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공무원 유착, 가습기살균제 사건 증거인멸·은닉"

2019-07-24 11:51:28 게재

검찰, 자료제출 불응에 가습기살균제 벌칙 규정 처음 적용

가습기넷 "2011년에 이처럼 수사했다면 결과 달랐을 것"

대기업들이 조직적으로 공무원과 유착해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과 관련된 증거를 인멸하고 은닉한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환경부 공무원이 각종 내부 자료를 유출하고,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를 인멸하도록 조언했다. 국회의원 전 보좌관은 인맥을 활용해 기업 관계자의 사회적참사 특조위 소환 무마 등 알선 명목으로 금품을 받기도 했다. 검찰은 23일 이들에게 증거인멸·은닉,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검찰 2차 수사 결과 보여주는 가습기 특조위│최예용 사회적 참사 특조위 부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대회의실에서 검찰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2차 수사 결과에 대한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SK케미칼 홍지호(68) 전 대표 등 8명을 구속기소하고, 정부 내부 정보를 누설한 환경부 서기관 최모(44) 씨 등 26명을 불구속기소 했다. 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검찰에 따르면, SK케미칼의 전·현직 임직원은 2013년 정부부처 조사, 수사 및 소송, 언론 보도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한 '가습기 TF' 활동 과정에서 안전성 부실 검증 사실이 확인되는 자료인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를 은닉하는 등 가습기살균제 관련 각종 자료들을 삭제했다. 이들은 2018년 1월 환경부의 현장조사시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 제출 요구에 불응하고 '미보유 중'이라는 거짓 의견을 제출했다.

검찰 관계자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따른 자료 제출 불응 행위에 대해 동법상 벌칙 규정을 최초로 적용해 기소했다"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은 환경부장관이 가습기살균제 사업자나 원료물질 사업자에 대해 자료나 물건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이에 대해 거짓된 자료나 물건 등을 제출하거나 정당한 사유없이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애경산업 전 임직원은 2016년 2월 가습기살균제 수사가 본격화되자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 폐기를 지시하고, 애경산업 및 중앙연구소 총 55명의 직원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교체하고, 이메일을 완전 삭제하게 했다. 또 '파란하늘 맑은가습기' 관련 자료,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 등을 인멸하거나 은닉했다.

환경부 공무원과 애경산업과 유착관계도 드러났다. 환경부 서기관 A씨는 2017~2019년 사이 애경산업으로부터 수백만원 상당의 금품 및 향응 등을 제공받고, 환경부 국정감사자료, CMIT·MIT 함유 가습기살균제 건강영향 평가 결과보고서 등 각종 내부 자료들을 제공했다. 또 2018년 11월 애경산업 직원에게 검찰 수사가 개시될 것으로 보이니,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들을 철저히 삭제하라고 증거인멸을 조언했다.

국회의원 전 보좌관 B씨는 2018년 6월 기업 관계자의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소환 무마 등 알선 명목으로 B사로부터 수천만원을 수수한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최예용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진상규명을 방해한 행위를 규명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환경부 공무원이 내부 정보를 누설하고 증거인멸을 교사한 행위로 기소됐고,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 기업 관련자도 증거인멸과 은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며 "애경산업이 특조위 등을 상대로 로비를 시도하다가 브로커가 구속된 문제를 밝힌 것도 성과"라고 말했다. 가습기넷(공동운영위원장 김기태 미국 뉴욕주 변호사)은 "2012년 2월 이후 2016년까지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주요일지가 비어 있는데, 그 죽음의 원인이 드러난 2011년에 곧바로 검찰이 이번처럼 수사했다면 과정과 결과 모두 분명 달랐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성열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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