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후진국 탈출,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②

'재래식 재해' 소규모 건설현장 추락사고부터 줄여야

2020-06-26 10:55:43 게재

'산재사망 절반 감축' 목표 달성의 '열쇠'

정부, 안전설비 지원예산 확대하고 기획점검 강화

#1. 24살 김태규씨는 지난해 4월 10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한 아파트형공장 신축공사 현장에서 추락사고로 숨졌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지 사흘째 되던 날 출입문이 열린 5층 높이의 화물용 승강기에서 떨어져 숨졌다. 5층의 건축 폐기물을 1층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던 그가 타고 있던 승강기는 사고 당시 문이 열려 있었다. 안전망, 안전대 등 추락방지 시설도 없었다. 필수적인 안전교육도 없었고 안전화·안전모·안전벨트 등 최소한의 보호구도 지급하지 않았다. 승강기 제조업자는 승강기 설치 검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소장의 요구로 승강기 불법 운행을 방치했다.

#2. 올해 4월 수도권 한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지붕패널 설치작업을 하던 권 모씨가 발을 헛디뎌 9미터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유가족들은 숨진 권씨가 공사현장의 부실한 안전 환경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공사현장에는 추락사고를 방지하는 안전난간이나 방호망이 없었다. 공중에서 몸을 지탱해주는 안전대도 없어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갖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권씨 동료 노동자들은 추락사고가 일어나기 전 여러 차례 시공사 측에 방호망 설치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구의역 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 주관으로 지난달 28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열린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108배 및 천도재'에서 산재노동자들의 이름 위에 부착된 추모 리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추락사고는 이른바 '재래식 재해'로 불린다. 안전시설만 제대로 갖추면 예방할 수 있는 사고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의 경우 사망자의 60% 정도가 인재에 가까운 추락사고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등에 따르면 건설현장은 전체 산업에서 추락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 2019년 한 해 동안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855명이다. 이중 건설분야에서 절반이 넘는 428명(50.0%)이 사망했다. 특히 추락사고로 사망한 노동자가 건설업 전체 사망사고의 61.9%(265명)에 달했다.

비교대상 기간을 확대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체 산업현장의 최근 3년간(2017~2019년) 사고사망자는 2790명이다. 이 가운데 1419명(50.9%)이 건설현장에서 사망했다. 특히 건설현장 사망자의 831명(58.6%)은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는 건설현장 추락사고를 줄이는 것이 '산재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문재인정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을 보여준다.

건설현장에서 추락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업종 특성도 한몫을 한다. 생산형태가 일정 공간에 구조물을 축조하는 것이라 다른 산업보다 '떨어짐' 위험이 높은데 반해 체계적인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전문가들은 또 일용 노동자가 대부분인 건설노동자의 안전의식 역시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지적한다.

◆'수익성' 욕심이 사고 불러 = 전문가들은 건설현장 추락사고를 줄이는 방안으로 안전한 일체형 작업발판(시스템비계)에 주목한다. 제대로 설치해 운영하는 시스템비계의 경우 사고가 거의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단시간 내에 사망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의미다.

비계란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이다. 비계는 재료운반이나 작업자의 통로 및 작업을 위한 발판 역할을 한다. 과거에는 통나무를 조립해 사용했지만 지금은 주로 강관을 재료로 쓴다. 강관을 사용하는 비계는 일반과 시스템으로 나뉜다. 일반 비계는 현장에서 강관을 바둑판 모양으로 조립하는 방식이다. 일반 강관 비계도 규격에 맞는 재료를 쓰고 발판을 촘촘하게 설치하면 어느 정도의 안전성은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소규모 공사현장에서 공사비 절감을 위해 발판을 띄엄띄엄 설치하거나 볼트와 너트를 꽉 조이지 않는 경우가 있어 추락사고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한 것이 시스템비계다. 시스템비계는 발판과 통로, 안전난간을 공장에서 사전 제작해 일괄적으로 설치한다. 작업자들도 안전대를 착용하고 작업할 수 있어 발판이 떨어지더라도 추락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비계만 제대로 설치해도 추락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일부 사업주나 현장소장들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안전발판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소규모 건설현장의 작업 장면. 사진 안전보건공단


◆소규모 현장 지원이 핵심 = 전문가들은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지원을 문제해결의 열쇠로 보고 있다. 시스템비계가 안전하다는 것은 업계 종사자 누구나 알지만 일반 강관 비계보다 단가가 높아 소규모 업체들이 사용을 꺼리기 때문이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건설업 사망자 2355명 중 14.7%(345명)가 비계 및 작업발판 관련 작업 중 사고를 당했다. 공사규모별로는 1억 미만이 499명(21.2%), 1~3억원 미만이 295명(12.5%), 3~10억원 미만 343명(14.6%), 10~20억원 미만 167명(7.1%) 등 전체 사망자 중 1304명(55.4%)이 20억원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사고를 당했다. 여기에 20~50억원 미만 사업장의 255명(10.8%)을 합하면 50억원 미만 현장에서 전체 사망자의 66.2%가 사고를 당했다.

이런 통계들은 건설현장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안전한 작업발판과 안전난간 설치가 필수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수도권의 소규모 빌라 건설현장 소장 A씨는 "시스템 비계를 설치한 현장에서 일해 본 노동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고 안전관리를 하는 현장소장 입장에서도 불안감이 적어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 좋다"면서 "문제는 기존 제품들에 비해 3배에 달하는 비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현장도 정부 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설치할 수 있었다"면서 "솔직히 지원을 받지 못했다면 설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B씨는 "시스템비계에서 작업을 해본 사람은 선택할 수 있다면 강관 비계를 설치한 곳에 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여러 차례 강한 태풍이 왔지만 피해도 없었고 흔들림이 적어 작업 중단 시간도 짧았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예산 대폭 증액 =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도 소규모 사업장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50억원 미만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추락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한 시스템비계 임차비용과 안전망 구입비용을 지원한다. 예산은 554억원으로 지난해 321억원보다 72.6%대폭 증액했다. 시스템비계 임차비용의 경우 설치면적별로 2000만원까지 지원한다. 정부는 지원 대상현장을 전년대비 2900개 정도 늘어난 6900개소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지원한 사업장 재해율은 2.74%였다. 반면 지원을 받지 않은 사업장의 경우 재해율이 3.05%로 지원받은 사업장 보다 0.31%p 높았다. 지원대상도 지금까지 원도급자인 종합건설업체만 지원했던 것을 협력업체인 전문건설업체까지 확대했다. 다만 협력업체의 경우 철근·콘크리트 공사업, 비계·구조물 해체공사업을 동시에 등록한 업체가 대상이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소규모 건설현장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력이 부족해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며 "추락 사고사망을 예방하는데 실질적 도움이 되는 비용지원으로 현장의 안전성을 확보하여 노동자의 소중한 생명이 지켜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패트롤 방식 기획점검도 병행 = 안전보건공단은 건설현장을 불시에 찾아가 지도하는 패트롤(순찰) 방식의 특별기획점검도 연중 실시한다. 지난해 하반기 건설현장 특별기획점검 결과, 전년보다 건설업 사고 사망자를 57명 줄이는 데 기여했다는 게 공단의 판단이다. 이에 올해는 연중 진행할 방침이다. 특별기획점검은 건설현장 추락사고 사망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공사비 120억 미만의 중소규모 건설현장이 대상이다.

패트롤 점검의 주요 대상은 작업발판, 안전난간, 개구부 덮개의 설치 상태와 안전대와 안전모 착용 여부 등이다. 골조나 철골, 미장 등 고소작업에 따른 안전작업 기준과 절차도 확인한다. 추락 위험요인이 발견되면, 즉시 개선하도록 현장조치를 실시한다. 즉시 개선이 어려우면 현장 담당자가 일주일 이내 개선 결과를 확인받도록 했다. 점검 거부나 개선 조치 미이행 사업장 등 불량 사업장은 고용노동부 감독과 연계해 개선과 점검 실효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안전보건공단 박두용 이사장은 "특별기획점검은 건설현장에서 반드시 개선해야 하는 위험요인을 알려주고, 개선하도록 함으로써 불필요한 노동력 손실을 막고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보다 안전한 선진 건설현장을 만들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업체·노동자 안전의식 강화 필요 = 정부 지원과 함께 중소규모 건설사와 현장노동자들의 안전의식도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5월 고용노동부가 추락 사망사고 위험이 높은 중소 건설현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획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감독 대상 1308곳 중 953곳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부는 작업발판 끝부분에 안전난간을 설치하지 않은 것을 포함해 추락사고 위험을 방치한 920곳 현장 책임자를 사법처리했다. 안전난간이나 작업발판을 설치하지 않아 급박한 사고 위험이 있는 현장 124곳에는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또 노동자에게 안전보건교육을 하지 않거나 건강진단을 실시하지 않은 52곳에 과태료 7868만원을 부과했다. 사업주가 안전보호 장비를 지급했는데도 착용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내야 할 과태료(215만원)도 포함돼 있다.

고용노동부가 장마철 대형사고 예방을 위해 6월 8일부터 7월 17일까지 전국 800여 곳의 건설현장을 대상으로 산업안전 감독을 한다고 7일 밝혔다. 이번 감독은 지속적인 강우로 인한 지반 등의 붕괴위험뿐만 아니라 폭염에 따른 열사병, 하수관 등에서의 질식사고, 코로나19 감염병에 대한 예방조치 등에 대해서도 중점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또한 기습 폭우 및 화재 등 비상상황 발생을 대비한 경보체계 및 대피방법 등 훈련, 화재위험 작업시 소화기구 비치와 감시자 배치, 추락위험 장소에 안전난간, 작업발판 등 추락방지 안전시설도 제대로 갖추고 작업하는지 들여다볼 방침이다.

경기도 부천시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만난 D씨는 " 안전대와 안전모를 착용하면 안전하다는 것을 모르는 노동자는 없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격심한 경쟁으로 계약 공사비가 많이 줄어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공사기간 단축을 통해 줄인 인건비로 수익을 맞추다보니 작업속도에 영향을 주는 안전시설과 장비를 외면한다"고 말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정부와 공단은 지난해부터 추락사망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건설현장을 집중 점검해 현장의 위험요인을 제거하고 안전실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며 "하지만 노동자 스스로 안전은 권리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으면 이런 노력은 성과로 이어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현장 추락 사망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책임과 권한이 있는 사업주가 우선적으로 안전한 작업발판과 안전난간 설치에 나서야 한다"며 "노동자도 안전대와 안전모를 반드시 착용하는 등 안전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 후진국 탈출,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연재기사]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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