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치매환자 안전망 확보해야

2019-11-07 10:00:00 게재
김병구 제주지방경찰청장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오빠 집에 모여 있던 가족들은 궁리 끝에 전단지를 만들어 엄마를 잃어버린 장소 근처에 돌리기로 했다’ 신경숙 작가의 치매어머니를 모티브로 한 소설 ‘엄마를 부탁해’ 첫 구절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서울역에서 실종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치매환자도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경찰의 중요한 업무로 10여 년 전 읽는 동안 마음이 쓰였던 기억이 난다.최근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 ‘치매’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10.16%(약 75만명)가 치매를 앓고 있어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8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10.16%(약 75만명)가 치매를 앓고 있으며, 2039년에는 200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평균수명도 길어지고 있다고 하니 이제 우리 일상에서 ‘치매’는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치매는 자신과 가족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최근 만 50세 이상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암보다 치매를 더 두려워한다는 결과도 있다.

치매환자는 지능, 학습, 언어 등의 능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길을 찾지 못하고 배회하는 일이 반복된다. 사랑하는 소중한 가족이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갑자기 사라지면 얼마나 가슴 아프고 힘든지를 가까운 곳에서 자주 접하다 보니 그 마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17년부터 ‘치매는 국가가 책임진다’는 슬로건으로 ‘치매국가책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경찰은 매년 증가하는 치매환자 실종(2016년 9916건, 2017년 10311건, 2018년 12124건)을 예방하고 조기발견을 위하여 지자체·광역치매센터 등과 유기적으로 협조하여 안전망을 촘촘히 마련하는 한편 배회감지기 보급, 지문 등 사전등록제, 실종경보 등 여러 시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배회감지기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한 손목형 단말기로, 보호자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대상자의 위치를 실시간 확인하거나 대상자가 사전에 설정한 지역을 벗어나면 보호자에게 알림을 전송하는 기능이 있어 실종사고를 사전에 방지해 준다. 지문 등 사전등록은 치매환자가 길을 잃었을 경우에 대비해 경찰 시스템에 지문, 사진 등 정보를 미리 등록해 놓는 것으로 치매환자 발견 시 신속하게 신원을 확인해서 빠른시간 내 보호자에게 인계할 수 있으며, 교통사고 등 2차사고 위험으로부터도 예방이 가능하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노력 못지않게 치매를 대하는 사회의 열린 인식과 태도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회감지기나 지문 등 치매환자를 위한 제도적 지원은 대부분 보호자의 신청과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치매질환 공개를 기피하게 되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매우 많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치매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사고는 치매에 대한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에펠탑효과(Eiffel Tower effect)라는 말이 있다. 에펠탑이 처음 파리에 들어설 때 사람들이 비난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부담감이 있더라도 주변에서 함께 인식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공감대를 갖게 된다는 심리학적 이론이다.

배회감지기 신청하는 작은 노력이 치매환자를 지키는 시작

지금부터는 우리 모두가 치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더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치매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부모, 가족, 친구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무관심 보다는 치매환자 안전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범사회적으로 다 같이 동참하고 작은 노력이라도 같이 해보기를 제안한다. 실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속적 관심과 국가의 적극적 노력이 함께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소설 속 노모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 치매환자가 있는 가정에는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가까운 경찰관서를 방문하여 어르신의 지문을 등록하고 배회감지기를 신청하는 작은 노력이 치매환자를 지키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