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사람들 ‘고양이급식소연대’

“길고양이 덕분에 이웃과 나눌 이야기 많아지고 삶이 풍요로워졌어요~”

2018-10-18 00:00:01 게재

칠십이 넘은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이상교 작가는 최근 ‘길고양이 배고프지 말 것’이라는 시집을 펴냈다. ‘소중하지 않은 삶은 하나도 없다’며 작은 길냥이들이 배 곪지 말고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을 시집에 담았다. 시인의 마음처럼 일상에서 길고양이들을 돌보며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고양이급식소연대’(공동대표 권창규 신지윤)다. 길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길냥이를 생명으로 존중하고, 소중히 돌보면서 이웃에 대한 정도 더 돈독해졌다는 사람들. 그들을 만나보았다.

마을청소 해주며 길냥이 인식 개선 활동 병행
고양시를 대표하는 동물은 고양이다. 고양이를 캐릭터로 하는 도시에 어울리는 고양이를 위한 모임을 고민하다 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해보자는 의견에서 출발한 모임이 고양이급식소연대다. 처음에는 지자체 급식소를 설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여의치 않게 돼 지금은 길고양이들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임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10월부터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가장 주력한 활동은 바로 청소운동이다. 길냥이가 많이 살거나 길냥이로 인해 문제가 생긴 마을을 찾아가 대청소를 해주는 활동이다. 고양이를 싫어하지만 마을을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마을 대청소를 하며 길냥이가 머무는 공간을 미관상 보기 좋게 정리하고 이웃과 소통하다 보면 길냥이 관련 학대나 민원이 줄어든다고 한다. 청소운동은 주로 고양시에서 진행되지만 급식소 보급과 중성화 사업 지원은 전국으로 범위를 확대해 지원한다. 또한 고양이 학대나 길냥이 민원과 관련된 대처 매뉴얼을 제작하기 위해 다른 고양이 단체나 동물단체와 연대해 활동한다.
고양이급식소연대에서는 길고양이 인식개선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길고양이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민원이 생기거나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길냥이와 사람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고양이 중성화 수술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고양이 중성화 수술은 마을에 사는 고양이의 개체 수 조절이나 고양이 울음소리로 인한 민원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간혹 고양이가 불쌍하다며 중성화 수술을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웃을 위한 배려이자 고양이로 인해 발생하는 민원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랍니다.”(고양이급식소연대 신지윤 대표)
고양이급식소연대에서는 길냥이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있도록 장비를 대여해주고, 수술비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다.

 

고양이 운동 덕분에 이웃과 친해져
고양이급식연대 회원들은 길냥이 밥을 주며 만나는 이웃에게 친절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선다. 길고양이가 마을에 잘 정착해 살아가기 위해서는 고양이돌보미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협조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양이 돌보미로 3년 째 활동 중인 이은솔씨는 “책임감을 느끼고 오랫동안 꾸준히 밥을 주며 돌보다 보니 민원이 생겼을 때 내 편이 돼주는 이웃들이 생겼다”며 “당당하게 고양이 밥을 주고 이웃과 신뢰를 쌓아가다 보면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웃들의 마음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전했다.  
신지윤 대표는 “길에서 태어나 가장 낮은 계층의 삶을 살다가는 길고양이가 조금 더 안전하게, 배고프지 않게 살아간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네 삶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며 “길고양이 덕분에 이웃과 나눌 이야기가 더 많아지고 내 삶도 한결 풍요로워졌다”고 말했다.
고양이급식소연대 네이버 카페 https://cafe.naver.com/gilmyo

인터뷰


<김해인 이은솔 신지윤씨>

김해인씨
집에서 고양이를 키운 지 4년째에,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지 3년째네요. 길냥이들의 특성상 이 녀석들과의 인연이 언제까지일지 알 수가 없으니 얼굴을 보는 동안이라도 더 잘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밥을 주고 있어요. 고양이돌보는 비용을 모두 자비로 충당해야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오랫동안 길고양이들을 돌봐주려고 합니다.

이은솔씨
처음엔 백석동 동네 근처에서 길고양이를 돌봐줬는데 민원이나 길고양이에게 문제가 생겨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답답했죠. 고양이급식소연대를 알게 돼 함께하면서 고양이 관련 지식과 경험이 많아진 덕분에 지금은 훨씬 더 수월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모르는 사람이라도 길냥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조금씩 가까워지고, 더디지만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신지윤 대표
고양이급식소연대 활동을 하기 전에도 길냥이에게 밥을 줬는데 그때는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면서 밥을 줬어요.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웃을 의식해 소극적으로 주었죠. 지금은 밥 주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고양이 운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길고양이를 돌보면서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졌답니다.

양지연 리포터 yangjiy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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