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주목 받는 홍콩의 달러페그제

2019-12-12 12:24:13 게재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통화가치를 미달러에 연동하는 홍콩 달러페그제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반정부 시위가 6개월째 지속되면서다. 당초 범죄인 송환법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는 현재 민주적 자유 확대, 경찰 폭력에 대한 진상조사 요구 등으로 확대됐다. 시위의 지속과 확산으로 홍콩 경제가 심각한 피해를 받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는 정치 위기가 경제 위기로 이어져 홍콩의 외환보유고가 고갈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달러페그제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 사회과학원 선임 연구원과 인민은행 통화정책 자문위원을 지낸 경제학자 위용딩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홍콩통화청(HKMA)은 위기가 올수록 달러페그제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고 반박하고 있다. HKMA 대변인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홍콩의 통화정책 목표는 안정성”이라며 “수많은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달러페그제의 회복탄력성이 입증됐다. 지난 10년 간 대규모 자금 유입과 유출 등 굴곡이 많았지만 별탈 없이 유지돼왔다”고 말했다.

변동환율 시스템을 유지하던 홍콩이 페그제를 도입한 건 1983년이다. 당시 홍콩의 각 상점마다 식료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짓고 있었다. 홍콩달러 가치 급락에 시민과 투자자의 분노가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었다. 중국과 영국의 홍콩 반환 협상에 대한 우려가 겹치면서 이른바 ‘검은 토요일’ 위기가 불거졌다. 그해 9월 24일 홍콩달러 가치가 전시간 저가로 폭락했다. 그해 초만 해도 1달러당 6.5홍콩달러였던 환율이 9.6홍콩달러로 폭등(가치급락)했다. 상점마다 가격표를 홍콩달러에서 미달러로 바꿔 달았다. 홍콩달러는 아예 받지 않았다.

그에 앞선 1년 전 홍콩 항륭은행에서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졌다. 이미 홍콩 전 은행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었다. 결국 금융장관 존 브렘리지가 달러와 홍콩달러 가치를 연동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1983년 10월 17일 달러페그제를 도입했다. 당시 환율은 1달러당 7.8홍콩달러로 정해졌다. 이후 2005년부터 1달러당 7.75~7.85홍콩달러 범위로 바뀌었다.

달러페그제 도입은 시민과 투자자, 기업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또 홍콩 금융시스템은 앞으로도 중국 본토와 거리를 둘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홍콩에서 자본이 유출된다면, 환율은 연동범위의 하단인 7.85홍콩달러로 근접하게 된다. 그러면 HKMA는 은행들이 지급준비금으로 맡겨놓은 홍콩달러를 사들인다. 은행 유동성이 줄어들어 시중금리를 밀어올린다. 외부 자본이 유입되는 유인책이 된다. 반면 자본이 홍콩으로 유입돼 환율이 연동범위 상단인 7.75홍콩달러로 움직인다면, HKMA는 은행에 홍콩달러를 팔고, 이는 은행 유동성을 늘려 시중금리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자본 유입 매력을 떨어뜨린다.

HKMA는 환안정기금으로 4조18880억홍콩달러(5350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기준으로 외환보유고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달러페그제의 또 다른 의미는 HKMA가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에 따라 금리를 올리거나 내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HKMA엔 경제조건의 변화에 대응해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이 사실상 없다.

HKMA는 달러페그제 덕분에 홍콩과 같은 소규모 경제에서 자본이 자유로운 유출입된다고 설명한다. 페그제가 없다면 홍콩이 통화정책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는 것. 홍콩의 금융시스템은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에서 생기는 금리와 환율의 출렁임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달러페그제로 홍콩은 1983년 금융위기를 막았고, 36년이 지난 현재도 안정적 환율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아시아 최고의 국제금융센터라는 지위도 얻었다. 1987년 미 증시 붕괴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3년 사스 바이러스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달러페그제는 방파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실제로 올 6월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이후 현재까지 홍콩 환율이 연동범위 하단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MUFG은행 동아시아 헤드인 클리프 탠은 “달러페그제는 홍콩 금융시스템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며 “달러페그제는 경제적 이유뿐 아니라 심리적 이유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 정부가 반정부 시위에 대한 대응으로 달러와 홍콩달러 연동을 끊는다면 대규모 자본 유출은 불가피하고 또 다른 파생 문제를 만드는 등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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