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박원순 바람에도 인물 통했다

2018-06-15 11:00:15 게재

서울 '보수텃밭' 강남에서 서초로 이동?

조은희 '나홀로 선거운동' 재선 성공

정순균 강남구 당선인 득표율도 눈길

서울 구청장선거에서 서초구가 유일하게 자유한국당 구청장을 배출, 강남을 제치고 보수의 텃밭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 인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잦은 지원유세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힘을 실었지만 결과적으로 조은희 현 구청장을 넘지 못했다. 강남에서도 정순균 당선인이 박 시장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 바람 가운데 인물이 통했음을 보여준다.

정순균 강남구청장 당선인

6.13지방선거 개표 결과 조은희 한국당 서초구청장 후보는 11만7542표(52.38%)를 얻어 9만2154표(41.06%)를 얻은 이정근 민주당 후보를 10%p 이상 차이로 따돌렸다. 두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한다는 선거 후반부 여론조사를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다. 민주당 서울시당은 선거 직전 주말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다며 조심스레 승리를 점치기도 했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박원순 시장이 예비후보 등록 첫날부터 선거운동 마감 직전까지 서초를 찾는 등 민주당이 총력을 기울인 터라 결과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서초구는 올해 예산이 5693억원으로 강남구(8120억원)보다 훨씬 적지만 씀씀이는 더 여유롭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재정자립도는 서초구가 53.4%로 강남구(53.3%)보다 약간 높다. 자체수입으로 살림살이를 꾸려갈 능력을 뜻한다. 조정교부금과 재정보전금 등을 포함한 재정자주도는 각각 59%와 54.8%로 차이가 조금 더 벌어진다.

조은희 서초구청장 당선인

서울시의회 자치구 재정분석에 따르면 서초구는 자체사업 비중이 가장 높다. 2017년 기준 서초는 36.7%, 강남은 34.9%다. 사회복지 등 보조사업 비중은 서초가 34.2%인 반면 강남은 44.3%로 10%p 차이가 난다. 사회복지비 비중은 각각 34.45%와 38.95%다. 실제 서초구 국민기초생활수급자는 4900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비율(1.11%)로 따지면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낮다.

이처럼 보수세가 강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최근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로 인한 분위기도 조 구청장 재선에 한 몫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같은 공약을 내건 김문수 후보는 박원순 시장에 2만6000여표 차이로 뒤졌다. 서울시의원을 뽑는 4개 선거구에서도 한국당 후보가 적게는 2000표에서 많게는 8000표 차이로 모두 민주당 후보에 패했다. 김문수·안철수 후보가 함께 얻은 표만큼 득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 구청장 '경쟁력'이 작동한 셈이다.


지역에서는 조은희 구청장이 골목을 누볐던 지난 4년을 주민들이 높이 평가했다고 분석한다. 꼼꼼한 생활밀착형 행정에 중앙 정치권 분위기나 서울시장 선거와는 다르게 주권을 행사했다는 얘기다. 조 구청장은 평소 주민들에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고 불편사항이나 각종 구상을 공유하는 동시에 올해 초에는 골목을 누비는 삼륜차를 마련해 현장행정을 강화했다. 영향력이 있는 문화예술계 관계자나 전직 외교관과 장성 등 사회 지도층과 행정간 접점을 마련하기도 했다.

조 구청장 스스로는 떠들썩한 유세 대신 개소식·선대위·후원회 없는 조용한 선거를 치른 점에 주목했다. 그는 "그 시간에 주민들과 더 만나고 악수를 했다"며 "동네 곳곳을 찾아가 주민들이 듣든 듣지 않든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벽치기 유세도 했다"고 말했다. 조 구청장은 "주민들이 사실은 다 듣고 있었더라"며 "지지 주민이나 그렇지 않은 주민이나 그 모든 마음을 다 헤아려 품격있는 도시 서초에 산다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뛰겠다"고 약속했다.

강남구는 달라진 지형이 선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청년과 신혼부부 인구가 많은 세곡동 임대주택 단지가 대표적이다. 정순균 민주당 강남구청장 당선인이 세곡동에서만 5000표 이상 한국당 후보에 앞섰다. 정 후보는 수서동과 일원동 등 전통적으로 민주당세가 강한 동네에서 모두 승리했는데 지난 총선에서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개척한 강남을 지역이기도 하다. 서울시의원 선거에서도 강남을 지역은 모두 민주당이 당선됐다.

동시에 '인물'도 투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정홍보처장,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등 화려한 이력은 자랑하는 정 당선인 득표율(46.08%)은 박원순 서울시장(40.82%)보다 5%p 이상 높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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