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소통과 존중의 성교육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성 규범의 대 전환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미투를 계기로 오랫동안 침묵했던 성폭력 피해자들이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성폭력의 범위도 물리적인 강제력을 넘어 위력 등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포괄적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다. 매우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던 생각과 말, 행동들이 이제는 성폭력 논란에 휩싸이기 쉽고 여기에 다른 감정이나 역학구도가 개입되어 복잡해지고 있다. 서로 다른 기준과 생각에 대한 소통이 부족해 극단적인 혐오 감정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을 내리기도 참 어려워졌다. 이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 조작하여 진실을 왜곡함으로써 다른 이득을 누리려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성교육도 이전과는 다른 변화 절실
그만큼 성교육도 이전과는 달리 변화가 절실하다. 단순한 지식이나 논리를 배우는 성교육만으로는 이러한 상황에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교육의 척박한 여건을 생각하면 고민은 더 깊어지게 된다. 획일적 입시교육이 우선하는 현장에서 지금의 성교육조차도 시간과 관심이 부족한데, 언제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과 역학이 작동하는 복잡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고 대처하도록 가르칠 여유가 있겠는가. 그동안 학교 성교육에서 성평등, 성적결정권, 동성애 등을 두고 성교육표준안이냐 포괄적성교육이냐 하는 논란이 있어 왔지만, 이는 단순하게 논리적인 입장 차이를 넘는 문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건교육포럼과 한국보건교육학회는 최근 '소통과 존중의 학교 성교육'을 제기하고 이를 위한 성교육종합방안을 제안했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어떤 입장으로 성교육을 하든, 아이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에 무수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공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교육표준안이나 극단적 페미니즘처럼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가르치는 것은 사유의 근거와 기회를 차단하는 비교육적인 일이자 편협함으로 아이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 되기 쉽다. 여러 입장들 속에 자신의 생각을 조망하고, 소통하며 타협하는 생활기술, 역량을 갖게 해야 한다. 학교의 성폭력이나 미투가 합리적으로 처리되는 것도 중요한 성교육의 일부가 될 것이다.
성교육의 변화는 교육의 대전환과 맞물려 있어 대통령 직속 성교육 TF, 교육청 성교육위원회 및 학교 성교육부 설치, 학점제 및 보건 등 초중등 과목 재구조화, 성 사안 학교 밖 시스템 구축 등 획기적인 방안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성교육과 성 관련 사안에 대응하는 책임이 교육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으로 나뉘어 소통이 어렵다. 또 교육부는 경직된 관료시스템과 획일적인 10개 교과체제, 입시체제에 갇혀 성교육을 체계적으로 접근하도록 할 교과목 재편을 회피하고 있다. 실제로 2007년 학교보건법과 2009년 교육부 고시로 보건과목과 성교육이 모든 학교의 의무교육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필수과목을 재편하지 못하고 전체 수업시간(양)의 1/10수준인 학교장 재량 창의체험활동 시간에 보건을 선택과목, 지침수업으로 배정했다.
성교육도 사교육 받아야 하나
성교육에는 신념과 전문성이 중요한데 20여 년 성교육을 담당했던 보건교사와 지역 활동가들은 수업 시간 확보를 위한 전투에 지쳐버렸다. 심지어 성교육의 양극화로 사교육이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폭력이나 스쿨 미투가 발생하면 힘도 없는 성교육 담당 교사에게 사안 대응을 떠넘겨 성교육 기피분위기가 조성되고, 업무 하중에 대한 회피 경향과 내부자 간 온정주의, 역학구도가 진실을 구성한다.
정말 국민들의 삶에, 성으로부터 오는 행복과 성교육이 중요한 것인가? 그렇다면 유네스코 성교육 가이드라인처럼 법으로 정해진 성교육을 권리와 의무로 인식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사회적 합의, 부처와 학교, 지역사회의 유기적 분화와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사회적 요구인 성교육이 실생활에 유용하게 이루어질 수 있고 권한이 책임질 수도 없는 학교 내 소수자, 약자가 성 사안을 담당하게 하는 적폐구조를 청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