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직접 선정하는 '올해의 한책'

2019-09-02 11:35:41 게재

성북구 한책토론회에 200여명 참여 … "민·관이 함께 하면서 시너지 효과"

"'경애의 마음'이 좀 두꺼워서 처음엔 접근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완독하고 나면 그 어느 책보다 강력하게 추천하게 될 겁니다. 가족 얘기, 교육 문제, 사회 문제 등이 담겨 있어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질문하게 하는 책입니다. '경애의 마음'을 지지합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는 단편들로 이뤄져 있지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등 단편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토론을 하면서 얻는 것들이 많습니다."

"'산책을 듣는 시간'을 지지합니다. 지역사회가 가장 혐오하는 시설이 장애인 시설입니다. 이 책을 통해 비장애인들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설이'를 지지합니다. 요즘 학생들은 부모의 의사대로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왜 살아가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삶에 대한 책임감도, 자존감도, 목표도, 의미도 없습니다. '설이'가 공론화돼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사회가 되도록 도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난 8월 31일 '2019 성북구 올해의 한 책 선정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이의종


◆올해의 한책 '설이' = 지난 8월 31일 성북구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9 성북구 올해의 한 책 선정토론회'(한책토론회)에서 각자 지지하는 후보도서에 대한 자유발언 시간에 나온 얘기들이다.

한책토론회는 후보도서 4권을 대상으로 올해 성북구민들이 읽고 토론할 한권의 책을 시민들이 직접 선정하는 자리다. 이날 선정된 한권의 책은 성북구 내 도서관들을 중심으로 작가와의 만남, 토론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민들을 만나게 된다. 이날 한책토론회는 성북구립도서관들을 운영하고 있는 성북문화재단과 서울도서관이 주최하고 성북문화재단과 시민들로 구성된 성북구 한책추진단이 주관했다.

이날 한책토론회에는 한책추진단으로 활동하는 500여명 중 200여명이 참여했다.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13개의 조로 나눠 앉아 45분 동안 후보도서 4권에 대해 토론했다. 이날 토론은 '지역주민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한가(목표성)' '다양한 세대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가(대상)' '지역 주민이 다양한 가치를 고민하고 나눌 수 있나(효과성)' 등 3가지 지표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각 조마다 성북구 내 공공도서관 13곳의 관장 혹은 사서가 함께하면서 토론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도움을 줬다.

토론을 마치고 시민들은 표를 행사해 한권의 책을 선정했다. 집계를 기다리는 동안 책 속의 아름다운 문구를 시민들이 출연해 낭독했고 노래 '아름다운 세상'을 다 함께 합창했다. 그리고 드디어 발표시간.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2019 성북구 올해의 한 책으로 심윤경 작가의 '설이'를 선포했다. 입양과 파양의 과정을 반복하는 주인공 설이를 통해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 시민들의 공감을 얻은 결과였다.

'2019 성북구 올해의 한 책 선정토론회'에서 한 시민이 발표하는 모습. 사진 이의종


◆"책 주제로 격의 없이 대화" = 이날 한책토론회는 전업주부인 주민이 직접 사회를 보는 등 시종일관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축제로 꾸며졌다. 그래서인지 발표 과정과 자유발언에서 웃음소리와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젊은 부모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서관 사서들이 아이들을 돌봤다. 지역주민뿐 아니라 성북구에 위치한 고려대학교 학생들과 대안학교 청소년들도 함께했다. 성북구가 아닌 지역에서 한책토론회의 소문을 듣고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황희찬(23)씨는 "처음에는 토론이 형식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주민들이 책을 주제로 격의 없이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면서 "이번 행사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이지윤(16)양은 "작년에 참여했을 때는 책을 제대로 못 읽었는데 이번에는 책을 다 읽고 참여해서 뜻깊었다"면서 "어른들과 책을 주제로 얘기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2019 성북구 올해의 한 책으로 선정된 심윤경 작가의 '설이'

◆지난 4월부터 한책 추천받아 = 이날 한책토론회를 위해 성북구 내 공공도서관들은 구민들을 대상으로 지난 4월부터 책 추천을 받았다. 그 결과 314권의 책이 추천됐다. 이후, 성북구 내 공공도서관 사서들과 성북구 한책추진단이 314권을 10권으로, 10권을 다시 4권으로 추렸다. 지난 7월부터 후보도서마다 2차례씩 성북구 내 공공도서관에서 토론회를 하면서 시민들의 깊이 있는 의견을 들었다.

이진우 성북문화재단 도서관사업부 부장은 "주민을 대상화해서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함께 만들어가는 활동들이 필요하며 올해의 한책 선정과정은 그런 맥락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이 한책 선정과정을 진행하고 평가한 후, 다음해 사업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면서 "갈수록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그룹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현경 성북구 한책추진단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은 "독서문화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관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민이 함께 해야 시너지 효과가 있다"면서 "한책추진단이 성북의 도서관, 독서 관련 사업에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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