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쪽잠 자던 50대 '영화제작자' 변신
양천구 '제3회 나비남 영화제'
중장년 독거남 지원사업 일환
서울 용산구에서 컴퓨터 관련 사업을 하던 ㄱ씨. 수년 전 사기를 당해 가게를 접고 경제적 문제로 가족과 헤어진 뒤 한동안 일용근로로 생계를 유지했다. 사채업자 협박에 일정한 주거지 없이 떠돌아다니며 교회 등에서 쪽잠을 청하던 그가 단편영화 제작자로 변신했다. 6일에는 그가 다시 설 수 있도록 지지해준 이웃과 영화를 공유하는 특별 '시사회'가 열린다. 서울 양천구가 올해로 3회째 선보이는 '나비남 영화제'다.
양천구가 경제적 위기 등으로 인해 사회와 고립된 중·장년 독거남성이 다시 세상과 만나도록 지원하는 나비남(나非男) 프로젝트를 3년째 진행, 소소한 성과를 얻고 있다. 나비남은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의미다.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50대 독거남성에 주목한 건 지난 2017년.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가족해체가 이어지고 있는데 사회적 안전망도 빈약,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던 즈음이었다. 특히 50대 독거남성은 지원체계가 없고 여느 계층보다 노출을 꺼려해 맞춤형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전수조사를 시작으로 동네 주민들 가운데 하루 한번 이상 찾아가고 매주 한차례는 전화를 걸어줄 멘토단을 꾸렸다. 멘토는 일상적으로는 본인 경험과 지혜를 나누며 어려움을 들어주고 건강 일자리 주거 등 지역사회 자원을 연계하고 위급한 상황에 손을 내미는 역할을 맡는다. 나비남 쉼터인 '50스타트센터'와 병원 복지관 등 35개 기관이 참여하는 '50대 독거남 지원협의체'에서는 복지 보건 고용 금융 지원과 각종 자원 발굴·연계, 위기사유별 맞춤형 지원을 한다.
자조모임 주거환경개선 요리교실 건강검진 심리상담 등과 함께 진행한 홀로서기 지원사업이 영화제다. ㄱ씨를 비롯해 아내와 이혼한 뒤 일용근로를 하며 생계유지를 하던 중 만성 알코올 중독을 앓던 ㄴ씨, 폐업과 신용불량으로 10년 이상 건강보험료를 체납했던 ㄷ씨 등 6명이 단편영화 제작자에 도전했다. 근로능력이 있는 이들은 지역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기초생활수급자로 생계를 해결한다는 차이는 있지만 다들 멘토와의 만남이나 자조모임 등 사회적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다시 세상으로 나온 독거남들은 시나리오 작성부터 스마트폰을 활용한 영상 촬영은 물론 배우로도 직접 참여해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사회적기업에서 기획을 맡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촬영과 소통 전문가들이 협력, 4개월만에 결실을 맺고 6일 오후 신정동 해누리타운에서 선보인다.
짧게는 4분, 길게는 13분에 달하는 영상에 그 삶이 녹아있다. 자신의 젊은 시절부터 오늘까지를 재연하고 해설을 덧붙인 '우리의 강스타', 병상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적은 글에 사진과 영상 음악을 더한 '효심은 사랑의 질서' 등 6편이다.
6명의 감독처럼 자신감·성취감을 얻은 나비남은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고 자립을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 또다른 취약계층과 나비남을 위한 조력자로 활동하기도 한다. 3년째 나비남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박선종(57·신월1동)씨는 "9년 넘게 지하방 생활을 하면서 운동도 밤에만 하던 나비남이 지금은 우유배달 택배를 하는가 하면 사정이 비슷한 이웃을 계속 연결해주고 있다"며 "지역에서 함께 보살피고 보듬으니 다시 꿈을 찾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양천구는 공동체로 복귀한 독거남들 사례에 힘입어 3년 전 전수조사에 응하지 않았던 50대 독거남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동시에 새롭게 전입하는 가구에도 관심을 기울일 예정이다. 지난 2월에는 민간 후원으로 주거 창업 취업교육에 사용할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나비남 매칭펀드'도 시작했다. 본인이 매달 10만원을 예금하면 이웃이 1.5배를 적립, 1년안에 300만원까지 만들 수 있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개개인의 노력에 양천구와 이웃의 관심·지원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회복기를 넘어 자립으로 발돋움하는 중"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