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차, 테슬라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

2020-07-22 11:42:17 게재

슈피겔 "독·유럽서 전기차 수요 폭증하지만, 독일차 과실 따먹을 준비 안 돼 있어"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21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 아우디 최고경영자로 내정된 마르쿠스 듀스만은 '테슬라가 독일에 전기차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전해 듣고 박장대소했다. 테슬라가 무모한 배짱을 부린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처음엔 주변의 누구 하나도 테슬라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러다 곤혹스러워졌고 나중에는 그들의 능력에 경악했다"고 말했다.

테슬라 모델3는 유럽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전기차 중 하나다. 독일 기술력보다 훨씬 앞서 있다. 최근 테슬라보다 많이 팔린 차는 르노의 소형 전기차 '조에'(Zoe)뿐이다. 테슬라는 충전소에서도 군계일학이다. 유럽 24개국 531곳의 충전소에 5000대에 육박하는 초고속 충전기 '슈퍼차저'를 세웠다. 반면 BMW와 다임러, 폭스바겐, 포드가 컨소시엄을 이뤄 세운 충전기 '아이오니티'는 현재까지 258곳 1160대에 불과하다.

독일은 따라잡을 수 없다

독일 정부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최근 9000유로(약 1230만원)로 늘었다. 역설적으로 이는 독일 차업계에 더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수요가 크게 늘어났지만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자동차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진 6월에만 8000대 이상의 전기자동차가 팔렸다.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늘었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보조금 지급에 따른 전기차 수요 증가를 경험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한 주차장에 설치된 테슬라의 급속충전기 '슈퍼차저'.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완성차 업계는 전기차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신규 전기차 대부분은 6~18개월 뒤에나 출시 가능하다. 게다가 현존 생산라인에 제조용량을 추가하는 능력은 하룻밤 새 달성될 수 없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IG금속연맹 대표이자 다임러 감사회 감사인 로만 지트젤스베르거는 "완성차 업체들은 특히 배터리셀과 관련해 병목현상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기차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차를 받으려면 1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일부 모델의 경우 신규 주문을 아예 받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BMW와 다임러 폭스바겐의 숙제는 산더미다. 전기차 생산을 늘려야 하고 충전 네트워크 격차를 따라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일이 전기자동차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수십억유로 자금은 헛돈이 돼버린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듀스만은 지난 4월 아우디 최고경영자에 취임했다. 주변의 축하인사를 즐길 틈도 없이 당면과제를 처리하느라 바빴다. 그는 아우디를 혁신하는 임무를 맡았을 뿐 아니라 모회사 폭스바겐의 실적을 견인하는 역할도 부여 받았다. 또 폭스바겐의 연구개발 수장이기도 하다. 그는 아우디와 폭스바겐을 테슬라와 동급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프로젝트 이름은 '아르테미스'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냥의 여신이다.

이를 위해 폭스바겐 그룹 전반에서 똘똘한 전문가를 가려 뽑아 독립적인 팀을 만들었다. 듀스만은 "팀의 목표는 전기차 신규 모델의 개발을 서두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맡게 된 건 예전의 경험 덕분이다. BMW 전직 CEO였던 그는 그 유명한 '프로젝트i'를 공동으로 이끈 바 있다. 이후 자회사로 분사해 전기차를 개발했다. 덕분에 BMW는 잠시나마 전기차 부문에서 세계적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i3과 i8 모델은 모기업에 심각한 경영 손실을 안겼다. BMW는 기가 꺾였다. BMW의 차세대 전기차는 내년까지는 시장에 나오지 않을 전망이다. 프로젝트i는 BMW 그룹에 다시 통합됐고 사실상 사라졌다.

그 실패를 극복할지 여부는 아우디에 달린 문제다. 듀스만은 "우리는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기술을 내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폭스바겐 그룹의 청사진대로라면 2024년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의 전기차가 세상에 나온다.

충전 인프라의 부족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폭스바겐 본사에선 '새로운 모델이 아무리 혁신적이라 해도 대중의 인기를 끌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유럽의 잠재적 고객들이 전기차를 충전할 기반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폭스바겐 노동자협의체 위원장인 베른트 오스텔로는 최근 투자자를 대상으로 "충전 인프라는 거대한 도전과제"라며 "특히 유럽 남부와 동부가 크게 부족하다. 이곳에서 전기차 시장을 개척하려면 가야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오스텔로에 따르면 충전 인프라가 갖춰진 스칸디나비아(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나 네덜란드에서만 전기차 시장이 발달한다면, 유럽연합이 목표로 한 이산화탄소 배출 규정은 달성되기 어렵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서도 유럽 전역에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아르테미스의 역할모델은 폭스바겐 자회사인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Electrify America)다. 이 회사는 미국에서 전기차 충전기 수천대를 설치했다. 충전 인프라 확충에 수십억달러가 소요됐다. 폭스바겐의 디젤차 조작 파문과 관련, 미 당국과 합의한 해결책 중 하나였지만 세계 2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충전 인프라를 만들면서 장래에 폭스바겐 역시 전략적 이득을 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처럼 유럽에 자체적인 충전 네트워크를 만들게 되면 폭스바겐으로선 향후 전기차를 판매하는 주요 포인트로 삼을 수 있다.

아르테미스 팀의 계획은 우선 아우디 고객들이 충전 인프라를 독점적으로 이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뒤 차차 계열사 차종인 포르쉐 고객들도 해당 충전소를 이용하게 할 계획이다. 폭스바겐의 다른 브랜드 차나 경쟁사 차들도 충전소를 이용할 수 있는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현재로선 테슬라처럼 폐쇄적인 충전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1차 목표다. 아우디의 프리미엄 고객들은 기다릴 필요 없이 사전 예약으로 충전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다.

아시아 거인들을 맞닥뜨리다

자동차 회사들이 충전 인프라를 각자 홀로 설치하려 한다면, 충전소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다임러 그룹 리서치를 맡으면서 메르세데스 벤츠 COO이기도 한 마르쿠스 쉐퍼는 "자동차 회사들과 전력기업, 정치인들 간에 조화로운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정부가 유럽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으니 유럽 전역에 충전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도록 청원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며 "공동 결제시스템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쉐퍼는 "그보다 먼저 전기차 제조사들은 배터리기술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 충전을 자주 할 필요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세데스는 중기 목표로 한 번 충전에 700킬로미터를 달리고 충전시간도 약 15분으로 줄이는 기술을 내다보고 있다. 그는 "전기차가 지금처럼 30분에서 1시간 동안 충전소를 차지하지만 않는다면, 주유소 점주들은 전기차 충전 사업에서 수익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들이 알아서 투자해 충전 인프라를 갖추려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늘리는 기술은 거의 전적으로 동북 아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전기차의 심장은 배터리와 그와 관련된 소프트웨어다. 중국 CATL과 일본 파나소닉, 한국 LG화학이 주도하고 있다. 독일 보쉬나 콘티넨탈 등의 공급사는 자체적인 배터리셀을 생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시아 기업들은 배터리 시장에서 한참을 앞서 있다.

하지만 독일 완성차 기업들도 앉아서 보고만 있는 건 아니다. 쉐퍼는 "다임러는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에서 배터리 공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임러는 2015년 배터리 대량생산을 포기했다. 대신 이달 초 중국 배터리 제조사 '패러시스'의 지분을 인수했다. 독일 동부 비터펠트에 배터리셀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패러시스가 배터리셀 제조사로, 다임러는 주요 고객이 된다. 비슷한 파트너십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이는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셀의 장기적 공급을 확보하는 방법이자 미래 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 방법이다. 다임러는 쉐퍼를 패러시스 감사회 대표로 보낼 계획이다.

폴스타 등장하다

이런 종류의 협력은 기술 변화가 자동차 산업계의 힘의 균형을 어떻게 바꿔놓는지를 보여준다. 콘티넨탈의 전장부품 계열사인 비테스코 테크놀로지스의 대표 안드레아스 볼프는 "지렛대는 이제 전기차 쪽으로 기울었다"며 "내연기관 엔진의 부활은 더 이상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플레이어가 자동차 시장을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는 아시아의 전기차 제조사와 서구 경쟁자 간의 격차를 알아보기 위해 가장 많이 팔린 중국 전기자동차 10개 모델을 분해해 지난달 그 결과를 발표했다. 중국 전기차의 가격 대비 주행거리가 국제 경쟁자들보다 평균 2배는 좋았다. 맥킨지는 "중국의 많은 전기차 제조사들은 현재 여전히 손실을 낸다. 하지만 생산물량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즉시 이익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서구 제조사들이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에 참여하려면 급히 서둘러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서구 기업으로부터 노하우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던 건 대개 중국 기업들이었다. 전기차 부문에서는 그 반대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은 독일 기업과 달리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유럽 시장을 공략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중국 지리그룹은 다임러 지분 10%를 획득했다. CEO 리 슈푸는 지리자동차를 글로벌 자동차 제국으로 만들길 원한다. 유럽 전기차 시장 공략의 핵심 역할은 지리자동차의 자회사인 스웨덴 볼보가 맡고 있다. 볼보는 2017년 전 모델을 전기차로 출시하겠다고 공언했다. 볼보는 지리의 도움을 받아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테슬라에 대항마로 발돋움하려고 노력중이다. 공격의 선봉은 '폴스타'이다.

달리는 컴퓨터

폴스타 CEO는 폭스바겐 전직 설계자인 토마스 잉엔라트다. 그는 독일 자동차 CEO들이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 제조사들을 비웃던 때를 회상했다. 당시 테슬라는 시장에 혁명을 몰고 올 두 개의 자동차를 개발했다. 모델S와 모델3이다. 잉엔라트는 "최고라는 독일의 자동차 기업들이 신흥 기업에게 2대 0으로 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때 독일 차 업계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잉엔라트 역시 독일 차업계에 한방 먹여주려고 한다. 첫 번째 모델인 폴스타1은 수집가들의 아이템이라고 보는 게 적당했다. 1년에 500대 생산에 그쳤다.

반면 이달 선보인 폴스타2는 수만명의 고객을 노리고 있다. 폴스타 생산은 중국에서 이뤄진다. 전 세계 1위 전기차 시장인 중국은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중국 정부는 최근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확대했다. 오랜 기간 저가로 전기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다. 또 중국에선 충전 걱정이 없다. 나라 전역에 광대한 충전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이미 성숙한 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신규 진입자들도 더 이상 자신의 대리점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없어졌다. 테슬라가 이를 입증했다. 폴스타는 주로 온라인으로 전기차를 판매한다. 독일 7대 도시에 전시장을 열 계획이다. 기타 지역에선 볼보 대리점을 활용할 계획이다.

폴스타가 독일 전기자동차와 구별되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폭스바겐과 다임러 BMW는 각자의 IT 운영시스템을 개발중이다. 하지만 폴스타는 구글과 손잡았다. 폴스타2는 구글맵과 구글어시스턴트를 장착했다. 잉엔라트는 "구글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능가할 수준이 아니라면 거기에 돈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독일 자동차업계는 전기차 네트워크 구성에 애를 먹고 있다. 폭스바겐이 대표적 사례다. 새로운 전기차 'ID.3'을 달리는 컴퓨터로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는 9월 출시를 앞두고도 스마트폰 연계 시스템인 '앱-커넥트'를 제대로 구동시키지 못하고 있다. 만약 고객들이 이 문제를 고치려면 차를 정비소로 가져가야 한다. 테슬라의 경우 원격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폭스바겐 최고 개발자인 듀스만은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중이다. 휘하에 5000명의 직원을 둔 이유다. 완전한 제품이 나오려면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하지만 그같은 작업들이 이미 최고 경영진 사이에서 견해 차이로 삐걱대고 있다. 폭스바겐 그룹 소프트웨어 대표인 크리스천 센거는 해당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2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듀스만은 일의 진행 속도를 올리고자 팀을 채근하고 있다. 그는 최근 "테슬라를 존경한다"며 "전기차 탑재 네트워킹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아직 테슬라와 동급이 아니다"라고 인정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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