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착취물 삭제 안하는 해외업체 처벌방안이 없다
정부 역외규정 도입만 밝히고 구체성 없어
시민단체, 유해업체로 등록해 접근 막아야
◆삭제요청 대부분 외면 = 청소년과 여성단체는 해외 인터넷사업자에 대한 협력과 제재 없이는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최근 발생한 성 착취물 사건 모두 해외 메신저와 플랫폼을 악용했다.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n번방 사건도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을 활용했다.
범죄자들은 텔레그램이 수사 선상에 오르자 재빠르게 디스코드로 이동했다. 인터넷 카페처럼 운영되는 디스코드는 게임정보 공유게시판 등으로 운영돼 성 착취물 소지자조차 추정하기 힘들다. 최근에는 텔레그램보다 보안이 더 뛰어난 해외 온라인 메신저 위커(Wickr)를 이용한 성 착취물 판매자가 처음으로 검거됐다. 위커는 가입 때 실명인증을 않기 때문에 추적이 더욱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성 착취 범죄자들이 해외 인터넷 메신저나 플랫폼 등을 활용하기 때문에 이들 업체의 협조와 제재가 동시에 필요한 상황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따르면 해외 메신저 등에서 유통되는 디지털 성 범죄물이 2016년 8186건, 2017년 1만257건, 2018년 2만5326건, 2019년 3만6005건으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 인터넷 메신저 업체 등의 협조는 아직 미흡하다. 또 성 착취물 삭제를 외면해도 국내법으로 처벌이 불가능하다. 경찰이 지난 2월 텔레그램 본사의 협조를 얻어 n번방 가입자 계정정보 확보를 시도했으나 아직 본사 위치조차도 파악하지 못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박광온 의원(민주당)이 지난달 25일 방심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2월까지 방심위가 심의한 해외 사업자 디지털 성 범죄물이 8만5818건에 이른다. 이에 따라 트위터, 구글,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에 삭제를 요청했지만 32%인 2만7159건만 삭제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정부도 정보통신망법 상 불법 정보 유통금지 의무를 해외 인터넷사업자에게 적용하도록 '역외적용 규정'을 도입할 예정이지만 실효성 있는 법안이 나올지 의문이다. 역외적용은 국내법으로 외국에 있는 회사를 제재하는 규정이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해외 인터넷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미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이 부분은 계속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청소년과 여성단체는 해외 인터넷사업자가 성 착취물 삭제 등을 거부할 경우 △유해 매체로 등록해 휴대전화나 컴퓨터 등에서 접근 차단 △휴대전화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에서 퇴출 등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청소년 성폭력 상담소를 운영하는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역외규정에 반영할 해외 인터넷사업자 의무와 제재방안을 시민단체와 함께 논의하고 있다"며 국회와 업계 등이 참여하는 간담회를 제안했다.
◆국제공조방안 언급 없어 = 정부의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에는 국제공조 강화방안이 빠져 있다.
국제공조는 크게 해외 인터넷사업자와 각국 수사기관을 통해 이뤄진다.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 중인 경찰은 인터폴 및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 외국 법집행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또 올해 '글로벌 IT 기업 공조전담팀'을 신설해 해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메신저 업체 등에서 자료를 받아 수사에 활용하고 있다. 미국과는 국제공조가 강한 편이나 유럽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편이다.
시민단체는 국제공조 강화 없이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이 어렵다며 유럽 사이버범죄협약 가입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유럽 사이버범죄협약은 2004년 공식 발효됐다. 현재 영국, 미국, 일본 등 회원국과 비회원국을 포함해 모두 63개국이 가입했다.
회원국은 실체적 금지규정에 따라 △저장된 컴퓨터 자료의 신속한 보존 △저장된 컴퓨터 자료 공조 △저장된 자료의 초국경적 접속 △전송 자료의 실시간 수집 공조 △콘텐츠 자료 감청 등을 공유한다. 한국은 영장이 없이 신속한 자료 보존과 통신데이터 실시간 수집 등이 '통신비밀보호법' 등과 상충된다며 15년째 가입을 미뤘고, 이번 근절대책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현숙 대표는 "유럽 사이버범죄협약에 가입하면 통일적인 법체계 하에서 공조가 이뤄지기 때문에 범인 검거와 증거확보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며 가입을 촉구했다. 청소년과 여성단체는 정부 차원에서 국제공조가 강화될 경우 각국 시민단체와 연대해 해외 인터넷사업자의 의무와 처벌규정 도입을 압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아동 청소년 성 착취가 전 세계적 문제"라면서 "각국 민간단체와 협력해 해외 인터넷사업자 의무와 처벌규정 도입을 요구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