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vs 고용감소 … 선택기로에 섰다

2020-07-08 10:55:14 게재

중소기업·소상공인 "인상하면 인력 줄일 수밖에"

경영악화·자금사정은 금융위기 이후 최악 상황

2021년 최저임금 논의가 한창이다. 코로나19 사태를 인식하면서도 노사 입장차는 분명하다.

지난 1일 근로자위원(노동계)와 사용자위원(경영계)은 최저임금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에서 각각 1만원안(16.4% 인상)과 8410원안(2.1% 삭감)을 최초 제시했다. 금액 차이는 1590원이다.

이날 회의에서 위원장는 노·사 모두에게 1차 수정안을 요구했다. 경영계는 삭감안을 그대로 낼 가능성이 높다.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업계는 최저임금 인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목표 하한선은 동결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며 정부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 선거공약인 '최저임금 1만원'을 거론하며 협상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다.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15개 중소기업 단체는 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2021년 적용 최저임금에 대한 중소기업계 입장'을 발표했다. 앞줄 왼쪽부터 강승구 중소기업융합중앙회 회장, 김영윤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정윤숙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사진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지금까지 노사 합의안이 만들어진 적이 없다. 결국 최저임금 결정은 공익위원 손에 달린 셈이다. 최저임금위는 7월 중순까지는 최저임금을 정해야 한다. 매년 8월 5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지원금으로 버티고 있어 = 최저임금 논의는 대부분 경영계에 불리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낮추려는 모습은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을 키웠다. 이번 최저임금 논의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와 소상공인업계 합류는 경영계에 큰 힘이 됐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등 15개 중소기업 단체는 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했다. 단체들은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내년 최저임금은 최소한 동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중소기업계는 지금도 각종 대출과 정부지원금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며 "근로자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계와 정부 협조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7일 "현재 최저임금도 소상공인들이 감내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최저임금 인하로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희망과 여력을 주어야 할 때"라고 호소했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도 "자영업시장이 붕괴 위기에 내몰려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자를 더욱 위축시켜 일자리 축소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부분 자영업자들이 자신과 가족 종사자로 일을 감당하며 근근히 버티고 있는 '생계형 업주'인 경우가 많아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제조업 가동률 역대 최저 =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들의 호소는 정치적 쇼가 아니다. 각종 통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중소기업 경영상황은 매우 악화됐다.

대구 소재 제조업체 A사 대표는 "대구지역은 가동률이 30%가 안 되고 부산은 25%도 안 된다"며 "지금도 인건비는 정부지원으로 버티고 있고, 4개월째 매출이 계획의 10%도 미치지 못했다"고 전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5월 조사한 중소기업 고용애로 실태조사에서 전년보다 올해 경영상황이 악화됐다는 응답이 76.7%였다. 중소기업 수출도 4월 -13.7%, 5월 -22.7%로 전년 같은기간보다 크게 하락했다. 중소제조업 가동률은 금융위기 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2020년 1월 70.6%에서 5월 66.2%로 추락했다.

중소기업 구조는 더 심각하다. 대기업이 전체 영업이익의 64.1% 차지했다. 반면 99%의 중소기업은 전체 영업이익의 22%에 불과했다.

중소제조업 자금사정(5월 자금사정실적 SBHI 60.3)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재차 갱신했다. 중소기업 절반가량이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자보상배율 100% 미만 중소기업 비중이 2017년 44.1%에서 2019년 48.0%로 상승했다.

중소기업 대출은 역대 최대폭으로 증가추세다. 중소기업 1분기 대출액은 총 51조4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이는 2008년 1분기 이후 역대 최대 증가폭이다. 이중 73.3%(37조7000억원)가 인건비 등 운전자금이다.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49배 늘어 = 경제위기로 인한 고용충격이 현실화되고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고용유지지원금과 일자리안정자금 등 정부지원으로 고용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 신청건수는 6월 30일 기준으로 사업장은 약 7만4000개, 근로자는 약 164만명이다. 이는 작년(1500개사)보다 49배 늘어난 수치다. 고용안정지원금의 수혜근로자 78.1%는 중소기업 근로자다.

중소기업은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감원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 44%는 작년말 대비 종업원 수가 이미 줄었다. 45%는 9개월 이내 감원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은 일자리를 지키려면 최저임금 동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지난달 30일 중기중앙회에서 발표한 '2021년 최저임금 관련 중소기업 근로자 의견조사'에서 83.4%가 가장 시급한 노동정책으로 '고용유지'를 꼽았다. 근로자들 절반 이상(56.7%)은 최저임금은 최소한 동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정책본부장은 "고통분담을 통해서라도 기업은 일자리를 유지하고 근로자는 일자리를 지켜야겠다는 간절한 의지의 표출"이라고 분석했다.

소상공인단체 관계자는 "암울한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소상공인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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