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이이효재

여성운동 현장엔 늘 이이효재가 있었다

2019-09-27 11:28:14 게재
박정희 지음 / 다산초당 / 1만5000원

"호주제 폐지,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결성 등 굵직굵직한 여성운동 현장에는 항상 이이효재 선생님이 계셨어요. 20대 여성들이 이이효재 선생님 일대기를 읽고 자신의 삶과 사회, 나아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25일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서 만난 박정희(56) 작가의 말이다. 관대하고 강인한, 우리 시대 '진정한 어른'인 이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의 일대기를 정리한 첫 책이 나왔다.

'대한민국 여성 운동의 살아있는 역사-이이효재'다. 주로 여성 인물 이야기를 써온 박 작가는 1980년대 초반 대학 시절 이이효재 선생의 영향을 받아 페미니즘에 눈을 떴다.

2008년 진해 기적의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소개할 책을 살피는 이이효재 선생. 사진 다산초당 제공


동토를 뚫고 싹트는 '청춘 이이효재'들을 위해

"선생님은 '진해 기적의도서관'에서 지역 엄마들을 변화시킨 일을 가장 보람되고 행복해 하셨어요. 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함께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가치를 엄마들에게 전파하셨죠."

경남 진해 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들을 정서적으로 더 풍요롭고 건강하게 자라게 하고 싶다는 이이효재 선생의 꿈이 밑바탕이 돼 2004년 2월 문을 열었다. 그는 이곳에서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보며 '그동안 인간의 사랑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구나'라고 깨달았다고 말한다.

"일평생 내가 바라고 노력해왔던 모든 것들이 다 사랑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가부장제에 억눌린 여성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여성들을 차별하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했던 역사를 바로잡는 일도, 정치적 독재가 힘없고 가난한 이들, 특히 더 취약한 여성의 희생 위에서 지탱되고 있기에 저항한 것도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 책 '이이효재' 296페이지 중

2016년 이이효재 선생 이야기를 받아 적는 박정희 작가. 사진 다산초당 제공


192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이이효재 선생은 미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뒤 1958년 이화여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회민주화를 위한 여성의 의식 변화와 역할을 가르쳤고, 학생들이 사회학을 통해 새로운 자각의 기회를 가지고 사회 변혁에 기여하겠다는 사명감을 배우길 바랬다. 그의 제자 최영희 지은희 이옥경 장하진 이경숙 김상희 이계경씨 등은 한국 사회 지도자로 성장했다.

최영희 전 국가청소년위원회 위원장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해야 할 일에는 누구보다 용감했고, 필요한 곳에는 가진 것을 다 내놓는 삶을 실천해온 이이효재 선생님의 삶은 이제 꽃이 지고 막 날아가려는 민들레 홀씨가 아닐까. 그 홀씨가 자신이 속한 시공간에서 자신의 삶과 사회 그리고 역사의 주인으로 살아가려는 길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날아가 앉아 싹틔우길 기대한다."

이이효재 선생은 한국여성민우회 초대 회장(1987), 한국여성단체연합회장(1990)을 지내는 등 한평생을 여성학과 여성운동의 토대를 닦는데 바쳤다. 평생친구이자 동료 교수던 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함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희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정부도 외면하던 시절, 윤 교수는 사비를 들여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피해자들을 하나둘씩 어렵게 만나 자료들을 모았다. 가슴 아픈 만남들을 토대로 1981년 한 일간지에 관련 이야기들을 연재했지만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평화통일위원회로 활동하던 이이효재 선생은 윤 교수를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 소개하면서 함께 일본군 성노예 실태조사를 해볼 것을 권했다. 일본 오키나와 규슈 홋카이도 등과 태국, 파푸아 뉴기니 등을 조사했고, 1998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연 국제세미나에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거론된 최초의 공식적인 국제세미나로, 이후 이 문제를 묻어두어서는 안 된다는 한국과 일본 여성들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25일 만난 박정희 작가. 사진 이의종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품위 있는 삶을 살길

이이효재 선생의 '여성 사회학'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였다. 그는 학생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농민들도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군부 독재체제에서는 여성 사회학이 대중을 선동한다며 탄압을 했다. 결국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해직된 유일한 여성 교수가 됐다.

박 작가는 "모든 여성들의 스승이기도 한 이이효재 선생님은 오히려 교수였던 걸 후회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선생님은 민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셨어요. 미국 유학시절에도 한시라도 빨리 돌아와서 조국을 위해 봉사를 하고 싶어했죠. 교수가 된 걸 후회하시는 건 서구문물을 가르치는데 급급하셨다는 이유에요. 우리 고유사상에 이미 필요한 내용들이 다 있다는 걸 뒤늦게 아셨다는 거죠. 요즘은 동학에 심취해 계세요. 아침저녁으로 100번씩 '남북이 화해하여 평화 통일 이루자'며 주문처럼 기도를 하십니다. 과거 우리 여성들이 동학에서 좋은 주문을 외우면서 기원한 것 처럼요."

이이효재 선생은 요즘 세대들은 고루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일제강점기를 겪은 그로서는 민족 또는 나라의 운명이 곧 자신의 운명임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한다. 매일같이 민족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기도 하다. 노환으로 병상에 있는 이이효재 선생은 아직도 후배 여성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아이도 없지만 본인에게는 수많은 딸들과 손자들이 생겼다고. 그리고 그들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혈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인간의 욕심인지 체험한다고.

이이효재 선생은 이번 책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젊은 여성들이 자유롭게 사고하며 선택을 즐기며 살아나가길 권한다. 자신을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해나갔으면 한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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