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사회│⑦ 위기학생 위한 국가컨트롤타워 가동해야

"학업중단(퇴학) 학생에 '알바' 자리 내줄 어른 있나요?"

2017-10-25 10:06:54 게재

가정·학교에서 소외받은 아이, 학교 밖에서도 설 곳 없어

사회부총리 주관, 관계 정부부처 합동대응 시스템 구축

"학교를 그만 다니려고 생각하는데요. 어차피 졸업해봤자 갈 곳도 없고요." 이정우(가명·청주시 고2)군이 자퇴 후 일자리를 찾고 있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이군과 이군 친구들은 "어차피 졸업은 못해요. 퇴학당하기 전에 자퇴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학교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군은 청주시내 주유소 편의점 식당 등 청소년들을 받아줄 만한 가게 수십 곳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알바자리'를 선뜻 내주겠다는 주인은 한 명도 없었다. 인적사항을 물어본 가게 주인은 '퇴학' '자퇴' 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대화를 중단했다는 것이다. 왜 학교를 그만 다니려고 하는지, 아이들 상황이나 처지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래관계 회복을 위해 중학생들이 생태환경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어른 편견, 아이들 범죄자로 내몰아 = 학교 밖에서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배고픔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장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편의점이나 옷가게 등에서 '좀도둑'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고 나면 앞서 자리를 잡은(?) 선배를 따라 나선다. 갈 곳은 이미 정해졌다. 대부분 술집이나 예비 범죄집단에 몸을 맡긴다는 게 학교 밖 아이들의 진술이다.

지난달 사회부총리 주제 국무회의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이 대책이라고 내놓은 "학교밖 청소년을 위해 '거리상담사 두 배로 늘리겠다'"는 발언이 비난을 받았다. 아이들의 실정을 전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매년 4만여명에 이르는 학업중단자 대부분이 '또래아이들과 불편한 관계(41%)' '가정불화(47%)'라고 진단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아이들과 진정한 상담이나 대화, 조사를 해본 적이 없고, 단순 설문조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숲치유캠프에 참여한 중학생들과 부모들.

정부는 학교폭력이 터지면 가해자(고에너지군) 중심으로 대책을 세운다. 하지만 살인, 자살 등 대형사고는 오히려 '저에너지군' 아이들한테서 발생한다는 게 심리상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학교나 가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속 시원한 대화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구교육청은 저에너지군 아이들을 위한 정밀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대형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전략이 다양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대구교육청은 지역종합병원 5개와 손잡고 추진 중인 무료전문상담은 지역사회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학교에 아이들을 위한 전문상담교사가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상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다. 상담교사들이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않는다는 게 아이들 불만사항중 하나다. 상담교사들도 나름 불만이 있다. 비정규직이거나, 상담교사로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 자격시험에 합격만 하면 곧바로 상담교사로 투입됐다.

상담교사들의 인성과 전문성부족, 아이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됐다. 정책을 수립한 정권과 시도교육감들의 성과주의도 정책실패 원인으로 분석됐다.

대전 한 중학교 상담교사는 "상담교사 선발과정에 반드시 인성을 바탕으로 열정과 실력을 갖춘 교사를 선발해야 한다"며 "세상과 아이들 변화를 따라갈 수 있도록 상담교사 뿐 아니라 일반교사까지도 전문상담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교육, 교사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 = 학교부적응학생을 줄이고 학교 생활 만족도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부모교육'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집체교육은 오히려 반감을 불러오고 신뢰만 떨어뜨린다는 게 시도교육청 담당자들의 증언이다.

최근 발생한 여중생 폭력사건, 어금니아빠 이영학씨 여중생 살인사건 등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는 사건 역시 위기가정에서 출발한다는 게 일선교사들의 진단이다. 특히, 학교와 소통과 공감이 없는 가정과 학부모 지원을 위해 교육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학부모교육에 대한 정확한 매뉴얼도 관련 규정도 없다. 지난주 "학부모교육 받은 뒤 아이를 인격체로 인정했다"는 내일신문 기획보도 후 대구교육청의 학부모교육에 타 시도교육청의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 대구지역 학교는 한 회에 두 시간씩 년 10회 의무적으로 학부모교육을 실시한다. 대구지역 학부모 36%가 연평균 4.4회 학부모교육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나 학부모교육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증명했다.


대구교육청이 추진하는 학부모교육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교육의 개혁과 혁신은 학교 내부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 학교문화를 바꾸는 게 혁신인데, 결국 교사가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사의 변화는 '교실수업개선'에서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교육감의 정책과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교육의 혁신은 교사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정부정책이나 교육감의 지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학부모교육을 통해 똑똑해진 부모들이 교사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모들의 지적과 대안, 지혜로운 교육방식 제안과 공교육 참여, 미래사회를 진단하는 힘이 교사와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위기학생 관리, 관계부처 융합정책 펼쳐야 = 최근 발생한 각종 대형사건은 초등대처 미흡이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이들은 대형사고를 치기 전에 외부에 신호를 보낸다. '내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했으니깐 도와달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심리상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학교와 가정은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놓친다. 사고가 터지면 경찰은 수사단계에서 엇박자를 낸다. 학교와 가정, 수사기관이 공조체계가 없거나 가동이 안된다. 충분한 정보교류와 예방교육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련부처 역시 사고가 터지면 대안마련에 호들갑을 떨지만 결과는 항상 똑같다. 부모가 신뢰하지 못하는 처벌중심의 정책은 역대 정권에서 실패로 끝났다. 결국 사고가 터지면 학교안팎에 설치한 CCTV에 의존하는 수준이다.

진화하는 폭력에 정부대책은 항상 뒷전이다. 이 과정에는 시도교육청의 부실한 대책이 한 몫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사이버 폭력(Cyber bullying)이 새로운 학교폭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사용 증가 등에 따른 결과다. 특히 단체 대화방에서 '카톡감옥'은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SNS상에서 괴롭힘을 당한 중학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2년 900건이던 사이버 폭력 학교폭력 심의 건수가 지난해는 2122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교육청과 관련부처는 어떠한 대책마련도 하지 못했다.

관련 부처가 지역사회 인프라를 활용해 촘촘한 안전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사회양극화에 따른 가족관계 붕괴, 줄세우기 교육에 따른 폐해, 진로문제를 해결해야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초중고생을 위한 학업중단 완충지대와 진로문제, 학업과 또래문제로 위기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는 게 교사들의 지적이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중학교의 최 모 교장은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스스로 미래의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바꾸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교육부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 지자체가 학생인권 차원을 넘는 청소년 정책을 새롭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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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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