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가상화폐 검토 … 돈의 역사 바뀔까

2017-10-10 12:36:34 게재

요미우리신문 분석

"기존화폐 존폐기로"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도 가상화폐 발행을 적극 검토중이다. 인류와 함께 2000년 이상 지속돼온 '만질 수 있는' 화폐가 점차 존폐기로에 다가서고 있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9일 자사 영자지 '재팬뉴스'를 통해 분석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달 17일 발간한 분기보고서에서 16쪽을 할애해 중앙은행의 가상화폐에 대한 찬반 논란, 중앙은행이 가상화폐를 도입할 경우 대처해야 할 문제 등을 따졌다. 보고서는 "전 세계 모든 중앙은행이 가상화폐 발행 여부를 심사숙고해야 하는 때가 결국 오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이라 불리는 BIS가 가상화폐 발행과 관련한 특집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이미 가상화폐가 중앙은행이 무시하기 힘든 중대한 무언가로 급부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곳은 스웨덴 중앙은행인 리크스방크다. 1668년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중앙은행이다. 리크스방크는 내년말까지 가상화폐 'e크로나'를 발행할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북유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는 지난 8월 정부의 대민 온라인서비스에서 사용할 가상화폐 'est코인'을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에 돌입했다. 일본과 네덜란드, 캐나다, 영국, 러시아, 중국 중앙은행도 가상화폐와 그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검토중이다.

이처럼 각국 중앙은행이 가상화폐 도입 여부를 심사숙고하는 주된 이유는 가상화폐의 빠른 확산이다. 지난달 25일 기준으로 가상화폐 시장 총 규모는 약 1300억달러(약 150조원)다. 1년 전에 비해 10배 넘게 늘었다. 대표주자격인 비트코인은 가상화폐 총 규모의 절반을 차지한다. 9일 현재 1비트코인 가치는 4600달러 정도다. 1년 전에 비해 8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중앙은행들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달러나 엔화, 위안화 등 실물화폐를 조만간 대체할 것이라고 우려하지는 않는다. 법정통화가 갖춰야 할 3가지 특징, 즉 가치저장, 지불결제, 가치측정 수단으로 따져볼 때 가상화폐가 여전히 미흡하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는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이다. 하지만 급격한 가치변동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야 하는 일상적 쇼핑에는 적합하지 않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하룻밤새 10%의 가치변동도 흔한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가상화폐를 발행한다면 신뢰도와 관련해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 나라경제의 힘으로 부양되기 때문이다. 반면 가상화폐는 현재 그 어떤 정부의 보증도 없다.

와세다대 미츠루 이와무라 교수는 "비트코인의 가치는 희소성에 근거한다"며 "이는 발행수량의 한도가 있고 비트코인을 얻기 위한 '채굴'(mining) 과정에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비트코인이 금이나 은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이와무라 교수는 "중앙은행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가상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현재 통용중인 가상화폐와 비교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BIS 분기보고서 역시 가상통화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기존 법정화폐를 대체할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만약 BIS 전망이 맞다면, 왜 각국 중앙은행들이 가상화폐를 화두로 삼아 연구와 검토를 거듭하고 있을까.

요미우리신문은 "가상화폐가 통화정책의 운용 폭을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 한 가지 이유"라고 분석했다. 일본과 유럽의 경우 물가가 쉽사리 오르지 않고, 금리를 제로 또는 마이너스 영역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 통화정책은 경제를 부양하기 어렵다.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일본중앙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이 금융기관들의 중앙은행 예치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는 대신 수수료를 부과하는 '마이너스금리'를 채택하고 있지만, 효과는 없는 상황이다. 금융기관들이 고객인 기업과 개인에게 수수료 부담을 전가하게 되면서 현금으로 보관하려는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가상화폐를 발행하면, 이론상 기업과 개인의 돈에 대해 대해서도 사실상의 마이너스금리제를 관철시킬 수 있게 된다. 기업과 개인이 보유중인 가상화폐의 명목가치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절하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기업과 개인들은 돈의 가치하락을 막기 위해 더욱 소비에 나서게 된다. 이는 결국 국가경제를 자극하고 물가를 오르게 만든다. 가상화폐를 통해 통화정책의 효과를 높이려는 중앙은행들이 기대하는 시나리오다.

중앙은행들이 가상화폐를 파고드는 또 다른 이유는 현존 가상화폐가 금융시스템에 가하게 될 잠재적 파괴효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최근 '가상화폐공개'(ICO)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ICO는 기업들이 자신만의 가상화폐를 발행해 투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을 의미한다. 가상화폐 정보사이트인 '코인스케줄'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화폐를 통한 투자금 조달액은 9600만달러에 그쳤으나 올해는 단 9개월 만에 22억달러를 넘어섰다. 증가속도가 기하급수적이다.

ICO는 기업들이 주식을 증시에 상장하는 '주식공개'(IPO)와 비슷하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금융당국의 규제를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특정 국가가 ICO를 규제대상으로 삼는다 해도 효과는 없을 전망이다. ICO 자체가 인터넷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메인서버가 있는 주사업장을 규제가 없는 다른 나라로 옮기면 그만이다. 온라인에서 범람하는 음란물을 막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 중앙은행들이 '금융시스템 전반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일본중앙은행 핀테크센터장을 역임했던 교토대 나오유키 이와시타 교수는 "그동안 중앙은행과 증권거래소는 법으로 보호를 받아왔다"며 "하지만 이제 불확실한 미지의 어떤 것에 대응해야 하는 때가 왔다. 현존 법률이 효과를 낼지 알 수 없다. 비트코인의 출현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시타 교수는 "중앙은행들이 사이버공간에서 존재감을 가지려면 가능한 한 빨리 가상통화를 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으면서 중앙은행의 디지털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가상화폐의 출현으로 기존 통화체제는 급격한 지각변동을 맞고 있다.

비트코인이 유명세를 탄 건 2013년이다. 유로존 회원국인 키프로스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다. 당시 키프로스 정부는 은행 붕괴 책임을 예금주들이 지도록 하는 '베일인'(bail-in, 채권자손실부담제) 적용을 시도했다. 이에 반발한 사람들이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비트코인으로 대거 자산을 옮겼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통화에 대한 불신이 계속되고 있다. 키프로스 금융위기의 근본적 원인이기도 하다. 이와무라 교수는 "법정통화 불안정성이 비트코인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이 대중의 신뢰를 되찾으려 가상화폐를 발행하게 되면 기존 법정통화는 기반을 잃게 될 것인가, 아니면 가상화폐와 공존하면서 여전히 존재의의를 과시할까. 요미우리신문은 "가상화폐가 돈의 미래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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