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규 변리사의 '재미있는 특허 이야기'

대만의 특허심판제도

2017-12-18 11:58:35 게재
최덕규 변리사

최덕규 변리사의 '재미있는 특허이야기'를 부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명지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인 최씨는 숙명여대, 광운대, 연세대 법무대학원,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등에서 '특허법' 강의를 했으며, '법! 말장난의 과학'의 저자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

최근 우리 특허청(특허심판원)은 상표 'REVANESSE'가 'REVINESS'와 유사하지 않다는 심결을 하였다. 이 두 상표는 모두 피부과용 필러에 사용하는 상표로, 한 캐나다 회사가 2011년 우리 특허청에서 'REVANESSE'에 대해 상표등록을 받았는데, 우리나라 한 회사가 'REVINESS'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유사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심판이었다.

심판은 3명의 심판관이 하게 되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심판장(국장급)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배석 심판관(과장급)이다. 배석 중의 한 사람이 주심을 맡아 심결문을 작성하게 된다. 3인의 심판관이 'REVANESSE'와 'REVI NESS'의 유사여부를 판단하였는데, 이들이 유사하지 않다고 한 것이다. 상표가 유사한지의 여부는 외관, 발음(칭호), 관념(의미)의 관점에서 판단하는데, 이들의 외관이나 발음이 유사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허청의 이 판단을 접한 한 외국 변리사는 '한국의 심판관들은 영어 알파벳을 모르느냐'라고 반문하였다.

이러한 판결이 내려지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3인의 심판관으로 이루어진 심판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3인의 심판관이라 하지만, 주심이 그 사건을 혼자서 처리한다. 형식적으로는 3인의 합의부가 사건을 처리하는 것 같지만, 내막을 보면 1인의 심판관이 처리하는 것이다.

필자는 한 국제회의에서 대만 변리사를 만나 대만의 특허심판에 대하여 물어본 적이 있다. 대만도 3인의 합의제를 운영하는데, 한 사건이 배정되면 두 배석 심판관이 독립적으로 각자 사건을 검토하고 그에 대한 간략한 의견을 심판장에게 각각 보고한다고 한다. 두 배석의 결론이 같으면 심판장은 한 배석을 지정하여 주심을 맡기고, 두 배석의 결론이 서로 다르면 심판장이 직접 주심을 맡아 처리한다는 것이다. 판결 수준이 높아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시스템으로 진정한 3인의 합의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두 배석한테 이렇게 하라고 하면 아마 서로 입맞추기에 바쁠 것이다.

우리도 대만과 같은 선진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한다. 주심 1인이 사건을 처리하고 심판장은 결재만 하는 그런 시스템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특허와 상표는 무형(無形)의 재산권으로 개인이나 회사 때로는 국가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이들에 대한 판단이 올바르지 못할 때, 그로 인한 손해는 막대할 수 있다.

특히 특허와 상표는 국제간의 분쟁이 매우 많다. 당사자가 외국회사인 경우 판결은 그들에게 전달된다. 'REVANESSE'가 'RE VINESS'와 유사하지 않다는 심결을 접하게 된 캐나다 회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그들 또한 '한국의 심판관들은 영어 알파벳을 모르느냐'라고 반문할 것이다. 이런 국제적인 망신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심판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

최덕규 명지특허법률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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