에 따른 절차를 들어 표결 통과시켰다. 전체회의에서도 출총제가 논란이 됐을 뿐 지주회사 관련 토론은 없었다.
◆당시에도 우려 많았지만 = 그 해 4월20일 법안소위에서는 손자회사가 100% 지분을 보유하거나 공동연구개발을 위해 다른 사업자와 함께 설립한 공동출자법인 지분 30% 이상 보유하는 경우 증손자회사를 허용하고, 손자회사 설립시 사업연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폐지하는 방안을 담은 법 개정안이 논의됐다.
당시 서혜석 의원은 출자단계를 2단계에서 3단계로 늘리는 것인 만큼 좀 더 검토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또 대부분 기업 사업목적에 연구개발이 들어있는 만큼 30% 이상 지분 소유 공동법인을 증손회사로 허용하는 것은 재벌의 사업 확장에 악용될 수 있고, 중소기업에 부담을 주는 조항이라며 반대했다.
신학용 위원장과 김양수 한나라당 의원은 악용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지주사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무게를 뒀다. 이승희 의원은 "지주회사로 강제로 전환시키는 데 이 정도 숨통은 터 줘야 한다"며 서 의원을 압박하기도 했다.
결국 이 회의에서 30% 공동출자법인 증손자회사 허용안을 제외한 나머지 규제완화 조항들은 합의됐다.
서혜석 전 의원은 "당시에도 전문가 집단 등에서 규제를 너무 풀어준다는 지적과 우려가 많았다"며 "하지만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면 지주사 전환을 유도해야하고 그러려면 당근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워낙 강했다"고 설명했다.
이종구 의원은 "당시 순환출자의 대안으로 지주사 전환을 유인하는 차원에서 규제를 풀어줬던 것"이라며 "재벌들이 지주사 통해 문어발식 확장하는 것은 막아야겠지만 기업들이 자율성을 갖고 다양한 형태를 갖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승희 전 의원은 "공정위도 지주사 규제를 완화하자는 입장이었고 기업의 요구도 많았다"며 "당시엔 지주사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규제완화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지주사 활용한 재벌 강화 막는다
▶ '지주사 규제' 도입 초기 수준으로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