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텍대학, 직업교육 새 길을 찾다│④ 순천캠퍼스

일반계고 위탁교육으로 진로변경 지원

2019-09-30 11:30:37 게재

전문기술과정으로 재취업·재교육도

비파괴검사 등 지역산업 구조와 밀착

신입사원 공채로 입사해 정년까지 다니는 '평생직장'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한 취업포털 업체가 최근 직장인들에게 이직 경험을 조사한 결과 설문 참여자 1300명 중 84%가 이직한 경험이 있었다. 연봉과 자기만족을 더욱 중요시하면서 그만큼 이직 사례도 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변화가 좀 더 이른 나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학생이 취업을 위해 방향을 선회하는 사례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정부도 재취업, 재교육을 위한 시스템 확충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시스템 중 하나가 폴리텍대학이 운영하는 전문기술과정, 일반계고 직업교육 위탁과정 등 비학위과정들이다.

재취업, 재교육 또는 진로변경에 나선 사람들을 위해 폴리텍대학 순천캠퍼스는 전문기술과정, 일반계고 직업교육 위탁과정 등 비학위과정을 운영한다. 사진은 자동화시스템과(위) 전기제어과(아래 좌) 설비진단과(아래 우)의 실습장면. 사진 폴리텍대학 제공


실제로 전남 곡성군 소재 한 일반계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허 모양은 아침에 집이 아닌 폴리텍대학 순천캠퍼스 기숙사에서 눈을 뜬다. 순천캠퍼스가 운영하는 일반계고 직업교육 위탁과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초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일반계 고교에 진학했지만 진로를 변경, 취업을 희망하는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교육 과정이다. 물론 허양의 신분은 소속 고등학교 학생 그대로 유지되며 교육 내용과 장소만 변경된 맞춤식 기술교육을 받고 있다. 과정을 수료하면 고교 졸업장과 함께 폴리텍 수료증을 동시에 취득한다.

허양은 비파괴검사 관련 학과인 설비진단과에 재학 중이다. 비파괴검사는 재료나 구조물 파괴 없이 특성을 평가해 시설물 안전성 진단과 수명예측 등을 하는 기술이다. 특히 남학생의 경우 군 복무 기간 동안 기술 직종 특기병으로 복무하며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해당 군 복무기간을 재직기간으로 산정해주는 '취업맞춤특기병'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허양은 "또래보다 한 걸음 먼저 전문기술인으로서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입학했다"면서 "설비진단과는 전국 폴리텍 중 순천캠퍼에만 있다는 특수성이 있는데다 항공, 조선, 원자력, 중공업 및 화학 플랜트, LNG 관련 비파괴검사 전문 업체 및 품질관리 업체 등 좀 넓은 방면을 배워볼 수 있어서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학교에서 배우는 과정보다 관심이 있는 분야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어렵기는 하지만 재미있고 흥미롭다"고 강조했다.

순천캠퍼스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총 150명의 일반계고 위탁과정 수료생을 배출했다. 올해는 16개 고등학교 출신 고등학생 49명이 재학 중이다. 임종대 순천캠퍼스 학장은 "위탁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사전에 학과 설명회를 하고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입학 후에는 교학처에서 위탁학생 동아리를 따로 만들어서 1대1 진로상담, 봉사활동 등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평생직장 위해 '유턴입학'도 = 전문기술과정(1년 직업교육과정)으로 입학한 이 모씨(22)는 군 입대 전 잠시 현재 전공과 유사한 직종에 근무했다. 전역 후 보다 전문적인 기술의 평생 직업을 갖기 위해 고심하던 이씨는 순천캠퍼스에 입학했다.

이씨는 "전역 후 기술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고 다시 배워 좀 더 주도적으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입학했다"면서 "당연히 자격증 취득은 물론 취업이 잘되는 전공을 골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단 취업해서 일을 하다 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면 야간대학에 다닐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현재 자동화 전문지식을 기초로 자동화기계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설계·제작하고 운전·유지보수 할 수 있는 기술인을 양성하는 자동화시스템과에 재학 중이다. 수료 후 설비보전, 반도체/LCD장비 제작, 자동화설비 설치, 기계가공 및 유지보수, 자동화 물류시스템, 전기·전자 및 기계계열 관련 업체 등으로 진출하는 자동화시스템과는 2017년부터 과정평가형 자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비학위의 전문기술과정이지만 전문대졸 이상의 학력이나 실무 경력이 없는 학생도 국가직무능력표준(NCS)를 기반으로 설계된 교육훈련과정을 체계적으로 이수하면 내·외부 평가를 통해 국가기술자격증(산업기사)을 주는 제도다.

직업군인으로 장기 복무했던 정 모씨(39)는 이른바 '유턴입학생'이다. 대학에서 요리분야를 전공한 그는 전역 후 식품영업 관련업계에서 3년간 종사했다. 정씨는 "직장에 다니면서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고민하다 학교를 방문해 상담을 한 후 자격증을 따고 경력이 쌓이면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전기 분야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에는 수업이 쉽지 않았지만 휴일에도 출근해 실습실 문을 열어주고 지도해주는 교수님 덕분에 적응할 수 있었다"면서 "특히 기숙사가 있어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다는 보너스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현재 전기설비설계 및 전기자동제어, 플랜트 전기 정비, 건축물 전기시설관리, PLC 프로그래밍, 전기공사 및 전력기기, 승강기유지보수 관리 관련 업체 등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전문기술과정 전기제어과에 재학 중이다. 이 학과는 폴리텍대학 36개 캠퍼스의 모든 학과를 대상으로 하는 내부평가에서 2위를 차지했다. 전기제어과 지난해 취업률은 81.3%에 달했으며 취업유지율도 88.0%를 기록했다.

순천캠퍼스는 이들 학과 이외에도 컴퓨터응용기계, 산업설비, 전자제어 등 총 6개 학과, 10개 직종을 운영하고 있다.

◆우수한 실습시설, 지역 고교생에 개방 = 또한 순천캠퍼스는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실습시설을 활용해 지역 직업계 고등학생 교육 지원에 나선다. 고등학생도 대학생처럼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골라 듣는 '고교학점제'를 통해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이를 위해 순천캠퍼스는 항만물류분야 마이스터고인 한국항만물류고(전남 광양 소재)와 지난 7월 협약을 체결했다. 순천캠퍼스는 협약에 따라 한국항만물류고 내에서 이수할 수 없는 타 전공(자격)과정과 전문교과를 이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다양한 학과와 직종(6개 학과 10개 직종)의 커리큘럼, 각종 장비, 교수진도 지원하기로 했다. 임 학장은 "전남동부권 유일의 공공직업교육기관으로서 일반계고 위탁과정과 함께 또 하나의 지역 청소년 진로 선택권 강화 기회를 제공하게 됐다"면서 "원하는 학과에 입학하지 못한 학생이나 입학 후 전과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직업교육 참여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전공을 추가로 학습함으로써 4차 산업 혁명시대가 요구하는 융합·창의형 기술 인재로의 양성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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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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