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워릭대 스키델스키 교수 "무역불균형, 케인스에서 답을 찾아라"
2017-10-25 11:04:29 게재
IMF '희소통화' 활용 제안
영국 워릭대 정치경제학 교수이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전문가인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24일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에서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에 포함된 '희소통화'(scarce-currency) 조항에서 문제해결의 단초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키델스키 교수에 따르면 희소통화 조항은 브레턴우즈 협정 제7조에 담긴 것으로, 한 나라의 수입이 수출보다 지속적으로 많은 경우, 즉 경상수지 적자를 계속 볼 경우 적자국은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의를 거쳐 환율의 자유로운 흐름에 일시적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희소통화 조항은 흥미로운 역사를 갖고 있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41년 '국제청산동맹'(International Clearing Union) 구상을 통해 지속적인 무역흑자국에 제재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케인스의 구상은 흑자국의 과도한 흑자를, 적자국의 과도한 적자를 줄이고자 하는 취지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대 흑자국은 미국이었다. 케인스의 제안은 당연히 일언지하에 거부됐다. 그 결과 IMF의 역할은 무역적자국에 단기 금융지원을 하는 것으로 대폭 축소됐다. 하지만 신흥 패권국인 미국은 기존 패권국인 영국을 달랠 필요가 있었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자 브레턴우즈 협정의 설계자이기도 한 해리 덱스터 화이트는 '희소통화' 조항을 삽입해 달러가 부족한 회원국이 미국의 수출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사문화돼 쓰인 적이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초기 몇년 동안 미국은 유럽 국가들의 재건을 돕기 위해 마셜플랜을 마련, 유럽의 경상수지 적자를 메웠다.
하지만 1970년대 초 미국이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국으로 전락했다. 당연히 달러는 전 세계에 과다공급됐다. 미국 의회는 지속적인 대미 흑자국들을 대상으로 희소통화 조항을 발동하라고 IMF를 압박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프린스턴대학 역사학자 해롤드 제임스는 "미국이 오히려 케인스의 구상을 들고 나왔지만 무역흑자국, 즉 채권국인 유럽과 일본은 결사 반대했다"고 지적했다.
오늘날도 당시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세계 4대 경제국 가운데 1위 미국만이 경쟁력 약화로 지속적인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반면 2~4위인 중국과 일본, 독일은 강력한 교역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를 보는 중국은 이런저런 정치경제적인 이유로 미국채 매입 등을 통해 미국의 적자를 메워주고 있다. 달러와 위안화의 불균형한 상황은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
현재에도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가지 흥미로운 제안이 제기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마쉬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미국과 같은 지속적인 적자국들이 '자유무역 보상제'(compensated free trade)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무역적자국이 일방적으로 사실상의 희소통화 조항을 발동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막대한 무역흑자국이 적자국에 보상금을 주든지, 아니면 수출쿼터 제한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자유무역 보상제가 현실화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매년 미국 적자폭의 최대치를 설정한 뒤 주요 교역상대국의 무역흑자에 대해 제한을 둘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중국이나 일본, 독일, 멕시코 등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지난해 미국 무역적자 7370억달러 가운데 중국이 3470억달러, 일본이 690억달러, 독일이 650억달러, 멕시코가 640억달러를 차지했다.
하지만 중대한 허점이 있다. 통화동맹 내에서 쓰기 어렵다는 점이다. 스키델스키 교수는 "마쉬 교수가 제안한 구상의 문제점은 유로존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한 독일의 막대한 무역흑자를 줄이기는 힘들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유럽도 자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긴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연합은 '거시경제 불균형 시정절차'(Macroeconomic Imbalance Procedure)를 수립했다. GDP의 6%를 넘게 무역흑자를 보는 나라나 GDP의 4%를 넘게 적자를 보는 나라는 벌금 등의 제재를 받는다는 것이다. 스키델스키 교수는 "이는 케인스의 국제청산동맹 구상의 취지에 부합하지만, 2가지 핵심 메커니즘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케인스의 구상은 지속적인 무역흑자국을 자동적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유럽연합의 시정절차는 그렇지 않다. 독일은 최근 10여년에 걸쳐 GDP의 6%를 넘는 무역흑자를 기록했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물론 유로존에 대한 독일의 흑자가 최근 GDP의 3% 이내로 줄었지만, 이는 지중해에 인접한 가난한 나라들이 독일 제품을 수입할 여력이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나라들의 경제가 회복돼 완전고용 수준으로 올라선다면, 독일의 흑자폭은 다시 급증할 전망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채무국에 대한 보호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속적인 무역적자국은 통화가치를 떨어뜨릴 능력이 없다. 유일한 버팀목은 '통화동맹을 떠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사태에서 별 다른 효과가 없었다.
스키델스키 교수는 "유럽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한 가지 방법은 창설 논의가 진행중인 '유럽통화동맹'에 브레턴우즈 협정의 메커니즘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유럽통화동맹이 자체적으로 '희소통화' 조항을 만들어 회원국들이 채권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양에 차별을 두도록 하면 된다는 것. 그는 "물론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차별을 두는 메커니즘은 유럽연합이 채택한 자유무역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며 "하지만 경제적 통합은 언제나 채권국의 조정과 양보에 기반해 이뤄져왔다. 그것이 없다면 자유무역 시스템은 결국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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