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천문학적 이익 뒤엔 미국 노동자의 엄혹한 현실

2017-12-20 11:08:14 게재

매일 산재사망 150명꼴

연간 산재 최대 1110만명

이달 9일(현지시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 위치한 포드자동차 트럭 생산공장에서 전기담당자로 일하던 41세 이반 브릿지워터 3세가 산업재해로 숨졌다. 회사측은 숙련공이었던 그가 감전사했다는 경찰의 초동보고서를 부인했다. 현재 켄터키주 당국이 사고원인을 조사중이다.

인디애나주 시모어 인근에서 살던 브릿지워터는 아내 메건과 두돌배기 아들을 두고 떠났다. 그의 아버지 브릿지워터 2세는 페이스북에 "플로리다 북쪽 시모어에 아들을 묻으려 한다. 친절하고 예의바른 사람으로 커줬다.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라며 "자식보다 오래 사는 부모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적었다.

캐나다 온라인매체 '글로벌리서치'는 19일 "그같은 죽음은 미국에서 아주 흔해빠진 일"이라며 미국 노동자의 현실을 살폈다. 매체에 따르면 이달 1일 31세 계약직 노동자인 예세냐 에스피노자가 텍사스주 보몬트시 소재 엑슨모빌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가건물에서 떨어진 지름 60센티미터 파이프에 맞아 사망했다. 에스피노자가 기르던 두 자녀는 졸지에 엄마를 잃었다.

대개가 그렇듯,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온라인 모금운동 사이트인 '고펀드미'(GoFundMe)에서 장례비용과 자녀양육비 도움을 얻기 위해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매년 약 5000명에 가까운 미국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거기에 더해 해마다 5만~6만명의 노동자가 직업병으로 세상을 등진다. 두 사안을 합하면, 매일 150명의 미국인이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죽어간다.

글로벌리서치는 "이는 아찔할 정도로 치솟는 증권시장 이면의 현실"이라며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처럼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언론이 '미국 경제의 부활' '완전고용 달성'을 외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장면"이라고 꼬집었다.

미 노동통계청(BLS)는 이달말 '2016년 직업상 치명적 부상'(Fatal Occupational Injuries)에 대한 전국민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우리로 치면 '산재사망'을 뜻한다. 2015년 동일 조사에서는 4836명이 직업과 관련한 치명적 부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4821명보다 늘었다. 2008년 이후 최고 수치다.

BLS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약 370만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를 당하거나 산재질병을 얻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 축소다. 미국 최대 노동조합인 '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AFL-CIO)에 따르면 실제 피해자수는 740만명에서 1110만명에 이른다.

2015년 부문별 산재사망자 수는 건설 937명, 물류창고 765명, 농어임업 570명 등이다. 이주노동자 사망자수는 903명으로, 2007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도급계약 노동자 사망자수는 829명으로 전체 17%를 차지했다. 65세 이상 노동자 사망자도 650명이나 됐다.

하지만 그같은 수치도 비참한 노동조건을 드러내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진통제 오남용에 따른 사망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작업에 따른 질환고통을 잠시 진정시키기 위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어서, 고가의 건강보험을 들 수 없어서, 실직과 저임금으로 인한 분노와 절망을 다스리기 위해 진통제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오하이오주 지역 언론매체인 '애크런 비컨 저널'은 2010~2016년 오하이오주의 약물오남용 사망자 1만2723명을 대상으로 추적한 보도기사에서 "지난 60년 동안 복수의 연구결과는 교육 수준이 낮은 육체노동자의 수명이 짧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지난 7년 동안 오하이오주 사례를 살핀 결과 교육 수준이 낮은 육체노동자들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으로 종종 진통제를 찾거나 서로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같은 상당수가 이른 시기에 삶을 마감한다"고 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약물오남용 사망자가 가장 많은 직업군은 건설업과 제조업이었다. 2000년부터 2015년까지 고용율이 각각 11%, 36% 하락한 부문이다. 게다가 2006~2010년 5년 동안 두 부문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16% 줄었다.

지난 10월 20일 디트로이트시 외곽에 위치한 포드자동차 우드헤이븐 스탬핑 공장에서 일하던 21세의 비정규직 노동자 자코비 헤닝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정직원과 동일한 업무를 하지만, 월급은 절반에 불과하고 각종 수당, 4대보험도 언감생심이었던 자신의 상황을 비관해서다. 헤닝스 사례는 작업장 내 자실이 점차 만연해지고 있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특히 자동자산업에서 그렇다.

글로벌리서치는 "그같은 야만적인 노동조건이 확산되는 데에는 노조와 사측의 완전한 공모가 있었다"며 "전미자동차노조(UAW) 소속 노동자 아무에게나 물어보라, 노조 지도부가 경영진의 수족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폭로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노조 지도부는 작업속도를 높이기 위한 채찍을 들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군말없이 받아들이라고 강제하는 경영진과 한통속"이라며 "임금 차등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강도높은 착취, 강제 잔업, 10시간 교대근무 등은 노조의 공모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

UAW나 철강노조 등은 경영진과는 물론이고 연방정부, 주정부 당국과도 '노동자 보건안전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같은 협력체계가 구축돼 있는 사업장엔 관련 조사와 검사 빈도가 줄고, 행햐 규정을 위반했을 때도 벌금과 제재수준이 크게 낮아진다. 겉으로는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협력체제를 구축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보건안전 규정위반을 숨기고, 기업의 결함을 감추기 위해서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보건안전 기관들은 악화하는 노동환경을 방치한 기업들의 범죄적 행태에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고 있다. 미시건주의 예를 들면, 2004년 이후 노동자 사망에 따른 322건의 노동환경 조사에서 법위반 사실을 적발했지만, 각 사례당 기업에 부과된 평균 벌금은 2800달러(약 304만원)에 불과했다.

보건안전 위반에 대한 주정부 법은 사실상 산재피해자가 고용주를 대상으로 형사소송을 걸지 못하게 막고 있다. 산재보상법은 친척이 보상금을 받기 어렵게 만들었고, 배우자라 하더라도 재혼할 경우 수당을 받지 못한다. 산재 가족은 '장례식 비용이나마 건지면 운이 좋다' 여긴다.

이달 2일 디트로이트시 피아트 크라이슬러 조립공장의 노동자들은 동맹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공장 내 원인 불명의 유독가스가 퍼져 노동자들이 고통을 호소할 정도로 열악한 노동환경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동맹파업은 UAW 지도부의 만류로 취소됐다. '동맹파업을 한다면 징계하겠다'는 경영진의 입장에 노조 지도부가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같은 일은 지역언론에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UAW와 경영진은 그같은 상황이 아예 벌어지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기업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의 삶과 육체가 희생당하지만,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을뿐더러 워싱턴 정치권도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민주당은 대신 표가 되는 중상류층 여성들의 '미투' 운동에 적극 지지를 보내고 있다.

글로벌리서치는 "지체 높으신 여론주도층이 공장과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우울한 현실을 계속 외면하는 한, 거대한 사회적 불만은 계속 축적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이는 조만간 터질 것이며 그 누구도 막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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