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를 여는 사람들│④ 김미영 한국1형당뇨환우회 대표

"환자가 원하는 의료정책 만들라"

2020-01-20 11:53:46 게재

당뇨환우 돕다 '의료기 불법수입업자' 고초 … "아파도 편안한 배려문화 절실"

5년 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가운데, 한국사회는 '전환의 시대'를 요구받고 있다. 그간의 관주도, 돈 중심, 공급자 위주의 보건복지제도 환경에서 벗어나 이용자의 인권과 편의성을 높이며 자주적 참여와 민관협력으로 지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갈구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전국 곳곳에서 혁신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사람과 단체들의 경험을 소개하고 나눠 사회발전의 자양분으로 삼고자 한다.<편집자주>

오는 2월 15일 한국1형당뇨환우회는 '새학기 맞이 모임'을 진행을 할 예정이다. 1형당뇨환우는 체내 인슐린 분비 능력을 상실해 외부에서 인슐린을 공급해야 한다. 제 때 공급하지 않거나 너무 많이 공급하게 되면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2019년 12월7일 한국1형당뇨환우회 경기지역모임 기념촬영. 사진 한국1형당뇨환우회 제공


환우회는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새로운 환경에서 아이들이 건강히 생활할 수 있는 여러 기술이나 대응 방법들을 나눌 자리를 마련했다.

김미영 대표. 김규철 기자

1월14일 오후 내일신문 회의실에서 만난 한국1형당뇨환우회 김미영 대표는 1형당뇨환우들이 겪고 있는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특히 아이들의 새학기 진학시기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에 아이들과 부모들의 스트레스가 커진다고 말했다.

2019년 11월 서울지역 1형당뇨환우 중학생이 학교에서 친구를 폭행한 이유로 학교 학폭위에 선 사례가 있다. 그 배경에는 저혈당증상을 방지하기 위해 먹으려는 젤리를 동급생이 뺏아가고 놀리자 하지 마라며 주먹을 휘두르게 됐다. 그런 경우가 여러번 있었는데 참다참다 그 날 폭발한 것이다.

또 2019년 12월 한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가 1형 당뇨를 진단 받고 다시 등원시키기 위해 방문한 부모는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에게 주사를 놓을 수도 없고 부모가 와서도 놓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오지 말라는 소리였다.

2018년 10월 17일에서 21일 서울 강남구 SAC 아트홀에서 한국1형당뇨환우회 주최로 열린 '아주 특별한 선물' 공연 장면 사진 한국1형당뇨환우회 제공


◆진학·취직 과정에서 차별 당해 = 나이가 들어도 1형당뇨환우들의 고충은 멈추지 않는다. 대학생이 되어도 모임에 친구들과 미팅을 하고 술자리에 가게 되면 주변의 시선 때문에 주사를 맞거나 저혈당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혈당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군대를 면제 받게 되면 남성의 경우 취업 과정에서도 그 사실을 '그대로' 말하기가 두렵다. 그대로 말했다가는 경쟁 환경 속에서 취직이 안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자신이 당뇨인 엄마인 경우, 아이들을 먼저 돌보다보면 비용 때문에 자신의 치료를 뒤로 미루는 경향도 있어 건강을 망치기도 한다.

김 대표는 "건강보험공단에 확인된 환우가 2만5000여명 정도 되는데, 환우들이 나는 1형당뇨환자라고 밝혔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똑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떳떳하게 눈치안보고 살 수 있는 배려하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2∼3년 사이 한국의 1형당뇨환우들의 혈당관리환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수입품인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자동주입기 관련 소모품들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월초를 거치면서 대부분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

환우회 회원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그 한 가운데 김 대표의 눈물겨운 활동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19일 한국1형당뇨환우회 김미영 대표가 '2019 대한민국 사회혁신 체인지메이커'상을 받은 후 회원들과 기념촬영. 사진 환국1형당뇨환우회 제공


◆환우들의 결속력, 많은 변화 이끌어 내 = 김 대표는 자신의 아이가 1형당뇨를 앓고 있다. 아이가 자다가도 고혈당, 저혈당증상으로 고통받을 때 밤잠을 설치면서 아이를 돌봐야 했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아이 곁을 떠나지 못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외국에서 혈당을 자동으로 측정하는 기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해외 직구로 구입해 사용하고 나서 아이의 힘겨움도 줄고 대표 자신도 생활의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같은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자 기기를 처음에는 알음알음, 나중에는 환우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줬다.

그런데 2017년 3월 어느 날. 관세청으로부터 출석요구서가 왔다. 심장이 덜컹했다. 3번 조사를 받았는데 다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조사를 3번 받고 검찰 조사도 받았다.

김 대표는 눈물이 쏟아졌다. 아픈 사람들 돕다가 돌아온 게 이거냐는 남편의 질타를 받았다.

활동을 그만 둘까 고심했다. 같은 1형당뇨 환아 부모가 '무허가 의료기기 판매'로 고발을 한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부신백질이영양증(ALD)병을 앓고 있는 자식을 위해 로렌즈오일을 개발한 부모도 있었고, 그런 활동을 반대하는 부모도 있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김대표는 덧붙였다.

하지만 많은 환우회 회원들이 200장, 500장 탄원서를 기관에 내고 조사받는 날에 기관 앞에 나와 "힘내라"고 함께 해줘 감동받았다. 그런 결속이 지금까지 활동하게 된 동력이라고 김대표는 말했다.

그 후 2018년 초 페이스북에 김대표가 "억울하다"는 글을 올려 시민들에게 내용을 확산시켰고 언론의 관심도 받으면서 기관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그해 6월에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으면서 사태는 마무리 됐다.

◆의료데이터 이용 활성화로 건강관리 개선 기대 = 1형당뇨환아들의 고충이 여론을 타면서 그들을 위한 영유아보육법과 학교보건법이 개정됐다. 1형당뇨인들이 사용하는 혈당측정기기 도입과 보험급여 적용도 추진됐다.

김 대표는 "환우들의 고충과 걱정을 덜게 돼 기쁘다"며 "이것은 모두 환우회 회원분들의 결속과 활동의 결과"라고 말했다.

또 김대표는 시민들의 질타를 받았던 "식약처가 많이 변했다"며 이후 식약처 소통협력과를 통해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환자단체와 빠르게 소통하며 잘 대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학교현장에서 좀 더 변화가 있기를 기대했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가 1형당뇨환아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학교로 보냈다고 하는데 학부모들 중에는 그런 안내를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학교 안에서 약간의 배려만 해줘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건강관리에 문제가 생기거나 동급생에게 따돌림이나 놀림을 당하는 일이 많이 줄어 들 것"이라며 교육당국의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

어린이집 등 아동보육기관에 대한 1형당뇨 장려책 마련도 제시했다.

김 대표는 "1형당뇨환우 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아프다는 이유로 사회생활에 차별을 받거나 눈치를 보면서 사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아파도 사회에서 편안하게 보통사람처럼 생활할 수 있는 사회환경을 환우들과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환우회는 조직 내부를 탄탄히 다지고, 환우들의 의료데이터 이용 활성화를 통해 그들의 건강관리를 더 안전하고 과학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한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환우회의 대표활동가이면서 헬스케어전문가로서 환자와 가족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김 대표는 아들도 자신을 지지한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한편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의료기기 컨퍼런스 '메드테크포럼'에 환자단체 대표로 참석해 최근 한국에서 1형 당뇨병 환우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전했다. 12월 19일 한국서부발전 주최,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주관의 '2019 대한민국 사회혁신 체인지메이커'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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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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