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중화민국 국채, 트럼프 무역전쟁 지렛대 될까

2019-08-30 11:33:16 게재

블룸버그 "트럼프 대통령, 므누신·로스 장관

1911년 발행 중국 철도채권 소지자들 만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전방위적 무역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1911년 발행된 중국 국채가 트럼프 행정부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29일 "트럼프 행정부가 100년이 넘은 중화민국 국채에 대한 상환권을 되살리는 사안을 연구중"이라고 전했다.
1911년 5% 금리로 발행된 '후쾅철도채권'. 화려한 디자인과 커다란 인장이 특징이다. 후쾅철도채권은 한커우(현재의 우한시)에서 쓰촨까지의 철로를 건설하는 데 쓰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됐다. 영국 런던과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의 은행들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발행을 주선했다. 사진 출처 이베이

지급불이행된 중화민국 국채는 현재 수천명의 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 등에서도 수집품 성격으로 해당 국채를 판매한다. 국채당 수백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거래된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1949년 중화민국을 계승했다. 중화민국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대체했다.

해당 국채는 1911년 발행된 것으로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소지한 측에서는 중국 국채에 대한 상환청구권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점차 고조되는 미중 무역전쟁을 활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윌버 로스 상무장관 등이 이들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출지가 관심사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100년 전 중화민국 국채는 또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지렛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례적인 건 대통령을 비롯한 장관들이 해당 국채소지자들을 만났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테네시주 소 목장주로 중화민국 국채 보유자를 대표하는 조나 비안코는 지난해 8월 대통령 소유의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골프장에서 트럼프를 만났다. 직후 므누신 장관을 만났다. 하지만 비안코는 어떤 내용을 논의했는지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비안코는 2001년 '미국 중화민국채권보유자협회'(ABF)를 공동설립한 인물이다. 그는 ABF에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교육부장관을 지낸 빌 베넷, 클레어몬트연구소 선임연구원인 브라이언 케네디, 미공군 최고법률자문으로 내정됐던 마이클 소카라스 등을 섭외했다.

베넷과 케네디, 소카라스 등 ABF 대표들은 올해 4월 로스 상무장관을 만났다.

비안코는 "트럼프가 힘을 보태준다면 완전히 새로운 게임으로 접어들 수 있다"며 "그는 '미국 우선주의' 대통령이다. 신의 은총이 대통령에 깃들기를"이라고 말했다.

비안코의 추산에 따르면 중국이 지급불이행한 국채는 물가상승률과 이자 등을 합하면 현재 가치로 1조달러를 넘는다. 중국이 보유한 미국채 액수와 대략 비슷하다.

'후쾅철도채권'은 화려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커다란 인장이 찍힌 후쾅철도채권은 1911년 한커우(현재의 우한시)에서 쓰촨까지의 철로를 건설하는 데 쓰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됐다. 액면 이자율은 5%로 런던과 베를린, 파리, 뉴욕의 은행들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발행을 주선했다.

미 행정부에 정통한 사람들은 재무부가 현재 중화민국 국채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급불이행된 채권을 미 행정부에 팔고, 미국이 이를 다시 중국과 거래하면 된다'는 ABF의 제안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무부와 상무부 대변인은 블룸버그 확인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블룸버그는 "중국측에서는 ABF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장관들을 만난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같은 상환청구권이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견의 핵심은 해당국채의 소멸시효와 공산혁명으로 이전 정부를 대체한 현재 중국의 법적책임 범위다. 이와 관련해 가장 유사한 사례는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이다. 소련은 차르 시대 판매된 국채에 대해 지급을 거부했다. 수천명의 투자자가 갖고 있는 러시아 국채가 순식간에 휴지 조각으로 전락했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원칙으로서 정치체제는 전임 체제의 부채를 계승한다는 데 동의한다. 대부분의 정부 역시 이전 정권의 부채를 인정한다. 새로 발행할 국채를 사들일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공산혁명이 발생한 소련과 중국의 경우는 애매하다.

듀크대 법학교수이자 국채재조정 전문가인 미투 굴라티는 "재무부 내 사람들은 ABF의 제안을 미친 짓이라고 여긴다"며 "하지만 법률 차원에서는 완전히 유효한 채권이다.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뛰어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명석한 변호사들이 모여 시도한 바 있다. 1979년 해당국채 보유자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중국 정부를 법정에 소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당시 중국 정부를 대리했던 베이커&매켄지 LLP의 선임 변호사 진 서룩스는 "변호인단으로서 우리는 이례적인 요구를 받았다"며 "중국은 '중화민국'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책에 따라 공산혁명 이전의 중국을 그냥 '중화민국'으로 부르지 말라고 요구했다. 현재의 대만(공식 국가명 중화민국)과 혼동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송 내내 '이른바 중화민국'이라고 표현해야 했다"고 말했다.

소송은 기각됐다. 1976년 제정된 외국국채면책법(FSIA)은 외국 정부와 미국시민 간의 청구권 갈등을 다루는데, 20세기 초반 사건의 경우 소급적용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2004년 연방대법원은 FSIA가 소급적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판단했다.

원고인 마리아 앨트만이 자신이 소유했던 오스트리아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을 20세기 초 독일 나치에 빼앗겼다며 소송을 냈는데, 이에 대해 대법원은 'FSIA를 소급적용할 수 있'고 판단했다.

한편 미국증권거래소(SEC) 역시 중화민국 국채에 대해 조사중이다. 지난해 미 텍사스주 윈저빌리지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이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종교자문역이었던 커비존 캘드웰과 금융플래너 그레고리 앨런 스미스를 고발했다.

SEC에 따르면 캘드웰 목사 등은 공산혁명 이전의 중국국채를 사라며 29명의 투자자들에게 340만달러를 모았다. 매입자 중 일부는 대개 고령의 은퇴자였다. 이들은 연금보험을 깨서 마련한 돈으로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SEC는 소장에서 "피고들은 투자자들에게 채권이 안전하고 위험이 없으며 수천만달러 가치를 지난 상품으로 제3자에게 판매할 수 있다고 호도했다"며 "실제로 채권은 아무런 투자가치를 지니지 못한 수집품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캘드웰 변호인은 올해 3월 "SEC의 혐의는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캘드웰은 금융사 '퍼스트보스턴'에서 채권판매인으로 일했고 와튼스쿨에서 교육받은 사람"이라며 "해당 국채는 적법하고 고객의 요청에 따라 투자한 돈을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공범으로 지목된 스미스는 지난달 자신의 혐의에 대한 유죄협상을 시작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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