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다산에게 길을 묻다│서울 은평구 '도시재생' 제10회 다산목민대상 수상

"재개발 갈등 보듬고 공동체 회복"

2018-06-07 10:58:04 게재

"돈 욕심 대신 동네 살리자" … 정부 부동산정책 전환 계기

"솔직히 능력만 되면 딴 동네로 이사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재개발로 싹 뒤집어 엎고 돈 좀 벌자는 이들도 있었구요. 하지만 이젠 바뀌었어요. 헛욕심 부리지 말고 우리 동네를 살만한 곳으로 살려보자는 분위기입니다."

서울 은평구 불광2동 442번지에 사는 정 모(62)씨는 "쓰레기를 분리수거일에 맞춰서 내놓는 이들이 많아졌고 아무데나 버리는 이들은 확실히 줄었어요"라며 바뀐 동네 분위기를 전했다.

은평구 도시재생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에 이어 문재인정부까지 도시재생을 주요 정책으로 채택하면서다. 정부는 향후 5년간 도시재생 분야에 50조원을 투자하는 등 개발 중심 부동산 정책을 재생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향림마을 마을공동텃밭 | 향림마을 주민들은 도시재생 사업 일환으로 방치된 마을 옆 야산을 공동텃밭 겸 도시농업체험원으로 조성했다. 주민들이 직접 키운 채소를 사고 파는 신선푸드마켓을 만들 예정이다. 사진 은평구 제공


도시재생은 서민 주거권을 앗아가고 철거 과정에서 무수한 갈등을 유발한 재개발·재건축의 폐단을 막기 위해 생겨난 도시계획의 새 방식이다. 은평구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고 문재인정부 대표 정책으로도 채택된 도시재생의 출발지다. 은평구는 도시재생 발원지답게 많은 모범 사례를 만들고 있고 여러 지자체가 도시재생을 배우러 찾아오는 모델이 됐다.

낙후하고 지저분한 마을이 아름다운 꽃밭과 주민 공동 텃밭으로 뒤바뀐 산새마을과 함께 최근 모범적 사업지로 떠오르는 곳은 향림마을이다.

◆은평구 도시재생, 전국으로 확산 = 불광2동 일대 향림마을에서도 재개발 바람이 분 적이 있다. 은평 뉴타운이 들어서고 인근 불광1동에서도 재개발이 추진되면서다. 하지만 과도한 개발비, 입주금 부담 등 재개발의 실상에 눈 뜨게 되면서 도시재생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재생에 동의하는 주민들이 늘어나자 사업도 속도가 났다. 4일 만난 설진환 불광도시재생센터 사무국장은 "주민 참여가 요즘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났다"며 "많은 주민들이 도시재생 추진 이후 동네 살림에 관심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불광2동 일대 향림마을은 통일로와 연서로 사이에 있는 단독·다세대 주택 밀집지역이다. 1841동 주택에 8754세대, 1만8400여명 주민이 살고 있으며 주택 노후율이 75.77%에 달한다. 인근 진관동, 불광동 아파트 단지 개발로 지역 간 격차가 뚜렷해졌다. 하지만 도시재생이 추진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향림마을은 현재 서울시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 2단계 사업지역 6곳 중 유일하게 주민협의체가 구성될 만큼 도시재생에 대한 주민 참여가 활발한 곳이다. 172명의 주민 위원들은 매주 월요일 모임을 갖고 마을 현안과 도시재생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처음 도시재생을 추진할 때는 개념도 낯설고 선례도 없어서 낡은 건물 개보수, 도로 넓히기 등에만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도시재생의 본질이 건물 외관 고치기가 아닌 마을의 총체적 되살리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업의 중심도 옮겨졌다.

설 사무국장은 "전에는 물리적 환경개선에만 치중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제는 외부 용역도 도시계획과 공동체 복원을 나눠서 발주하는 등 어떻게 공동체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마을을 만들 것인지로 사업 중심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향림마을 도시재생계획단은 사업 대상지를 4개 권역으로 쪼갰다. 주민 의견을 더 구체적으로 듣고 마을의 주요 관심사를 세부적으로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주민 워크샵도 11번이나 개최했다. 급한 사업, 중요한 사업, 마을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스토리 발굴 등이 속속 이뤄졌다.

현재 향림마을은 국토부가 추진하고 서울시가 선정하는 도시재생 2단계 사업 지역 신청을 준비 중이다. 2단계 도시재생 추진 지역으로 선정되면 국비를 추가로 지원 받는 등 사업 추진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도시재생 모범사례 이어져 = 은평구 도시재생 대표 사업지에는 산새마을이 있다. 서울에서 가장 낙후한 동네로 대규모 개 사육장이 있던 산새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나이든 어르신이고 사육장 주변을 중심으로 쓰레기가 넘쳐나던 흉물스런 마을이었다. 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을 추진하면서 주민과 공무원이 팔을 걷고 마을 텃밭을 만들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주민들은 한번 마음을 바꾸자 180도 달라졌다. 업체에서 가져온 보도블록을 바닥에 내던지기까지 하며 싸고 좋은 물건을 쓰기 위해 애를 썼다.

산새마을 소문이 퍼지자 은평구 곳곳에서 재생 사업을 신청하는 마을이 늘었다. 녹번산골마을(녹번동), 응암산골마을(응암1동), 토절마을(역촌동) 등 은평구 전역에서 단계별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김우영 구청장은 "은평구의 도시재생은 서울시 주요 정책이 된 것은 물론 문재인정부 대표 정책으로 채택되는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재개발 갈등을 보듬고 각박해진 공동체를 되살리는 등 도시재생 사업지가 확대될수록 재개발과 전혀 다른 도시재생의 효과와 필요성이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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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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