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후진국 탈출, 지금이 골든타임이다│④ 움직이는 흉기, 지게차 사고를 막자

무면허에 기본 안전수칙 안지켜 연간 20여명 사망

2020-08-28 11:35:48 게재

작업속도 느리고 단순해 운전·작업자 방심이 주요 원인 … 소규모 사업장 정부지원 적극 활용해야

#1. 지난해 2월 청주소재 한 생수공장에서 C씨(59)는 지게차를 운전해 작업하던 중 보행자통행로로 걸어가던 D씨(여)를 치어 숨지게 했다. 이 회사는 근로자와 지게차의 접촉을 예방하기 위한 작업지휘자나 유도자를 배치하지 않았다.

#2. 2018년 5월 한 식료품 회사에서 근무하던 A씨는 공정에 투입할 곡물들의 수량을 파악하고 엿기름 공정에 필요한 곡물을 운반해 주기 위해 원료창고에서 지게차를 운전했다. 곡물이 놓여있는 팔레트에 포크를 넣고 올리다가 운반하려는 곡물 종류를 확인하려고 운전석 핸들 앞부분으로 이동했다. 곡물 종류를 확인하던 중 마스트 운전용 레버를 건드려 A씨의 몸이 마스트와 프레임에 끼어 사망했다.

#3. 지난해 11월 대전소재 택배창고 정리작업 중 높은 곳에 있는 물품을 내리기 위해 동료가 운전하는 지게차 포크에 올라 작업 중이던 노동자 H씨(63세)가 1.3m 높이에서 뒤로 떨어져 사망했다.


산업현장에서 지게차로 인한 재해 발생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제조업 현장의 사고는 중대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게차는 무거운 화물의 적재·하역·운반용으로 널리 사용되는 산업용 특수차량이다.

지게차는 작게는 1톤 정도의 짐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소형부터 부두나 항구에서 20t이 넘는 컨테이너를 들어 올리는 대형까지 크기와 용도가 다양하다. 사진 안전보건공단 제공


지게차는 작게는 1톤 정도의 짐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소형부터 부두나 항구에서 20톤이 넘는 컨테이너를 들어 올리는 대형까지 크기와 용도가 다양하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지게차는 산업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장비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지게차에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장비라는 '오명'도 드리워져 있다. 최근 5년간 지게차 관련 재해자는 3020명이다. 이중 사고사망자는 103명에 달한다.

지게차 사고는 넘어짐·끼임·충돌사고의 세 가지 유형에서 많이 발생한다. 이들 3대 유형에서 지난 5년간 2558명(84.7%)이 재해를 입었고 59명(57.3%)이 사망했다. 사고를 유형별로 나눠보면 운행하는 지게차나 포크 또는 적재된 물건 등과의 부딪힘 사고로 1613명(53.4%)이 재해를 입었고 이중 35명(34.0%)이 사망했다. 지게차 포크·바퀴·적재물 등에 깔리는 등의 사고로 인한 재해자 646명(21.4%) 중 16명(15.5%)이 사망했다. 299명(9.9%)의 떨어짐 재해자 중 8명(7.8%)이 사망했다. 이 외에 물체에 맞맞거나 넘어짐 또는 교통사고 등 기타 사유로 462명(15.3%), 44명(42.7%)이 사망했다.


◆"기본원칙 충실, 무사고 비법" = 지게차 사고의 주요 원인은 △위험구역 출입금지 위반 △안전담당자 미배치 △신호수 신호불량 △급선회·제동 등 운전결함 등이 꼽힌다. 이외에도 지게차 차량 부품 불량이나 무자격자의 운전 등도 주요 사고원인으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지게차를 '움직이는 흉기'가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는 안전한 장비로 활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설명한다.

△자격자 및 지정자 운전 △전·후방 시야 확보 △안전벨트 착용 준수 등 3대 안전 원칙만 지켜도 지게차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B씨는 인천의 한 화물하역장에서 지게차를 이용해 2톤 무게의 합판 더미를 옮기던 중 쏟아 동료 근로자를 숨지게 했다. 합판 더미에 깔린 C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출혈로 숨졌다. B씨는 당시 지게차 운전석 앞에 2.4m 높이로 합판이 쌓여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작업지휘자나 유도자도 현장에 배치돼 있지 않았다. 또 경남의 한 폐기물재활용업체에서는 지게차로 1톤정도의 압축 폐비닐을 옮기다가 떨어뜨려 근로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화물을 2m가량 높이로 적재해 시야가 가려진 상태로 지게차를 조종하다 사람을 발견하고 급정지했다. 급정지 여파로 지게차에 실려있던 화물은 D씨 쪽으로 떨어졌다. 운전자는 지게차를 운전할 수 있는 건설기계 조종사 면허가 없었다.

반면 창사 이후 단 한건의 지게차 사고도 발생하지 않은 경기도 한 중소기업 대표는 "특별한 노력을 했다기 보다는 꼭 지켜야 할 기본 원칙에 충실했던 결과"라면서 "우리 회사에는 지게차 2대가 작업을 하고 있는데 운전자격증이 있는 지정 운전자만이 가동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지게차는 작업 속도가 워낙 느리고 작업 방식도 비교적 단순해 사업주는 물론 노동자들도 사고가 발생할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사고발생 가능성이 낮다는 이런 생각이 사고를 부르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게차 운전자격을 갖춘 자가 안전띠를 착용하고 전·후방 시야가 확보된 상태에서 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등록 지게차 20만여대 = 사정이 이쯤 되자 정부도 지게차 사고 줄이기에 나섰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지게차 사고 사망자를 2022년까지 절반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국토교통부 건설기계 현황에 따르면 국내 등록 지게차는 2020년 6월 현재 19만8638대다. 산업현장에서 별도 등록없이 사용되는 전동식 솔리드타이어를 부착한 지게차를 포함하면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동식 솔리드 타이어를 부착한 지게차는 일반적으로 공기주입식이 아닌 마모되어 없어지는 타이어를 부착한 지게차로 도로가 아닌 사업장 내에서만 운행한다. 전동식 솔리드 타이어를 부착한 지게차는 일반지게차와 달리 조정면허나 안전교육에서 그동안 제외돼왔다. 이에 따라 건설기계관리법에서 제외되는 지게차 운전으로 사고가 발생해 대책이 필요했다.

고용노동부(고용부)는 전동식 솔리드 타이어를 부착한 지게차로 인한 안전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2019년 12월 '유해위험작업의 취업 제한에 관한 규칙'을 일부 개정했다. 개정 규칙은 소형 건설기계 조종에 관한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만 솔리드 타이어 부착 지게차를 운전할 수 있도록 했다.

2021년 1월 16일부터 개정 규칙이 시행됨에 따라 안전보건공단은 전국 144여개 민간교육기관을 통해 교육과정(12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지게차 조정작업 3개월 이상 유경험자의 경우 공단 교육원 온라인 무료교육으로 대체했다.

◆AI 등 첨단기술 접목 필요 = 고용부는 이와 함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도 개정했다. 개정 규칙에는 지게차에 전조등과 후미등을 갖추도록 한 기존 내용에 후방확인장치를 새롭게 포함시켰다. 후방확인장치는 후방시야 미확보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후진경보기와 경광등은 지게차가 후진할 때 광선이나 소리 등으로 위험을 알리는 장치다. 또 후방감지기는 지게차 후미에 사람이나 물체가 접근할 경우 정지하거나 운전자에게 주의를 주는 장치다. 안전보건공단 연구원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현행화 연구'에 따르면 지게차의 경우 후방에서도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연구원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사고를 당한 5982명을 분석한 결과 1360명(22.74%)이 후방에서 발생한 사고로 재해를 입었다. 이는 전방에서 발생한 재해자 2676명(44.7%)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후방에서 발생한 재해발생형태 별로는 969명이 발생한 부딪힘 사고가 가장 많았다. 끼임, 떨어짐, 물체에 맞음, 깔림 및 뒤집힘 등이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지게차에도 인공지능(AI) 기반 안전관리시스템 등 첨단기술의 접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게차에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장착해 주변 정보를 AI 기법으로 분석한 후 운전자와 작업자에게 위험을 알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사각지대에 대한 관측이 가능해져 지게차 안전사고가 감소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안전보건공단은 후방확인장치 부착이 의무화됨에 따라 건설업이 아닌 지게차를 보유한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최대 3000만원까지 비용을 지원(문의 1544-3088)한다. 소요 비용 중 공단이 인정하는 비용의 70%까지 지원되며 사업주는 나머지 30%를 부담하면 된다. 이밖에도 충돌예방장치인 라인빔, 속도제한시스템, 운전석 안전벨트 연동장치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으로 지원 받을 수 있다. 7월 현재 480여개 사업장이 비용을 지원받았으며 예산 소진시까지 신청을 받는다.

["산재 후진국 탈출,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연재기사]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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