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율운항선박, 성공적 항해의 닻을 올리다

2020-06-29 12:21:38 게재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운송단가 인하를 고민하던 미국의 운송회사 사장 말콤 맥린(Malcom McLean)은 1956년 제2차세계대전 당시 사용하던 유조선을 개조해 아이디얼X(Ideal-X)호라는 선박을 만들고, 당시로서는 특이한 모양의 금속제 화물용기를 실어 뉴어크에서 휴스톤까지 항해했다.

나중에 최초의 컨테이너선으로 불리게 된 이 선박은 해상운송 체계의 혁신적 변화를 선도한다. 톤당 선적비용을 5.86달러에서 0.16달러로 극적으로 떨어뜨렸고, 이를 바탕으로 정기적으로 화물을 보내는 시장을 만들었다. 이런 정기선 시장은 해상운송의 폭발적 성장을 촉발시키며 세계 해운시장의 틀을 완전히 바꾸었다.

2024년 국산 자율운항선박 선보일 예정

최근 세계는 또 하나의 해상운송 혁명을 목도하고 있다. 선원 없이 스스로 항해할 수 있는 자율운항선박(MASS)이 바로 그것이다. 자율운항선박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를 통해 최적항로를 스스로 설정해 운항시간과 연료비를 줄이는 것은 물론 스마트항만과의 지능적 연계를 통해 이·접안, 예·도선 등 화물처리절차 전반을 혁신한다. 또한 해양사고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적과실도 획기적으로 줄일 것이다. 이를 통해 선박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크게 개선하게 되며, 이는 다시 항만 자동화와 맞물려 해운물류산업의 패러다임을 화물 중심에서 디지털 기술 중심으로 전환하는 거대한 지각변동의 핵심 원동력이 될 것이다.

각국은 이미 자율운항선박 기술 선점을 위한 소리없는 전쟁에 나섰다. 영국에서는 롤스로이스가 2017년에 세계 최초로 선박의 원격조정 시범운항에 성공했고, 원격조정조차 필요없는 완전 무인 자율운항선박을 2030년까지 개발하겠다고 천명했다. 노르웨이 일본 등도 각종 자율운항선박 개발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도 작년 11월 ‘해양수산 스마트화 추진 전략’ 로드맵을 마련했고, 올해 6월 17일 산업부와 함께 ‘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 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정부는 2025년까지 총 1603억원을 투입해 지능형항로 의사결정을 가진 자율운항시스템을 개발하고, 2024년에는 ‘울산 자율운항선박 시운전센터’에서 우리 기술로 만든 최초의 자율운항선박을 선보일 예정이다.

법·제도도 선제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자율운항선박 규제혁파 로드맵’을 통해 자율운항선박의 정의, 자율운항인력, 사이버 보안 등 지금까지 없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하고 이런 개념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기존 해사 관계 범령들과 충돌하지 않도록 만드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국제해사기구(IMO) 등 관련 국제기구의 통일된 기준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제도 마련은 우리에게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게 만드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최근 정부는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생태계 조성과 원격·비대면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디지털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AI 등 디지털 핵심기술이 집약된 자율운항선박 개발은 디지털 뉴딜의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

글로벌 해양강국 도약 계기

해운물류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도하기 위한 ‘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 사업’이 이제 막 닻을 올리고 순항을 시작했다. 4차산업혁명이 이끄는 변화 속에서 자율운항선박의 등장을 통해 우리나라가 글로벌 해양강국으로 한걸음 더 도약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