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일본주의' 집중 분석

검사가 공소장일본주의 위배해도 막을 방법 없다

2020-02-14 11:30:39 게재

법원도 위반에 관대 … 처벌규정 입법도 쉽지 않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최근 청와대 울산시장 개입 의혹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공소장 전문 비공개 조치에 대해 "공소장일본주의가 실질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그동안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답변하는 추미애│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추 장관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 전문 비공개 조치에 대해 "사실상 간과되어 왔던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공판중심주의, 공소장일본주의가 실질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공소장일본(一本)주의는 공소제기에 있어서 원칙적으로 공소장 하나만을 제출하도록 하고 법원에 예단(선입견)이 생기게 할 수 있는 그 밖의 서류나 물건의 제출을 금지하거나 그 내용 인용을 금지하는 원칙을 말한다. 공소장일본주의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주로 공안사건과 언론에서 주목하는 사건에서, 검찰은 피고인의 혐의와 관계없는 사실까지 공소장에 폭넓게 기재하고 국회 등을 통해 해당 공소장이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사실상 피의사실을 퍼트려 '예단방지'라는 공소장일본주의를 위배해 왔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끊임없이 일었다.

가장 큰 문제는 검사의 공소장일본주의 위배에 대한 제재수단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A판사는 14일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공소사실과 관계없는 내용의 기재(여사기재) 등으로 공소장일본주의를 위배한 검사에 대해 지적하는 정도의 의미뿐"이라고 지적했다. 검사가 공소장일본주의를 위배해도 딱히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법원도 그간 공소장일본주의 위배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취해왔다는 것이 법조계 일각의 지적이다. A판사는 "과거부터 공소장일본주의를 위반한 기소를 법원이 받아준 잘못도 있다"고 설명했다.

◆예단배제를 통한 공정한 재판 출발점 = 공소장일본주의 근거규정은 형사소송규칙 118조 2항이다. 공소장일본주의는 형사소송규칙 제정과 함께 1983년부터 시행돼 오고 있다. 공소장에는 형사소송규칙이 규정한 일정한 서류 이외에 사건에 관해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의 첨부와 인용이 금지된다.

형사소송법 대가인 신동운 교수의 '신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사-피고인의 당사자주의적 소송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단을 가지지 않은 제3의 심판기관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증거조사는 예단이 배제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공소장일본주의는 이를 위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피고사건에 대한 실체심리가 공개된 법정에서 행해질 것을 요구하는 공판중심주의 기본적 전제조건인 것이다. 공소장일본주의 기본취지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받는 피고인에 대해 법관이 가질 수 있는 유죄 예단을 차단하다는 점에 있다.

신속한 재판을 위해서도 공소장일본주의는 필수적이다. 재경 지역 법원 B판사는 "불필요한 부분까지 공소장에 기재해 상당히 심리가 길어질 수 있다"며 "몇 달 만에 끝날 사건을 심리에 오랜 기간을 쏟아 1년을 넘긴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소기각 현실적으로 어려워 = 공소장일본주의에 위배된 공소제기에 대한 유일한 제재는 '공소기각 판결' 뿐이다. 위법한 공소제기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도 없다.

형사소송법상 공소장일본주의에 위반한 공소제기는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해 무효로 법원은 '공소기각의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

하지만 내일신문 취재결과 실제로 공소기각 판결이 선고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A판사는 "보통 (공소기각 판결을 하기보다는) 공소장일본주의를 어긴 기소에 대해 재판부가 '예단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삭제하라'고 설득하고 검사가 삭제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예단을 줄 수 있는 기재가 삭제돼도 해당 사건 판사는 이미 수정되기 전 공소장을 보고 선입관을 가진 상태라 예단방지라는 공소장일본주의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이 A판사 설명이다.

그는 "만약에 판사가 피고인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게 될 경우 공소사실을 가급적 인용해서 유죄를 인정하기 때문에 판결문에 그 말(예단을 형성하는 공소장 내용)이 들어가지 않는 정도의 의미 뿐"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공소장일본주의를 위배한 기소로 재판이 진행돼도 사후에 바로잡기도 쉽지 않다.

대법원은 2009도7436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피고인 측으로부터 아무런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고 법원 역시 범죄사실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판단해 그대로 공판절차를 진행한 결과 증거조사절차가 마무리돼 법관 심증형성이 이뤄진 단계에서는 더 이상 공소장일본주의 위배를 주장해 이미 진행된 소송절차 효력을 다툴수 없다"고 판단했다.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는 14일 "공소사실에 불필요한 사실을 너무 많이 집어 넣어 일부러 피고인을 망신을 주고 명예훼손을 해도 공소기각 외에는 현실적으로 제재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만약, 법원이 공소기각 판결을 내리면 검사는 공소장을 고쳐 다시 기소하면 그만이다. 이 경우 다른 재판부에서 사건을 진행하게 된다. 사실상 공소장일본주의 위배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

◆전과와 '여사'기재가 문제 = 실무에서 공소장일본주의와 관련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전과기재와 '여사'기재다.

'신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예단배제를 위해 전과사실은 원칙적으로 기재가 금지된다.

A판사는 "전과기재는 실질적으로 피고인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기재해 놓는 것"이라며 "집행유예 결격 사유 등 법률상 판단 전제가 되는 전과는 기재해도 되지만, 사기범을 기소하면서 피고인과 관련성 있다는 이유로 폭행이나 횡령에 대한 전과를 공소장에 쓰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피고인에 대한 나쁜 선입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여사'기재는 공소사실 특정이나 공소내용과는 관계없는 피고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공소장에 쓰는 것이다. A판사는 "범행 동기를 기재하는 것도 통상 허용되지만, 개별적인 증거로 판사에게 제시할 것을 공소장에 쓰면 공소장일본주의에 위배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검찰 수사보고서 내용을 공소장에 기재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보고서는 재판에서 항상 증거능력이 문제되는데 수사보고서 내용 그대로를 공소장에 넣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A판사 설명이다.

공소장에 'A가 B에게 언제 어디서 뇌물을 주었다'고 쓰면 그만인데, 수사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해 'A가 B에게 특정은행 계좌를 통해 송금했다'고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공소장일본주의 관련 규정 명확히 해야 = 현행법상 공소장일본주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형사소송규칙 한 조항 뿐이다.

이에 공소장일본주의가 실질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 해당 법령을 명확히 하고, 처벌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B판사는 "판사마다 공소장일본주의 위배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며 "해당 법령을 명확하게 고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의사실공표죄'와는 달리 공소장일본주의 위배에 대한 처벌규정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 일각의 의견이다. 피의사실공표는 기소 전에 피의사실을 공표했는지에 대한 단순한 사실문제지만, 공소장일본주의 위배 문제는 예단을 심어줬는지에 대한 가치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처벌규정을 만들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 A판사 설명이다.

안성열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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