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위험의 외주화 방지' 한걸음 내디뎠다

2018-12-28 11:17:49 게재

원청 산재예방 의무 강화 … 중대재해 예방 위해 노동자 작업중지권 명확히 규정

앞으로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가 일부 위험 장소에서 '사업장 전체'로 확대된다.

국회는 27일 본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포함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산안법) 등 노동관련 법안 8건을 가결 처리했다. 산안법 전면 개정은 고 문송면군 등 원진레이온 노동자 230명의 사망에 따른 1990년 개정 이후 28년 만이다.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로 숨진 계약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희생을 계기로 입법 논의에 속도가 붙으면서 개정안은 이른바 '김용균법'으로도 불렸다.

개정안은 산재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보호 대상을 '노동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산업재해 위험에 노출돼 있음에도 보호대상에서 제외됐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배달종사자가 보호대상에 포함됐다. 또 일정규모 이상 기업의 대표이사는 안전ㆍ보건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이사회에 보고해 승인받아야 한다. 도급인 책임도 강화됐다. 개정안은 도급인이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해야 하는 장소를 도급인의 사업장뿐만 아니라 도급인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장소로서 화재·폭발 등 노동자에게 유해하거나 위험한 장소로 확대했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국회 통과│27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투표 결과가 전광판에 표시되고 있다. 재적의원 185명 중 찬성 165표, 반대 1표, 기권 19표로 집계됐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유해·위험작업, 도급 금지 =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해 유해·위험작업의 도급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개정안은 도금작업 수은 납 카드뮴의 제련·주입·가공·가열 작업, 허가 대상 물질의 제조·사용 작업의 유해·위험성을 고려해 사내 도급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 시 10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다만 일시·간헐적으로 하는 작업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수급인이 보유한 기술이 사업주의 사업 운영에 필수불가결한 경우로서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는 예외적으로 도급을 허용했다.

개정안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정상 불명확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명확히 규정했다. 개정안은 또 원청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다. 기존에는 원청 사업주의 안전보건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이 현행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라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개정 산안법은 이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 수위를 높였다. 특히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을 강화했다. '징역 1년 이상'과 같은 방식으로 하한형을 도입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노동계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산재 사망사고를 초래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낮은 형이 선고되는 경향을 고려해 같은 범죄를 5년 내 2번 이상 범할 경우에는 형벌의 2분의 1을 가중하도록 했다.

민주노총은 개정안 가결 후 성명을 내고 "산재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기업처벌 강화는 가중처벌은 도입됐으나 하한형이 도입되지 않아 실질 실효성 확보는 제한적"이라면서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의 완전한 보장을 위해 앞으로도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 이날 국회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가결 처리했다.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사용자는 즉시 이를 조사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근무 장소 변경, 행위자 징계 등의 조치를 하도록 했다.

또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대응 조치 등을 필수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을 줄 경우 사용자는 3년 이하 징역 혹은 3000만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받는다.

다만 최초로 입법화되는 점 등을 고려하여 처벌보다는 사업장 내의 자율적 시스템으로 규율해 나가도록 했다.

이 외에도 산재보험이 보호하는 업무상질병에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을 명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과 경비, 청소 등과 같이 용역·위탁 사업에 종사하는 65세 이상 노동자에게도 실업급여 수급자격을 주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또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청년고용촉진특별법 등도 이날 가결 처리됐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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