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민들, 미래세대로 떠넘기는 전쟁비용 인식못해

2018-07-02 11:27:04 게재

▶ "빚 내 전쟁하는 미국, 소득불평등 악화"에서 이어집니다.

19~20세기 벌인 전쟁에서 미 정부는 세금에 따라 전비를 조정했다. 하지만 2001년 이후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막대한 빚을 내기 시작했다. 보고서 공동저자인 스테파니 사벨 브라운대 교수는 온라인매체 '톰디스패치'에 "오늘 당장 모든 전쟁을 중단한다고 해도 2050년대가 되면 전쟁 부채에 따른 이자만 8조달러를 지불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처럼 막대한 부채가 미국 경제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가늠하긴 어렵다. 왓슨 연구소 보고서는 1812년 영미전쟁과 2번의 세계대전, 베트남전, 현재의 테러와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어떻게 전비를 댔는지 살피면서 그에 대한 추정가능한 근거를 제시한다.

 


과거엔 세금을 걷거나 전쟁채권을 발행하면서, 동맹국에 부담을 떠넘기면서 전비를 마련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미국은 오로지 빚으로만 전쟁을 벌이고 있다. 남북전쟁 때 미 정부는 주로 개인 기부자들로부터 돈을 빌리는 방법을 택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민은 이자를 쳐서 정부의 빚을 갚아야 했다. 이는 특히 미국 북부의 금융 엘리트들에겐 노다지 사업이었다. 부유한 개인 대출자들은 더 부유해졌고, 세금으로 나라의 빚을 갚아야 했던 나머지 모든 사람은 더 가난해졌다.

1차 세계대전 때엔 반대였다. 정부는 저소득 국민들을 대상으로 전쟁채권을 발행했다. 최소금액이 25센트인 전쟁저축우표와 최소금액이 25달러인 전쟁저축증서를 통해 전비를 마련했다. 계약금만 있으면 누구나 전쟁채권을 살 수 있었다. 모자란 나머지 금액은 분할해서 낼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전쟁은 국민들의 저축을 독려했다. 그 결과 많은 저소득 미국민들이 이자와 함께 원금을 돌려받았다. 전쟁채권은 당시의 불평등 수준을 크게 낮춘 것으로 평가 받았다.


세금부과 전략 역시 다양한 전쟁에 동원됐다. 2차 세계대전 때인 1940~1944년 미 정부는 세율을 5배 올렸다. 고소득층을 겨냥한 누진세였다. 100만달러 이상 소득을 올리는 이들에겐 65%까지 세율을 책정할 수 있었다. 미국은 다양한 전선에서 전투를 벌인 결과 상당한 부채를 지게 됐지만, 누진세 세율 덕분에 저소득 미국민에게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반면 베트남전에서 미 정부는 대규모 감세안을 동시에 시행했다. 그리고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전쟁에서 졌다. 이 시기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전례없이 높아졌다. 저소득 미국인들은 치솟는 물가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 전쟁이었다.

현재 벌이는 전쟁은 전적으로 빚에 의존하고 있다. 전쟁비용의 60%는 부유한 개인이나 연방준비제도와 같은 정부 기관들에서 빚을 낸다. 40%는 해외 나라들이다. 빚으로 전쟁을 수행한다는 '전쟁금융 전략'은 부시 대통령이 시작했지만 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나 현재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도 별다른 변경 없이 지속되고 있다. 물론 오바마 전 대통령은 몇 차례 세금을 올렸지만, 감세 흐름을 뒤바꿀 만한 대규모는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세제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대규모 감세안을 통과시켰지만 실상은 소득 상위 1%를 위한 선물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달리 말하면 21세기 미국은 다양한 전쟁을 수행하면서 남북전쟁 당시 부유한 개인에게 돈을 빌리는 방식과 베트남전 당시 시행한 대규모 감세 방식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예상가능한 결론은 이미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은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다.

경제학자 린다 빌메스는 현재 미국이 전비를 대는 방식에 새로운 요소가 등장했다고 지적한다. 이전의 전쟁을 보면 개전 이후 전비는 국방부 예산에 포함돼 의회의 감시를 받았다. 하지만 2001년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쓰이는 '해외 긴급작전 예산'(OCO)은 정부 예산안 밖에서 따로 책정되고 집행되고 있다. 즉 감시를 받지 않아도 된다.

빌메스는 "이 때문에 OCO는 비자금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현재의 전비 책정의 영향은 먼 훗날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예산책정은 지출한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전체 예산 내에서 상쇄될 필요도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전쟁 예산의 책정과 집행 과정은 불투명하고 회계책임성을 따르지도 않는다. 전비 규모를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 미 상원 국방예산책정 소위원회는 베트남전 시기 청문회를 통해 전쟁비용의 79%를 논의해 책정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국방예산소위가 논의한 금액은 고작 17%에 불과했다. 미 상원 금융위원회는 2001년 이후 17년 동안 단 1번만 전비에 대한 전략을 논의하는 데 그쳤다.

'깜깜이 전쟁 예산' 때문에 대부분의 미국민들은 정부가 수행하는 전쟁에 들어가는 비용, 그에 따른 자신의 부담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전쟁 징용제가 없어진 점, 대부분 전쟁이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다는 점도 무시못할 변수다.

대중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전쟁비용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반면 사회기반시설 투자나 과학에 대한 투자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2001년 9·11 이후 10년 동안 군비는 50% 늘어났다. 반면 기타 정부 프로그램에 대한 지출은 13.5% 늘어나는 데 그쳤다.

비영리기구인 '국가우선순위프로젝트'에 따르면 매년 정부는 재량적으로 쓸 수 있는 예산을 논의한다. 사회보장, 의료보험 등 의무적 지출과 다른 지출이다. 2001년 재량적 지출은 비국방 프로그램에 더 많이 할당됐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국방과 관련한 재정지출이 압도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2017년 국방, 국가안보 지출은 재량적 지출의 53%를 차지한다. 2018년 의회는 국방에 7000억달러의 재량지출을, 비국방에 5910억달러를 책정해 전년도 비율과 대략 일치시켰다. 이 예산은 OCO에 들어가는 자금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예산안과 관련한 제안이 의회를 통과한다면, 2023년 재량지출 중 국방관련 예산 비율은 65%까지 높아진다.

전쟁관련 국방지출이 늘어나면 다른 부문의 지출은 줄어든다. 노후화되는 교량, 범죄대처, 주택문제, 의료보험, 교육, 기후변화 등의 예산이 큰 타격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빚을 내 전비를 대면서 미 행정부는 막대한 부담을 미래세대에 전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조국이 영원한 전쟁 상태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정치학자이자 정책연구가인 사라 크렙스는 "미국인은 전비를 세금으로 충당하자고 할 때만 전쟁에 관심을 쏟는다"며 "전쟁과 관련한 세금이 있다면 사람들은 전쟁비용을 입에 올리고 미국이 벌이는 전쟁의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 대중의 대화에서 전쟁이라는 주제는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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